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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Nov 01. 2020

남미를 덮친 코로나 그리고 탈출

클릭 한 번으로 140만 원을 잃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한 바이러스는 결국 남미대륙까지 집어삼키려 했다. 남미에도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아르헨티나에 6명 칠레에 5명 이런 식으로 보통 한 자릿수의 확진자 발생했다. 남미 특성상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방역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번질게 거리를 거늘며 가볍게 훑어만 보여도 파악이 되었다. 한국은 한참 마스크 품귀현상이 일어났고 약국에서 파는 KF94 마스크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야 하며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한다고 했다. 


'여보, 남미는 코로나 퍼지면 끝장이야, 우리 한국으로 돌아가자.'

'한국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데, 여기 있는 게 더 안전하지.'


칠레에서 우린 또 의견이 갈려 말다툼을 했다. 계획한 귀국 날짜까지는 1달 넘게 남은 상황이었고 4월 16일 귀국하는 티켓까지 예약해 놓은 상황이었지만 계속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들 때문에 원래 한국에 돌아가고 싶던 나는 조금 더 빨리 가고 싶었다. 코로나를 빌미 삼아 돌아가야 한다고 우겨대는 나, 계획한 날짜까지 여행을 마치고 싶고 또, 더 길게 여행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남편. 

심지어 남편은 존버가 답이라면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한적한 곳에 가서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끝나면 다시 여행하자고 했다. 그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나는 눈물로 항의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울었던 이유는 코로나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다시 여행을 한다면 도대체 언제 한국에 갈 수 있나 하는 걱정의 눈물이 컸던 것 같다. 


남편을 설득해야 하는데 굳은 의지의 남편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남편을 말주변도 없고 어리바리한 내가 어떻게 설득할지 까마득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눈물뿐이 없는데 그 필살기 눈물마저도 너무 자주 써먹어 여행의 막바지엔 효력도 없어진 터였다. 그러다 멕시코에서 만났던 적이 있는 밍이 부부를 칠레 산티아고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밍이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이틈을 타 나도 남편에게 위급한 상황이며 언제 끝날 지 모를 사태라며 어필했다. 남미에서도 확진자가 나온다는 소식에 가족들과 지인들도 귀국을 서두르라며 나에게 힘을 보태줬다. 타인의 말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남편도 결국 5일 후 출발인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이제 곧 한국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티켓을 예매한 다음 날, 한 밤 중에 말도 안 되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건 바로 국경을 닫는다는 소식. 1-2일의 시간을 줄 테니 모든 외국인들은 칠레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우리의 비행기는 5일 후 출발이다. 국경을 닫으면 우린 어디로도 이동할 수 없이 이곳에 갇히고 만다.  비행기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고 티켓도 없었다.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 시각 페루도 국경을 닫아버려 꼼작 없이 갇혔다는 부부, 남미의 대부분 유명 여행 관광지가 모두 폐쇄되었다는 소식 등 동시다발적으로 심각한 소식들이 들려왔다. 그날 밤, 나는 밤 새 한 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하며 날을 샜다. 아침 일찍  대사관 주변에 숙소를 잡을 밍이 부부가 연락이 왔다. 대사관 주변에 한국인들이 다 몰려왔으며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와 아우성이라고 했다. 겁이 났다. 이러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기는 거 아닐까. 귀국 티켓을 구하지 못하면 이 곳에 갇혀야 한다는 생각에 겁이 무서워 손이 떨려왔다. 


남편에게 지금 당장 한국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눈물을 흘리며 설득해야 했다.


'여보, 코로나에 걸려도 나는 한국에서 걸릴래. 한국에서는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여기서 걸리면 죽을 거야.'


이 말에 남편이 움직였는지는 모지만 내가 눈물을 닦으며 말을 마쳤을 때 남편은 5일 후 티켓을 취소하고 다음날 떠나는 티켓을 어렵게 예약했다. 칠레 산티아고-멕시코 경유- 미국 경유-한국. 총 2번의 경유와 34시간 대기를 해야 하는 티켓.  더군다나 5일 후 예매한 티켓 값 140만 원은 환불받지 못했다. 순식간에 손가락 까닥한번으로 140만 원이 증발했다. 여태 그렇게 힘들게 아껴왔던 여행경비가 사라져 버린 순간이다. 


공허하다. 뭐든지 쉽지 않다. 마음대로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인생이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리라.


잘 한 결정이겠지?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귀국이 바로 코앞인데 이 헛헛함은 무엇이지? 내가 지금 기쁜 것인가? 너무 기쁜 나머지 감정을 읽지 못하는 것인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또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다.


나 지금 행복한 거니?
 헛헛한 거니?




이런, 역시 남미 


걱정 많은 나는 당연히 또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밤 새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잠들었다. 그런데 내가 밤 새 생각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생겼다.


다음날 아침, 칠레 정부에서 칠레를 오고 가는 국경을 닫겠다더니, 출국은 괜찮고 입국만 제한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이게... 하루 만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이틀 시간 줄 테니 나가라고 해서 거금을 날리고 또 광클을 해서 어렵게 티켓을 예매했더니 나가는 건 안 막는다니...


물론, 이 소식은 반가운 소식에 틀림없었다. 티켓을 예매하지 못했다면 우린 천만다행이라며 칠레 정부에 엎드려 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린 티켓을 구했다. 그것도 아주 쌩난리를 벌였으며, 남편에게 온갖 아양과 눈물과 부탁을 하며 말이다. 아마 "생쇼"란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닐까?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났다.


'헐, 무슨 대통령이 지침을 동전 뒤집듯 바꿔!'


쌍욕을 해가며 남편의 동향을 살폈다.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빨리 예약해야 한다고 달달 볶지만 않았어도 우린 5일 후에 칠레를 빠져나 갔을 것이다.  1인당 70만 원이라는 적당한 비행기 티켓으로...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았어야 했는데 나란 여자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 괜찮아, 그만 울어. 돈은 한국 가서 얼마든지 벌면 돼.'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에 또 울며 사과하는 나를 남편은 괜찮다며 다독였다. 


무사히 잘 돌아온 지금, 내가 초조해하지 않고 남편처럼 가만히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가진 모든 노력과 에너지를 다 써가며 어렵게 한 탈출은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될 탈출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매사에 하나에 꽂히면 그 하나밖에 보질 못한다. 몇 시간 내내 같은 일에만 얽매이니 몇 시간이 마치 하루, 이틀은 고민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걱정을 좀 덜 하는 성격이었더라면 그때, 덜 힘들었을 텐데.

혼자서 모든 기를 다 쏟고 어렵게 해쳐 나온 길을 다른 사람들은 술술 풀리는 대로 쉽게 해결한 것 같아 억울한 기분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나도 좀 덜 걱정할 것을. 너무 초조해하지 않았어도 해결됐을 일. 

내 생사가 달렸다고 생각하며 매달린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말처럼. 해결될 일은 다 해결된다. 그리고 그 만능 해결책은 기다림, '시간'이다.




외국에서 살래. 한국에서 안 살 거야. 
근데 막상 밖에 나가보니 한국만 한 곳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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