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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May 13. 2022

정신병원에서 친구 만난 이야기

오랫만에 ADHD약을 타러  정신병원에 갔다.


상담 예약 시간 보다 10분 정도 늦었다.

병원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소파 자리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구석 쇼파에 앉아 기대어 앉았다.

'오늘은 꼭 반납해야지' 하고 며칠째 들고 다니던 연체된 도서관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을 몇 장 읽다가 오늘 상담 때 해야할 말들이 생각나서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적었다.


1. 코로나에 걸려서 7일간 콘서타를 못 먹음. 그래서 한 주 더 병원 진료를 미룸

2. 해야할 일을 놔두고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면서 괴로워 하는 회피성 성향을 고치고 싶음

3. 일정 계획, 동선 계획을 세우는 게 너무 어려움


거기까지 적다가 상담실으 들어가는 환자를 보고 놀랐다.

내 친구였다. ADHD인 친구는 살고 있는 동네에서 좀 먼 곳에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다니는 병원을 추천해준 적 있는데 이렇게 딱 마주친다니!

정신병원에서 친구를 만난 것이 신기했다. 


신기한 마음에 카톡을 보냈다.

'헐 지금 신경정신과 옴? 나도 대기중 ㅋㅋ'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상담실에서 친구가 나왔다. 

진료실에서 나와 대기실 쇼파로 가서 앉는 친구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보았다.


혹시 내가 잘못 봤으려나? 싶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때 친구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불렀다.

평일!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공기가 흐르는 정신병원 대기실에 지나치게 밝고 명랑한 목소리였다.

나는 조심스레 웃으면서 친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 너 지나가는데 보고 반가워서 카톡 보냈는데 못 봤구나.

언제부터 여기로 다녔어?"


"나 여기 두 번째, 원래 다니던 병원이 집에서 좀 멀거든. 가려면 지하철 두 번 갈아타야 돼서 좀 더 가까운데로 옮겼어. 어쩜 이렇게 딱 마주치냐"


언제 어디서 우연히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편한 친구였다.

"우리 만난 김에 저녁이나 먹을까?"


나는 급히 있던 약속을 뒤로 미루고, 근처 같이 저녁 먹을 식당을 물색해보았다.

조용한 병원이라서 마스크 너머로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를 이어갔다.


"약은 뭐 탔어? 나는 콘서타 28mg 먹고 있어.
 겨울에는 우울증약도 먹다가, 날씨 좋아져서 우울함이 없어져서 요즘은 그냥 콘서타만 먹는 중이야."

라고 내가 말했고, 친구는 약봉지를 보여주며 자신이 먹는 약에 대해 설명해줬다.

정신병원에서 우연히 친구 만나서 재잘재잘 서로 먹고 있는 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 상황이 재밌었다.

오늘 따라 이전 환자의 상담이 길어져서 일까. 나의 대기 시간은 더 길어졌고,  우리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이 흐르는 정신병원 대기실에서 소근소근 서로의 근황에 대해 떠들었다.

대기실에 가득한 혼자 온 환자들 대부분은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우리만 구석자리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마치 병원 공간 안에서 우리만 투명 유리벽에 있고, 사람들 눈에 우리가 안 보이는 느낌이었다.


곧 내 이름이 호명되서 상담실로 들어갔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고, 코로나에 걸렸었으며 그 때 잘 쉬고, 아팠고, 잘 먹었고, 그 뒤로 후유증이 있었으나 이젠 괜찮아졌다고 답했다.


 "급하게 해야할 일이 있을 때 괴로워하면서도 자꾸 회피하려고 유튜브만 보면서 하루를 보냈어요.

일정 관리하고 동선 짜는 게 너무 어려워요." 


라고 고민을 말하자, 28g 용량이었던 콘서타를 늘리는 건 어떻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그러면 그래볼까요?"

"한 이주만 같이 지켜봐요."

다음 상담 약속을 잡고, 문을 나섰다.


짧고 빠르게 상담을 끝냈다.


다시 대기실로 가서 친구를 만났다 

약을 기다리면서 다시 친구와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 너 다음 상담은 언제야?"

"나 일주일 뒤에."


"나는 이주 뒤에. 나는 이제 여기 반년 정도 다니다 보니깐, 상담도 간단히 하고, 약 증량이나 감량하고, 우울하면 우울증약 더하고 이 정도야."


이야기 하는 사이 나의 2주일치 콘서타가 나왔고,

약을 타고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따뜻한 밥을 기다리는 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서 했다.

"보통 정신과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할까?

애매하게 아는 사람이라면 서로 못 본척하지 않았을까?"


"나도 너니깐 반갑게 아는 척 한 거 같아.

그리고 니가 막 엄청 크게 내 이름 불러서 너무 웃겼어."


건강하게 정신 건강과 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밥이 나왔다.


같이 약도 타고, 밥도 먹고 좋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밀린 근황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각자 길을 가는 횡단보도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나중에 같이 상담 받고, 저녁 먹어도 좋겠다.

아니다. 너 병원오면 연락해. 우리집에서 가까우니깐, 온 김에 보자.


보통은 뭐 어디 학교 온 김에 연락해. 이런 식인데

우리는 정신 병원 온 김에 연락해.

같이 상담 받고, 밥 먹으러 가자 하네 너무 웃긴다.


하면서 헤어졌다.


배고프면 밥을 먹듯, 몸이 아프듯 약을 먹고, 정신적으로 힘들면 약을 먹을 수도 있다.

그냥 이 모든 걸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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