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를 갔다. 의사 아저씨는 5분, 10분 내 신체를 이리저리 뒤집고 손을 올리게 하고 다리를 들게 했다. 최종 처방은 "예민하게 태어난 몸"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손에서 땀이 나죠, 신경이 예민하다는 뜻이에요. 특별히 이상은 없습니다. 하고 돈도 받지 않고 나를 돌려보냈다.
이명을 없애는 명의는 잠이다. 네이버 지식인도, 각종 커뮤니티의 일반인 전문가도 그렇게 말한다. 잘 먹고, 잘 쉬는 건 문명이 발달한 덕분에 아주 쉬운데. 왜 수면을 챙기는 건 이렇게 어려울까.
잠이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잠은 곧 돈이다.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새벽의 영감과 아이디어고, 넷플릭스 콘텐츠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잠을 대체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은 참 많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열정 가득한 청년의 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이다. 다만 수많은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이, 잠은 낮동안의 효율을 극대화한다. 이상하게 좋은 컨디션, 작은 실수도 캐치해내는 예민한 눈썰미. 분명히 잠은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만큼의 고유한 매력이 있다.
그런데 왜 인기가 없나. 잠자는 시간을 아깝게 만들어버린 문화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열정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투여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안됐다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마다 사회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가스 라이팅 같은 그 말을 단호하게 쳐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큼 내가 절박하고 조급하기 때문이다. 원망할 것은 나, 그리고 잠이다. 잠을 줄여서라도 해내야지.
그럴 때 들리는 이명은 브레이크이다.
조금만 여유롭게 생각하고, 놀고 쉬고 자면 이명도 줄어들 것이다. 병원 신경과에 들러 시간을 낭비하고, 스트레스를 줄이세요, 하는 맥 빠진 처방을 받지 않아도 된다. 밤에 들리는 이명은 어떻게 보면 좋은 소리이다. 너는 잠을 자야 해. 각성된 정신에 비해 몸은 지쳤어. 어서 누워.
이명의 또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