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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벗 Mar 09. 2019

식빵 아빠의 사과를 받아줘

상처 주지 않기, 상처 받지 않기

"아빠! 아빠는 뭐를 닮았는지 아세요?"

"뭔데?"

"식빵이요! 네모난 식빵! 얼굴이 네모예요. 하하!!"


얼마 전 아들이 내게 한 말이다. 쿨 한 척 가볍게 웃어넘기며 내가 무슨 식빵이냐고 했지만, 그 날 저녁 세수를 하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나서 거울을 보며 얼굴 여기저기를 만져보며 '내가 그렇게 네모난 얼굴인가?'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재미있는 표현이기는 했지만 아들의 장난 섞인 말이 신경 쓰이는 이유는 뭘까? 아내에게도 물어보았다.


"내가 얼굴이 진짜 네모야?"

"응.."


간결한 대답..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소심한 사람..


하루는 초등학교에서 아들의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는데 아들이 같은 반 친구를 때렸다고.. 나는 남자 애들이 크다 보면 싸울 수도 있는 건데 무슨 걱정이냐고 아내에게 이야기했지만 아내는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들의 초등학교 같은 반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늘 휠체어를 타고 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 셋이서 그 아이를 놀리고 괴롭혀서 아들이 그 아이들을 때렸다는 것이다. 잘한 일 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친구를 때린 사실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니 이걸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아들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아들! 친구들하고 싸운 이유가 몸이 아픈 친구를 괴롭혀서 때린 거 맞아?"

"아빠가 맨날 저한테 그랬잖아요. 제가 운동을 배우는 이유는 약한 친구와 여자를 지켜주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하는 거 라구요."

"그래서 친구들을 때린 거야? 몸이 아픈 친구를 괴롭히니까?"

"네! 그 친구는 맨날 웃기만 해요. 친구들이 괴롭혀도 웃고, 넘어져도 웃고, 마음이 아프잖아요!"


이렇게 말하고는 분에 못 이긴 듯 울어댔다. 어찌 그렇게 서럽게 울어대는지 잠시 진정될 때까지 안아주었다. 그렇다. 아들은 태권도 2단, 합기도 2단, 용무도 1단, 특공무술 1단, 가라데 1단으로 10살이라는 나이에 합이 7단이다. 올해 합기도와 용무도 승단심사를 통과하면 9단이 될 예정이다. 무도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 늘 설명해왔는데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니 당황스러웠다. 상대방 부모들도 그랬던 것이 아들은 혼자였고 3명의 친구들과 싸웠기에 큰 문제를 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크게 상처가 나거나 때린 것은 아니고 주로 조르기로 상대방 아이들을 울린 정도의 수준이라고 했다. 이것보다 중요한 건 여기서 내가 아들의 잘못을 위주로 교육하면 불의를 바라보고 비겁해질 아들이 걱정되었고, 잘했다고 하면 이런 상황들이 자주 벌어질 것 같았다. 난감했다.


부모로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도와준 것은 잘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을 때린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참을 설명했다. 부모의 역할은 늘 고민되는 일의 연속인 것 같다. 잘한 일이지만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은 어른인 내게도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정당방위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


얼마 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볼이 빨갛게 돼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같은 반 여자 친구에게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잔소리를 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 여자 친구에게 따귀를 맞았다고 했다. 무슨.. 초등학생이 따귀를...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맞고 가만히 있었어?"

"여자는 때리면 안 되잖아요!"


참으로 웃픈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맞는 말인데, 왜 이리 속이 쓰린지 모르겠다. 왜 친구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는지 물어보았는데,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조용히 해달라고 했는데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이것저것 막 따져대는 아들에게 여자아이가 때린 모양이다. 그 참.. 쉽지 않은 상황들이다. 그날 저녁 아들과 밥을 먹으면서 최근 그런 일들에 대해서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이 생각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다 들어보았고, 나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물론, 아빠에게 식빵을 닮았다는 말을 해서 아빠도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치졸하지만, 나도 내 마음속에 식빵의 이야기를 담아두었던 모양이다.


아들과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마음이든 몸이든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동안의 서로에 대해 상처 받았던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들과 대화했던 나의 태도와 말투에 대해서 아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주저리주저리 학교의 일에 대해서 떠드는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꺼낸 말들..


“아빠! 바빠~ 빨리 이야기해 줘!!”

“우리 내일 이야기하면 안 될까? 아빠가 너무 피곤해서..


그리고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그대로 얼굴에 표출되어 아이가 먼저 날 피했던 일들..    

하루 종일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만 기다렸다가 아빠에게 이야기해주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던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항상 그러지 않고자 의식하고 살지만 의식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대화를 하는 동안 아이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사회생활에서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누구에게도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강철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데, 오히려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로 인해 나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었다. 그 마음의 상처는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였다.

         

<상처주지 않기, 상처받지 않기>

우리는 늘 남들을 바라보는 온갖 주관적인 편견과 남들이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내게는 객관적이자 그들에게는 주관적인 이기적 시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쩔 수 없이 남들의 시선이 점점 더 두려워지는 것 같다. 학창 시절을 거쳐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그동안의 수많은 정당방위의 시시비비 안에서 나름대로의 옳고 그름의 기준에서 바르게 살아온 것일까?

다른 이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인정받기 위해 살아왔지만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정작 나를 믿고 나만 바라보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몰랐고, 이를 알았을 때에는 이미 나도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중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그리고 부모라는 이름과 가정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 상처는 절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아이는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상처가 작은 상처든 큰 상처든 말이다.  

<식빵 아빠의 이미지 컷>


나는 바란다. 늘 아이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식빵 모양의 얼굴을 가진 마음 넓은 아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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