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귀뚜라미
무더운 여름이다. 비는 내리고 귀뚜라미는 운다.
이번 폭우는 왜 이렇게 심했나.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오랫동안 고여서 그렇다. 차가운 바람과 만난 수증기가 액화되어 바닥으로 세차게 떨어졌다. 서울 곳곳이 물에 잠겼고, 몇몇은 반지하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사망했다. 서울시는 반지하에 사람이 살지 못하게 규칙을 만들었다. 반지하에 살던 사람은 어디로 가나. 20년 후 사람은 외곽으로 밀려나게 될까, 아니면 위층으로 올라가게 될까. 서울의 집값은 떨어질까, 오를까.
올여름은 귀뚜라미가 시끄럽게 운다. 기온이 높을수록 귀뚜라미의 쉬는 간격이 줄어든다고 한다. 쉬는 간격이 줄어들수록, 우는 소리는 길어지니 더욱 커다랗게 들린다. 듣는 사람의 숨이 차다. 1분 동안 쉬지 않고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노래가 생각난다.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안치환, 귀뚜라미)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기온에 따라 빈도가 달라져, 가난한 사람들의 온도계로 쓰이기도 한다. 14초 기준으로 30번을 울었다면 +40번을 해서 70도 화씨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섭씨는 1/3 정도니 현재 온도는 23도. 서울의 온도를 확인하니 한참 틀렸다. 귀뚜라미의 종류에 따라 계산식이 달라진다고는 하는데, 10도 차이를 오차 범위로 볼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의 온도계는 정확하지 않다.
나는 안전지대에 있다. 언덕 위에 지어진 집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며 비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SNS에서는 강남의 물난리를 보여주고, 집이 물에 잠기기 직전 창문으로 빠져나온 청년의 눈물을 보여줬다. 방범창은 도둑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야 하는데, 사람을 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온갖 사람들이 달려들어 방범창을 뜯고 청년을 꺼내고 꼭 안아주는 영상이 1만 명, 2만 명에게 퍼졌다. SNS를 보고, 사람들은 슬플까. 안도할까.
한 손으로 SNS를 스와이프 하면서 에어컨을 켠다. 땀을 식히고, 보일러를 켜서 샤워를 했다. 선풍기를 틀었고, 배송 박스를 뜯어서 비닐을 벗겼다. 이번 여름이 습했던 건 지구 온난화 때문이니, 폭우를 막으려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그렇게 친환경적인 제품을 더 소비하고, 그 과정에서 배송 박스를 뜯고 비닐을 버린다. 환경을 위해,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일은 숨만 쉬는 것. 행동을 할수록 무질서와 오염은 심해진다.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조금 더 불편해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소비하는 것도 좋아한다. 몸은 언제나 편하고 쾌적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허해져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환경보호를 생각하는 @Pesso 브랜드 팝업 전시회를 보러 갔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실망했고, 내 왕복 2시간의 교통비를 아까워했다. 아마 나도 조금은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를 조금 실망시키면서, 조금은 빈 것처럼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