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와 겨울
의식의 흐름대로, 직장인의 일상유감
흐르는 대로 산다. 기회가 오면 잡고, 움직일 수 있다면 움직인다. 흘러가는 궤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앞의 재미있는 것을 따라가는데, 대체로 비슷한 흐름을 보이면서도, 말로 설명하자면 복잡하고 끝없다. 인생은 쓰는 대로 쓰여간다고 하는데, 쓰는 게 없는 삶은 어떻게 쓰여지게 될까. 허공에 뜬 고민을 한다.
빈 이야기를 싫어한다. 내가 주로 하는 이야기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이기는 해도, 남의 빈 이야기를 들을 때는 빙글빙글 강강수월래를 도는 느낌이다. 너랑 안 친하고, 너랑 안 돌고 싶어. 남의 여백을 인정할 인내심이 없으니, 순간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사탕만 찾는다. 이를테면 인스타그램의 릴스 같은 것.
단순한 영상은 기분을 좋게 한다. 음식이 나오는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은 먹는 것에 취했다. 연어를 일주일에 10끼를 먹었다. 회전초밥집 직원들이 말을 건다. 자주 오시네요, 직장이 이 근처인가요, 어제도 오시고, 장국 드릴게요, 파인애플 서비스예요, 계산해드릴게요, 영수증 드릴까요, 안녕히 가세요. 얼마전에는 저녁마다 김밥을 먹었다. 우엉이 많이 들어서 좋았다. 집에 있을 때는 마라샹궈를 시킨다. 매번 남기지만, 혼자 이인분을 먹으려니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좋아하는 카페에서 레몬 스퀘어를 먹었다. 레몬 스퀘어는 정사각형 모양의 딱딱하고 바삭한 파이 위에 톡 쏘고 끈적한 레몬 푸딩이 올려진 음식이다. 메뉴를 시키자 주인 아저씨가 레몬 스퀘어 드셔 보셨어요, 늘 드시던 마들렌과는 다른 맛이에요, 레몬티 같은 느낌이에요, 라며 걱정하셨다. 곧 내 자리로 오셔서 레몬 스퀘어나왔습니다, 하더니 포크를 두 개 드렸네요, 바보같이, 하면서 웃으셨다. 나도 같이 웃었다. 아저씨 걱정이 무색하게 맛있게 먹었고 들은 대로 맛이 강해서 뜨거운 물 한잔을 요청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은 위험해서 머그컵에 드릴게요, 하고 둥글고 하얀 잔에 물을 따라주셨다.
문 옆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 늘 앉는 자리다. 창문에 쳐진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석양이 좋다. 밤이 되면 차들이 지나간다. 빛들이 좁고 긴 비늘 모양의 뼈대를 타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붉은 빛이 하나, 하얀 빛이 하나, 질서정연 하다. 그 모습이 소리를 낸다면 사악 사악 하겠지. 출근하는 직장인들 같다.
문틈 사이로 찬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이다. 실내에는 기름 냄새가 난다. 따뜻한 낮과는 다르게 조금 찬 공기, 발이 조금 시렵다. 신발은 3만 9000원짜리 대중적인 것을 신었다. 대학생 같아서 창피한 마음에 잘 신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걸을 만 하다. 신발의 목적은 걷기 위한 것인데, 이것저것 따질 게 많다.
회사에 고양이같은 직원이 있다. 사악 사악 수시로 그루밍하는 고양이처럼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면서 남들에게 보일 자기의 모습을 틈 날 때마다 고민하는 듯 하다. 까칠한 듯 하면서도 돌아보면 근처에 있는 듯하다.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많다. 같이 점심을 먹고 돌아갈 때, 나는 외투의 재질을 유심히 본다. 본다고 뭐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회색과 검은색 외투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해서. 등은 직원이 볼 수 없는 유일한 곳이지만, 어쩐지 등도 늘 반질한 모양이다. 가끔 다림질을 잊을 때만 빼고.
직원은 초밥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일곱번째 끼니를 채우던 날, 직원을 내가 매일 가는 초밥 집에 데려갔다. 점심 모듬을 시키라고 권유하고, 오늘도 네 접시를 먹을 요량으로 신중하게 회를 골랐다. 직원은 혼자서 이만 구천원의 초밥을 먹었다. 모듬을 먹었고, 회전판 위의 초밥을 열 접시 더 먹었다. 일주일에 아홉번째 끼니를 채우던 날, 직원과 같은 스시집에 또 갔다. 직원은 삼만원이 넘는 스시를 먹었다. 참치뱃살이 맛있다고 했다. 혼자 먹을 때 참치뱃살은 살살 녹지만 기름진 듯 했다. 같이 먹는 참치뱃살은 더 맛있었다. 그렇지만 혼자 먹을 때는 시키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