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와 이명
가을이 왔다, 날씨는 돌고 돌고.
귀뚜라미의 울음이 들리지 않는다. 한창 더운 여름밤에는 시끄럽게 울더니 다들 어디로 갔나. 가을이 왔는데. 밤이 추워서 더 이상 냉장고 이불을 쓸 수 없다. 두꺼운 이불로 바꿨다. 연두색 이불은 원래 재질이 극세사였지만 통돌이 세탁기에서 너무 오래 많이 돌렸는지 거칠거칠하다.
이불속에 누워서 어둠을 본다. 창문도 아직 꽁꽁 닫힌 채다. 비가 들이칠까 싶어서 닫았다. 어제는 태풍 힌남노가 와서 회사에서도 재택을 권장했는데, 가볍게 부슬비만 왔다. 다행이었지만, 서울만 안전했는지 각종 오픈 채팅방과 기사 댓글창에 싸움이 한창이다. 서울만 한국으로 치냐. 지방과 제주도에서는 사람이 많이 죽었다.
귀뚜라미도 갔고, 폭우도 지났고, 날씨도 선선해졌다. 가을이 왔고 곧 겨울이 올 테다. 이번 여름에는 원 없이 다이빙을 하고 서핑을 했으니 아쉬움이 덜하다. 습하고 더웠던 계절. 22년 여름을 이렇게 기억할 거다.
직장인이 된 지 꽤 됐고, 시간의 여유도 있다. 그러니 밖으로 나돈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계절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날씨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돈이 좋다는 것, 일이 좋다는 것은 곧 주변을 돌아볼 만큼의 여유가 생겨서 좋다는 말과 동일할 거다.
돌이켜본다, 내 학창 시절과 대학생활. 벚꽃이 내리기 시작하면 기말고사도 시작됐다. 내 생일 시즌은 과제와 시험 준비로 허덕거리는 날들이었다. 그렇다면 성적은? 좋지 않았다.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허둥거림, 서두름, 걱정과 불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맘 편히 놀 걸.
오늘 저녁은 일찍 침대에 누웠다. 깜깜한 공간에 이명 소리가 가득 찬다. 종종 이럴 때가 있다. 서 있으면 앞으로 고꾸라질 것처럼 중력이 무겁게 작용할 때. 누우면 시끄러운 이명이 쩌렁쩌렁하게 들린다. 공간이 텅 비어있는데 나는 꽉 찬 것처럼 느낀다. 혼자만의 예민함. 아무에게도 흐르지 않는. 종종 그럴 때가 있다. 그래서 운동을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