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 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임신한다면 어떻게 될까
매년 여름이면 가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올해는 운 좋게 개막식 티켓팅에 성공해서 다녀왔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다양한 국적, 인종, 연령의 여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영화제라 너무 애정한다.
올해는 신촌메가박스에서 8월 21일부터 8월 27일까지 열린다.
개막식은 처음이었는데, 영화제 소개와 심사위원, 감독 소개, 전체 트레일러 감상 등 영화제를 쭉 훑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선샤인은 국가대표 선발이 거의 확실시된 촉망받는 젊은 체조 선수다. 그런데 선발전이 예정된 주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평생의 꿈과 대학 장학금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낙태를 고민한다. 불법 낙태약을 사러 가는 길에 선샤인은 무서울 정도로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는 신비로운 소녀를 만난다. 이 만남은 선샤인의 내면 깊숙한 곳을 흔들며, 그가 자신의 두려움과 꿈, 그리고 자신이 내리는 결정의 무게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필리핀에서 어린 여성의 계획하지 않은 임신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필리핀에서는 100년 넘게 낙태가 범죄로 간주되어 왔다. 매년 약 1,000명의 필리핀 여성이 안전한 낙태 시술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다. 일부는 감옥에 가고, 나머지는 100달러 이상을 들여 불법 낙태약을 사서 위험을 감수한다. 선샤인도 그중 한 명으로, 겨우 19살이다.
필리핀 영화계에서 낙태는 금기시되어 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대 임신과 자가 낙태 사례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분명하다. 이제는 낙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다.
선샤인은 10대에 임신한 수십만 명의 소녀들을 대표한다. 필리핀에서는 매일 약 500명의 10대가 엄마가 된다. 나는 가난한 어린 엄마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은 낙태를 고민했지만 결국 임신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직면하지 않는 현실을 비춘다. 낙태 금지는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보호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여성들을, 말 그대로이자 비유적으로, 죽이고 있다.
중산층으로서의 특권을 자각하고 있는 한 여성으로서, 나는 그만큼의 운조차 갖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제3세계 국가에서 선택은 곧 특권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선택조차 할 수 없었던 채 엄마가 된 어린 여성을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 필리핀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이야기는 단지 낙태의 문제만은 아니다. 모든 10대 임신의 이면에는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가 있다.
17살에 필리핀 체조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 예선전을 몇 달 앞두고 임신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상황자체가 왠만한 공포영화보다 무서웠다.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 17살이 임신이라니.. 거기다 몸쓰는게 중요한 체조선수인데
주인공 선샤인은 이 힘든 상황을 현명하게, 씩씩하게, 용감하게 하나씩 마주하고 해결해간다. 낙태하는 방법을 검색하고, 남자친구를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낙태에 필요한 돈을 받고, 절친에게 고민도 상담하고...
그 과정에서 거지같은 남자친구의 태도, 절친에 등돌림도 겪고 길에서 산 낙태약으로 혼자 시술하다가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고 우여곡절을 겪지만,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었다.
새드엔딩으로 끝나면 어쩌지? 도대체 끝이 어떻게 될까 조마조마하면서 봤지만, 임신소식을 전하자 내 애 맞아? 라고 하는 남자친구 차 유리를 박살내고, 13세 여자애를 임신시켜놓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아저씨 뒷통수에 맥주병을 갈기고 도망가는 모습에 안심했다.
다행히 새드엔딩이 아니라 좋았다. 마지막에 모든 어려움을 겪어내고 당당하게 올림픽 예선전에 출전한 선샤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났다. 개막작 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