오래 살고 싶다. 그것도 지치지 않고 오래 살고 싶다. 젊은 시절 모든 것을 쏟아내며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삶도 멋지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을 인생 전반에 걸쳐 골고루 나눠서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하되 그렇다고 무리하지도 않는 적당한 나날들을 잘 반복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걸 흥청망청 써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능숙한 완급 조절이 필수다.
갑자기 이런 철학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코로나19에 확진되어 자가격리 중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시간이 너무 많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천만다행으로 주변 사람들은 건강하고 나 역시 금방 컨디션을 회복했다. 사실 지박령의 DNA를 타고난지라 일주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되나?’ 하는 죄책감은 이틀을 가지 못했고 전기장판과 한 몸이 된 채로 어느덧 격리 막바지를 맞이하고 있다. 넉넉한 시간을 만끽하며 누워 있으니 모든 것이 합리화가 됐다.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았던 것을 상쇄하고자 침대에 누운 채로 꼬박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 것뿐이다. 인생은 완급 조절이니까.
몸과 마음의 병은 뭔가를 잘못한 사람에게만 찾아가는 벌 같은 게 아니다. 오늘까지 건강했던 누구라도 내일 아플 수 있다는 뜻이다. 밝아 보였던 친구가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나 건강해 보였던 선배가 큰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전해 듣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잊은 채 별 것도 아닌 시련으로 투덜거렸던 과거를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소원을 빌 때마다 당연하게 떠올렸던 '나, 가족, 친구들의 건강' 같은 소망은 사실 당연한 게 아니고 굉장한 운과 노력이 따라줘야 한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고 있다. 지치지 않고 오래 살고 싶다는 소망 역시 엄청나게 큰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도 힘이 닿는 데까지는 계속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자기 몫의 하루를 살아내는 모든 이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평온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