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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Nov 01. 2020

내가 갈망했던 한국

텅 빈 귀국장

54시간의 귀국길


일 분, 일 초를 앞다투는 상황에서 남편은 고민했다. 경유시간을 포함 해 총 54시간이 걸리는 긴 시간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34시간을 대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루 24시간. 하루보다 좀 더 참으면 되겠네.'하고 남미에서 36시간 버스 탄 경험을 생각하며 쉽게 생각했다.


칠레 산티아고를 떠나 멕시티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여보, 차라리 한달살기를 했던 산크리토발 가서 몇 달 있을래?'하고 진심인 듯 내게 물으며 가기 싫다는 의사표현을 했다. 허무한 여행의 종결. 이게 맞는것일까?


멕시코를 지나 미국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34시간의 대기시간이다. 

갑작스런 귀국에 남은 여행 경비를 쓰겠단 심산으로 가족들 선물과 사치품들을 살 계획이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모든 쇼핑몰과 가게들에 영업금지가 내려져 돈 쓰는 것 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면세점도 마찮가지였다. 미국까지 와서 선물하나 못사다니.... 그렇게 쓸쓸히 미국쇼핑을 접어야했다.


34시간이라는 내가 생각한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였다. 우린 공항 한켠에 자리를 잡고 배낭에 넣어 온 음료와 빵으로 허기를 달랬다. 도난의 우려가 있어 잠도 돌아가며 의자에 걸쳐누워 자야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빈곤해야 한다니...열이 머리 끝까지 뻗히지만 나의 조급함으로 날려버린 비행기 티켓 값때문에 입을 꾹 다물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돈을 날린 나에게 괜찮다며 위로 해준 남편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산티아고를 출발해 한국까지 총 60시간이 걸리는 비행이니 우린 3일 째 씻지 못했다.


꼬질꼬질 공항노숙자가 따로 없다.





달리부부 귀국을 환영해


늘 머릿속에 그려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조카들,친구들. 귀국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꽃다발. 

'공항이 울음바다가 될꺼야. 그래도 그 순간을 영상으로 남겨서 유튜브에 꼭 올리자.진짜 재밌겠다.' 한국에 가고 싶은 만큼 공항에서의 그 감격의  순간도 자주 상상을 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텅 빈 귀국장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 긴 시간을 비행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 온 딸래미를 보러 오시지 않았다.  조카들이 뛰어 와 안기고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려야 했었는데...정말 끝까지 하나도 마음대로 되는게 없다. 기분이 상한 나는 터벅터벅 공항을 빠져 나왔다.


시아버님께서 전날 미리 공항에 우리 차를 주차해두고 가주셨고 우린, 우리 차에 배낭을 패대기 쳤다. 그리고 출발하려고 안전띠를 매다 말고 우린 다시 배낭을 매고 공항으로 돌아왔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사진 한 방을 찍자'


그렇게 텅 빈 공항 쓸쓸히 기념사진을 남기고 우린 자차를 이용해 조용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570일 만에 다시 밟아 본 한국의 공기는 차가웠다. 3월의 날씨가 원래 이렇게 코 끝을 시리게 하는 날씨였던가. 한국에 왔다는 안도감,아무도 없다는 허무함,다시 한국에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걱정거리가 밀려와 허공에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옷을 동여 매고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어제 주차해놓은 주차비 때문에 한국에 도착한지 몇 분도 지나지않아서 돈 만원이 쉽게 지출되었다. 


'아...이제 시작이군아'


한국에 와서 물론 미치도록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모든 걸 뒤로 하고 버리고 떠나왔으니 이제 우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차례이다. 


한국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그토록 가고싶어 해놓곤 돌아와선 걱정이 태산같이 높게 쌓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걱정을 내려 놓는 방법을 모르는 것같다. 한국에 오면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기만 한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창 문 밖 깔끔하게 정돈 된 거리만이 우릴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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