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마음

올해가 가기 전에 심으면 내년엔 꽃 피울 수 있을까?

by 평일

내년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튤립 구근을 샀다.


요즘은 왜인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인스타에 사진 하나 올리는 것도 버겁고 귀찮고 부담스러웠다.

단체카톡방 메세지를 읽는 것도 힘이 들었고, 인증도 기록도 일처럼 느껴졌다.

브런치를 쓰는 것도 꾸준히 쓰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다가 머릿속 생각해 놓은 글들을 쓰지 못한 채 미루고 있었다.


겨울 트리.jpg

연말은 사람을 괜히 불안하게 한다.

올 한해를 잘 보낸걸까? 하기로 한 것들은 잘 했나? 하는 불안감과 반짝이고 예쁜 트리를 볼 때 생기는 묘한 기분. 뭔가 근사하고 멋진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계획도 있어야 할 것 같고, 나 자신에게 특별한 선물도 줘야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 트리.jpg

비슷한 마음으로 캐롤을 좋아하면서도 캐롤을 들으면 압박감도 느낀다.

왠지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올해를 잘 정리하고 내년에는 더 만족스럽게 보내야할 것 같은.

인생이 유튜브 플레이스트 배경화면처럼 예쁘고 근사하게 잘 꾸며질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상점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면 왠지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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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을 심고 겨울을 견디면, 봄에 근사한 꽃이 핀다.


집에 오는 길에 튤립구근을 샀다.

작년부터 겨울에 구근을 심어보고 싶었다. 땅 속에 양파 같은 것을 심고 봄이 되면 꽃이 핀다니 얼마나 낭만적이야! 하면서도 귀찮아서 못했다.

무엇보다 전세 계약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점이라서 내년 봄을 장담할 수 없었다.


올해 전세 계약도 2년 연장했고, 소홀하긴 했지만 테라스에 식물들도 알아서 살아 남았다.

어느 봄 마르쉐에서 샀던 샐러리도 아직까지 혼자 푸르게 살아 있다. (여름쯤 한 번 수확했다가 귀찮아서 방치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죽고 흙만 남은 화분에 싹난 감자를 혹시나 하고 묻어보았지만 겨울이라 싹이 나진 않았다.


대충 말고 심을 걸 심어야 하지 하는 마음으로 튤립 구근을 샀다.

보라색과 노란색 구근 5알씩, 보라색 튤립과 노란 튤립으로


KakaoTalk_20211210_130004799.jpg 겨울마다 왠지 사게 되는 포인세티아


꽃을 사고 키우는 건 어찌보면 들인 돈 대비 비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길고, 금방 시들고.

요즘은 진짜 같고 예쁜 조화도 많은데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꽃을 심고 기다리는 마음은, 시들 거 알면서도 꽃다발은 사는 일은 즐겁다.


인생이 어디로 갈까 모를 때가 많은데, 꽃집을 지나는 순간은 대부분 행복했다.

지금 사는 집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근처에 꽃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겨울은 빨갛고 따뜻한 포인세티아와 겨울을 견디며 튤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내야겠다.


양파 같이 생긴 니가 정말 커서 꽃이 된다면, 나도 봄에는 뭔가가 되어보도록 할께.

(일단 심기부터 하자. 어제 밤 사놓고 아직 못 심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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