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심은 튤립 구근

by 평일

지난 주에 튤립 구근을 심어야지 하고, 사올 때 담아 온 에코백째 방치했다.

이미 사올 때도 싹이 났다고 했는데, 빨리 심어야지 하면서도 또 한구석에 놔두었다.


게으른 식집사는 구근 심기도 미룬다.

변명을 하자면, 택배도 뜯기 귀찮은 추운 겨울이다.


오늘은 심고 말겠다며, 바람부는 테라스로 나갔다.

마른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화분들 사이에서 빈 화분을 찾아 삽으로 땅을 팠다.

대충 싹이 위로 향하게 하고 꽁꽁 얼어붙은 흙을 살짝 파서 작은 양파 같은 구근들을 심었다.


'음 이게 맞는걸까?'

메뉴얼을 차분하게 읽기보다 일단 해보는 스타일이라서 다시 설명서를 읽어보았다.

흙에 심고, 물을 듬뿍 주라고 써있다.

튤립구근.jpg 씨앗과 모종만 심어보았는데, 구근 심기 도전


구근.jpg 음 정말 이렇게 심으면 나는 것일까. 반신반의하면서 구근 묻는 현장


땅에 구근을 묻고, 물 조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부었다.

얼어붙은 흙에 핸드드립하듯 물을 주니, 원두가 부풀어 오르듯 구근들이 떠올랐다.


내가 너무 얕게 심었나 보다. 다시 대충 더 땅을 파서 묻어 두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의문이 들었다.)

설명서대로 물을 듬뿍 주었으니 이젠 기다림의 시간.


튤립 구근을 심을 때 뭐가 필요한가요?


"튤립 구근은 어떻게 키워요"라고 물어보니

기다리겠다는 마음, 그리고 궁금해도 파보지 않는 다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심고 20일은 파지 않아야 한다고. 그래야 싹이나고 4-5월에 꽃이 핀다고

약간 냄비밥할 때 뜸들이는 것과 비슷하려나?


의심하지 말고, 안에서 피울 때까지 기다려야지.




예전에 통영 여행갔을 때 이마트에서 장을 봤다. 술과 과자 등을 고르다가 튤립이 1000원이길래 포트를 사서 바다가 보이는 숙소 테이블에 두었다.


하룻밤 묵는 곳이었지만, 밖에 갔다 들어왔을 때 튤립 화분이 있으니 내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튤립은 마시고 남은 술병들과 함께 놓고 왔지만 같이 갔던 언니와 통영 여행을 할 때 튤립 화분을 추억 한다.


빨래한 커텐도 얼 정도로 혹독하게 추운 날씨에 심었지만,

구근 너희들 잘 살아서, 어느 봄이든 다시 꽃을 피워줘.


너를 심은 순간부터 내게 봄 시작은 벚꽃이 아니라 튤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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