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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Nov 01. 2020

570일간의 여행을 마치며

변한 듯 그대로 인듯한 인간

달리 아내.

가기 싫었던 여행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생각보단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큰 사건 사고 없이 잘 이겨내고 온 제 스스로가 대견하다. 사실 나는 내가 이혼을 할 줄 알았다. 여행 중 '이 남자와 헤어져야겠다.' 결심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이 사라졌다.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바꾸지 않고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도 게임 좀 그만하고 나에게 관심을 갖으라며 소리를 지르지만 그것은 예전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한다.


여행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개발을 목표로 하고, 어학공부나 자아 성찰 등 꽤 거대한 목표를 품는다. 세계여행을 원치 않았던 나에게도 바라는 점은 몇 가지 있었다. 길치를 극복하는 것, 영어를 평상시 의사소통 정도로 하는 것, 한국의 예의범절에서 조금 벗어나 자유분방한 성격을 갖는 것. 이 정도가 내가 여행을 하면서 달라졌으면 하는 부분이었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셋 중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영어를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여행 내내 남편만 따라다니느라 지도를 볼 일도 없었다. 자유분방은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이 된 줄 알았지만 시댁에서 자가격리를 하며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못하는 내 자신을 보고 '그대로군아, 변한 게 없구나.' 느꼈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얻었다. 내가 바란 것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좋은 선물이라 생각한다.

첫째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선물 받았다. 한국에 있을 땐 한국의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고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휴가 때면 외국으로 나가 놀았고 한국의 바다, 강, 산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름답지 않다 생각했다. 그런데 외국에서 엄청나게 멋지고 놀라운 것들을 보고 오니 보는 안목이 생긴 것 같다. 특히 예전엔 몰랐던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었고 들판, 하늘, 노을, 해넘이, 풀벌레 소리에 빠지게 되었다. 예전에도 분명 보았던 것인데 여행을 다녀온 후에야 한국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보이게 되었다.


둘째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남편이 나에게 주는 사랑과 관심 물질적 선물들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남편과 다툼이 있는 날엔 '이럴 거면 이혼해'라는 말은 정말 밥 먹듯이 내뱉어 왔는데... 지금은 내 인생에 남편이란 귀중한 사람이 찾아온 것이 너무 다행이며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계속되는 나의 철없는 행동에 남편이 먼저 손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습관처럼 내뱉다가 결국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서로 너무 달라 지어낸 부부 이름 '달리 부부'.

570일의 여행 끝엔 서로 달라서 달리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산다는 뜻의 '달리 부부'가 되길 바란다.


조금 느리고 더딜진 모르지만 함께 하는 순간은 늘 최선을 다해 천천히 오래오래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달리 남편.

결과가 중요한 걸까? 아님 과정이 중요한 걸까?

고3 수험생 어머니에겐 자식의 성적표가 가장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여행은 결과가 없는 무한의 과정이다.

여행 초반의 끊임없는 마찰로 시작해서 유럽 차박 여행, 그리고 이동으로 힘들었던 중남미 여행까지... 우리는 과정 속에서 서로를 알아 갔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을 깨우쳤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시작 앞에서 이번 여행의 깨우침을 되새겨 본다.


- "포기"할 줄 아는 삶을 살자.
- 행복은 돈과 꼭 비례하진 않는다.
- 시작이 절반이다.
- 긍정의 힘은 그 어느 것보다도 강하다.
-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낳는다.
- 소소한 감동에 감사하자.
- "같이"의 가치는 위대하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게 느껴지는 우리의 세계여행은 여기서 쉼표를 찍는다.

글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이 책을 덮을 때 즈음, 부족함 많은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얻어 가시는 것이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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