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를 접하다 보면 시리즈 A, 시리즈 B, 시리즈 C라는 말을 자주 보게 됩니다. A는 최초 투자금이 되는 시드머니, B는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품화되는 단계의 투자, C는 시장을 늘릴 단계의 투자. 느낌적으로는 이렇습니다.
투자를 A~C로 구분 짓는 것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관행이 그대로 넘어온 것입니다. 최초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은 경영권을 보호하면서 기업을 성장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의 자본금보다 더 많은 초기 투자금이 유입되면 창업자는 경영권을 뺏기고, 벤처기업을 성장시킬 유인도 사라지겠죠.
이 때문에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엔젤투자 등 재무적 투자자는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매입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습니다. 즉 시리즈 A는 우선주 A를 뜻하는 것이죠. 투자자는 "난 경영권에는 관심 없다. 너는 기업을 잘 키워라"라는 일종의 보호 장치를 둔 것이기도 합니다. 스타트업은 기업 가치가 높지 않기 때문에 VC들은 투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회수할 목적으로 우선주 투자 비중을 높이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 우선주를 뜻하는 말이 초기 투자금을 뜻하는 말로 굳어져 사용되고 있는 셈이죠. 이제 각 시리즈를 구분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투자 회차에 따라, 혹은 자금 및 사업 확장 여건 등에 따라 명칭을 붙일 뿐입니다. 처음 설명한 대로 투자금의 단계를 뜻하는 피상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시리즈 A 투자라도 의결권이 보장되는 보통주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벤처캐피탈은 창업자의 비전과 도전정신을 높게 평가하고 투자합니다. 이에 엔젤투자자가 책임감을 느끼고 벤처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보통주를 확보하고 액셀러레이터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거죠. 투자하는 순간 창업자와 투자자는 공동 운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스타트업들은 자본금을 소진하며 각 시리즈를 넘길 때마다 '데스 밸리'를 견뎌야 합니다. 이때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해 액셀러레이터가 활약하게 되죠. 상업화에 성공하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등 스타트업이 존재감을 증명한다면 계속해서 투자를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시리즈 A
기업이 '기존 사용자에 기반을 둔 일관된 수익 내지는 성과 지표'를 개발하면 스타트업은 다른 시장에서 제품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 라운드에서는 장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신생 기업들은 열정적인 사용자를 창출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수익으로 이을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시리즈 A 투자자들은 훌륭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토대로 성공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강력한 전략을 가진 회사를 찾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시리즈 A 투자 기압의 기업 가치를 최대 1500만 달러(약 168억원)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개 이 단계 투자에서는 정치적인 활동이 벌어집니다. 회사 지분과 경영권에 대한 교통정리죠. 다수 벤처캐피털 회사나 단일 투자자가 리드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시리즈 A에 성공하면 추가 투자를 끌어내는 것이 조금 더 용이해집니다.
시리즈 B
시리즈 B는 기업을 빌드업 하는 단계입니다. 개발 단계를 지나 다음 단계로 비즈니스를 펼치는 것이죠. 투자자들은 피투자 기업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시장을 넓혀주는 등 지원 활동을 펼칩니다. 시리즈 A에서 자금을 조달한 기업이라면 이미 상당 수준의 사용자를 확보했다는 뜻이고, 시리즈 B까지 왔다는 것은 큰 성공을 위한 준비가 돼 있다는 뜻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고, 양질의 인재를 확보하는 한편 벌크 사업 개발, 판매, 광고, 기술, 지원 등이 투자를 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시리즈 B 라운드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대략 700만~1000만 달러 사이입니다. 밸류에이션이 잘 정비됐기 때문에 기업 가치는 약 3000만~6000만 달러 수준으로 치솟습니다.
투자 프로세스는 시리즈 A와 비슷합니다.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핵심 투자자를 포함해 이전 라운드와 비슷한 수의 투자자가 기업 운영을 주도합니다. 시리즈 B에서는 후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또 다른 벤처캐피털 회사가 참여합니다.
그리고 시리즈 A는 우선주 투자가 대부분인 데 비해 시리즈 B부터는 VC들이 본격적으로 의결권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시리즈 B란 말도 의결권을 가진 주식 '클래스 B'에서 왔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제삼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투자를 끌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리즈 C
시리즈 C 단계까지 왔다면 비즈니스를 이미 상당히 성공 궤도에 올린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제품 개발과 신시장 진출, 다른 회사의 인수, 이를 위한 추가 자금 모집 등의 단계입니다. 시리즈 C는 회사를 가능한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단기간에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인수합병(M&A)입니다. 시리즈 C에 도달한 기업이라면 이미 자국 시장에서 상당 수준의 성공을 거뒀고, 해외로 눈을 돌리는 상황일 것입니다. 아마도 큰 사이즈의 경쟁사도 있을 것입니다. 자사가 경쟁 우위가 있다면 합병을 통해 시장 장악과 시너지 효과 및 파트너십 가치 창출 등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위험성이 줄어 투자자들도 늘어나고 더 큰돈이 들어옵니다. 이 때문에 시리즈 C에서는 주로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사모펀드 등이 투자자로 참여합니다. 이미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업들은 시리즈 C에서 외부 투자 유치를 마무리합니다. 시리즈 D나 시리즈 E로 가는 길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리즈 C 정도면 기업 활동을 통한 수익 창출만으로도 사업 확대가 가능할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기업공개(IPO) 기대감이 커져 기업 가치도 높아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고한 고객 기반, 매출 흐름 및 입증된 성장 기록을 수립해야 합니다.
시리즈 A~C에 대한 이해만 하고 있어도 스타트업의 경영 상황이나 경영상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보일 겁니다. 자금 조달은 기본적으로 똑같습니다. 일부 투자자들은 옵션을 걸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업에 대한 지분 확보의 대가로 현금을 제공합니다.
스타트업의 성공을 바라는 투자자라면 기업이 앞으로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회사를 알리며, 경영에 조언을 주는 등의 노력을 해야겠죠. 기업과 투자자의 자본이 함께 커나가는 것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