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대학교, 무슨 과 졸업했어?"
"그래서, 어떤 일이 하고 싶은 건데?"
"그거 해서 먹고살겠어?"
우리가 평소에.. 아니 내가 평소에.. 아니 내가 그동안 계속 들어왔던 말들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듣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이 말을 듣는지 알고는 있을까?
하나만 묻고 싶다. "죄송하지만, 제가 어떤 사람인 지는 아세요?"
그렇다. 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뭐하나 눈에 띄게 잘하는 거 없는 나다. 그런데 이상하게 당당하다.
왜 당당하냐고? 부끄럽지 않으니까.. 이상하게 나는 뭐 딱히 내세울 것이 있지도 않으면서 쓸데없이 자신만만하다. 그게 당당한 이유이다.
나는 무엇이든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잘 모르는데 자신감마저 없으면 더 초라해질 것이 두렵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글을 쓸 줄도 모르면서 작가 인척 고민하면서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자신감도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어릴 적 꿈이 뭐였지?" 딱히, 꿈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난 영어 선생님이 하고 싶었다. 단지, 영어가 좋아서.. 그거 말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영어를 뛰어나게 잘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저냥 영어는 상위권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좋아했으니까.. 한 때는 시를 쓰는 게 좋아서 시인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소설가를 하고 싶어서 고등학교 때 무협지를 써보기도 했다. 읽어주는 사람이 두 명이어서 그만뒀다. 뭐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아니 어쩌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한 방법을 몰랐을 수도 있겠다.
이제 와서 내가 내린 결론은 '경험이 풍부해야 꿈도 많이 꾼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건,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하고,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도전이라도 해볼 것이 아닌가?, '그래!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던 것이고,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있는지도 몰랐던 거야!' 라며 나 자신의 주변 환경을 탓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 부모님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께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들이고, 불혹이 훌쩍 넘은 나에게 '밥은 잘 먹니? 아픈 데는 없니?' 라며 여전히 자식 걱정에 사시는 분들이다.
이제 와서 이렇게 깨달은 사실들에 대해서 나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아들에게 많은 경험을 선물해주기로 했다. 그 시작은 아들이 5살 때였던 것 같다. 퇴근해서 집에 있던 내게 아내가 말했다. "아파트 근처에 아줌마들끼리 이야기하는데, 어떤 아줌마 딸이 예뻐서 인터넷 쇼핑몰 애기 모델로 돼서 사진 촬영을 한데..", 나는 물었다. "......... 근데?", "그냥... 그렇다고.." 괜히 심통이 났다. 아들을 쳐다봤다. "우리 아들 정말 예쁜데.." 물론 부모 눈에 예쁘지 않은 자식이 있을까?
또 다시 근본 없는 자신감에 불타올라 인터넷으로 키즈 모델 회사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중에 한 군데에 아들의 사진을 보냈다. 그러고 생각했다. "그래, 잘한 일이야.. 이것도 다 경험이지!"
며칠 뒤 전화가 왔고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고, 아들이 놀랍게도 카메라 앞에서 알려주지도 않은 포즈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사실 사진 잘 찍으면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준다고 이미 아들과 협상을 한 상태였다.) 잠시 후 계약을 하자는 회사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계약을 하고 본격적인 키즈 모델이 되었고, 그 후 몇 번의 광고 CF 및 영화 조연 등 테스트가 있었는데 매번 떨어지고 말았다.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들을 아역배우를 시키기 위함도 아니고 키즈 모델을 시키기 위함도 아니었다. 다만 나의 바람은 "아들! 너 어릴 적에 모델이었어!"라고 말하며 사진 한 장 보여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고 기왕이면 영상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진을 성장 사진 전에 꼭 걸어주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다.
비록 광고 CF도, 조연도 한번 못해봤지만 프로필 사진 촬영하면서 남은 사진이 있으니 이미 보여줄 사진은 남겨 놓았다. 10살이 된 아들은 이미 자신이 모델이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그래.. 넌 모델이었어..'
휴가 일정이 되면 나는 이것저것 인터넷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연극, 뮤지컬, 영화, 박물관, 미술관 등등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렇게 나는 휴가만 되면 운전을 하면서 휴가를 보냈다. 3박 4일 휴가 중 3일을 하루 일정으로 일산, 서울, 파주 등을 다니며 휴가를 보냈고, 늘 휴가가 끝나면 피로감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아빠! 이번 휴가 때는 어디 가요?", 아내가 말했다. "일정 잡았어?", 당당하게 말했다. "저번에 아빠랑 많이 다녔으니까, 이번 휴가 때는 집에서 좀 쉬는 게 어때?", 순간 정적이 흘렀고 아들이 말했다. "아빠! 경험을 많이 해야 꿈이 많아진다 면서요?" 그렇다. 경험을 많이 해야 꿈도 많이 생긴다. 그래 너의 꿈이 늘어갈 때마다 아빠의 피로는 쌓여간단다. 그날 저녁도 어김없이 검색을 하다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었을 때 아내는 나에게 피로회복제를 하나 주면서 말했다. "당신의 휴가 일정의 선택은 항상 좋았었어." 눈물이 날 뻔했다. 감동인지 무엇인지 모를..
아들이 춤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K-POP Contents 사업을 하는 대학교 후배에게 부탁해서 강남에 있는 후배 회사에 가서 춤도 배웠다. 축구가 너무 좋다고 해서 K리그 시합도 보고 기념품도 사주고, 연극이 보고 싶다고 해서 연극도 보여주고,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박물관도 여러 군데 다녔다. 안중근을 너무나 존경한다는 말에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전시장도 다녀오고 역사 영화만 나오면 무조건 봐야만 했다. 누가 보면 "자기 자랑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랑하고자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경험을 해봐야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함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아빠들의 쌓여가는 많은 피로와 보상 없는 의무적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물어보고 싶다. "해줄 수 있잖아? 아빠잖아?"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안중근을 너무도 존경하는 아들이 바라는 것 두 가지를 못해주고 있다. 뮤지컬 "영웅"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항상 예매에 실패하거나 일정이 맞지 않는다. 또,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한다. 이젠 정말 엄두가 안 나긴 한다. 일단 대충 "그래, 언젠간 꼭 한번 가보자?"라고 얼버무렸다. 최근 들어 랩에 빠진 아들이 또, 말한다. "아빠! 우원재 형을 만나고 싶어요. 만나게 해 줄 수 있어요?" 그래서 래퍼 우원재의 회사인 AOMG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글도 남겼다. 콘서트 언제 하냐고... 갈수록 스케일이 커진다. 이제 나도 우원재 님의 팬이 되었어..
어느 날 아들과 함께 목욕을 하다가 물어보았다. "아들 뭐가 제일 하고 싶어?", "저는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래퍼도 하고 싶고, 축구선수도 하고 싶고, 태권도 선수도 하고 싶고, 춤도 배우고 싶고.. 또.." 목욕하는 내내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해댔다. 머리가 아프다.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잘하는 것 뭔지 알아? 네가 잘하는 것이 뭔지 잘 생각해봐 그리고, 그걸 위해서 노력하면 돼. 아빠는 그게 무엇이든 항상 널 응원해." 무엇이든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너의 뒤에는 항상 널 응원하는 슈퍼대디가 있잖아!
무슨 대학교, 무슨 과를 졸업했는지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네가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어떠한 사회적 기준과 잣대가 감히 너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고.. 설사 그 일을 하면서 먹고살기 힘들어도 네가 한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자신 있게 도전해봐.
넌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고, 무엇이든 잘할 수 있어!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믿어주었으면 한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이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되어야 한다. 어릴 적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 또는 후회한 사실들에 대해서 자식들이 바른 길로 가야 하고 반드시 내 자식은 성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날개를 강제로 접어두지는 않았는지.. 아이들이 자신 있는 일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반드시 내 뒤에 나를 믿어주는 부모님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공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지켜주는 것과 자유로운 날개 짓을 위한 부모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