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내 마음이 편한 게 더 중요한 일이다 나는
2023년 7월 31일 월요일
분명 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는 소나기와 대신 찾아온 더위
-턱을 깨 먹고 상처가 아물기 전에 현장으로 복귀했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일은 일이니까. 아침에 단단하게 붙여놓은 반창고는 오전이 지나기도 전에 땀에 젖어 떨어져 버렸다. 방수 반창고를 써봤지만 부위가 턱이다 보니 제대로 붙기도 힘들고 계속 움직이는 부위라 땀을 많이 흘리면 들떠서 떨어져 버렸다. 상처부위에 먼지가 조금씩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일할 때만 일에 신경 쓰고 끝나고 나면 아예 잊고 지내기로 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속에 쌓아놓은 미련한 사람이 나인데, 지금처럼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다가는 내가 먼저 나자빠질 것 같았다. 일은 물론 중요하지만 가족만큼 중요하진 않다. 일할 때는 최대한 집중하고 쉴 때는 다 미뤄두고 그저 쉬기로 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에 상처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일에만 집중했다. 지금 일할 시간이니까.
7월의 마지막 날. 본격적인 여름인지 아주 푹푹 찌는 날씨였다. 날이 덥든 말든 일은 계속되고 시간은 흐른다. 이번에 들어간 현장은 인천이었다. 가는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이니 출퇴근이 가능했고 현장을 보기 전까지는 끝나고 항구에서 회나 한 사바리 해볼까 싶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좋은 상상을 했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는 것 같다. 행복 회로와는 다르게 일이 끝나고 나면 집까지 운전하는 것이 영 힘들다. 게다가 신도시 같은 느낌이라 항구도 은근히 멀었다.
일이 끝나면 서로 오늘 일을 이야기할 새도 없이 허겁지겁 집으로 출발해야 도심의 퇴근 정체를 피할 수 있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텐데 일이 끝나고 모두를 보낸 뒤, 차 앞에 서서 혼자 몇 대의 담배를 피우며 오늘의 일을 생각해 본 후에 퇴근을 시작했다.
-오늘 일에 대한 미련을 담배에 태워 최대한 털어내고 차에 타려고 했다. 차에 타는 순간 집에 가는 것이니 아무것도 집으로 들고 가고 싶지 않았다.
급하게 달리면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은 조금 느긋하게 가면 한 시간 삼십 분이나 걸리는 길이 되지만 그 시간만큼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삼십 분 더 빨리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 퇴근을 서두르느라 난폭해진 차들 사이로 억지로 비집고 달리고 싶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답답하게 바라봤지만. 뭐 어떤가.
내 마음이 편한 게 더 중요한 일이다. 나는.
가끔은 계속 막혀있는 차들 사이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새로운 길로 틀어보기도 한다. 내비게이션이 새로 지정해 주는 길은 거리 상으로든 시간 상으로든 분명 더 빠른 길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막히는 기분이다.
막히는 순간, 막히는 시간에는 어떻게든 막히게 되어 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머리를 들이밀면 조금 빠르게 갈 수도 있겠지. 다만 그만큼 머리 디미는 이들끼리 부딪힐 확률도 높아질 거다.
-서두르다가는 다치기만 하고 시간이 더 늦어지기도 한다. 조급해하다가 턱을 깨 먹은 나처럼.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늦을 거라면 내 마음이라도 편하게 가는 게 더 좋다고 나는 느꼈을 뿐이다.
어머니와 동생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인사만 하고 냅다 밟아서 날아오라는 걸 보면.
-그렇게 삼십 분 일찍 오면 또 내 방 청소 좀 하라고 할 거면서.
-아낀 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돌아오는 경우는 내 마흔 평생 거의 못 봤다고.
널 따라오는 시원한 바람
길가에 가득한 아카시아
아무도 돌보지 않지만
건강하게 흔들리고 있어
어느새 너의 앞엔
작은 비밀의 공원
낡은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다섯을 센 뒤
고개를 들어 눈을 뜰 때
넌 최고의 오후를 만나게 될거야
하낫! 둘! 셋! 넷! 씩씩하게
더 밝게 더 경쾌하게
둘! 둘! 셋! 넷! 튼튼하게
아주 조금 더 기운차게
하낫! 둘! 셋! 넷! 씩씩하게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둘! 둘! 셋! 넷! 튼튼하게
아주 조금 요란스럽게
어때 기분이 좋아졌지?
한결 맘이 후련해졌지?
페퍼톤스,『Sounds Good!』앨범, 2009.12.07, 「공원여행」중에서
어찌 됐든 또 오늘을 살아야 한다. 나는 조금 더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굴어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일에 대한 걱정은 그저 현장에 다 쏟아버리고 오기로 했다. 생각처럼 잘 될진 알 수 없다. 집에서 몇 번이나 미리 그려보던 일에 대한 생각들을 모두 털어내고 나면 일을 더 못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흉터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서워졌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더 쉬운 법이다. 절대로 이번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내 몸에 상처가 남는 것은 큰일이 아니다. 가족들이 내 눈치를 보고 내 상태를 걱정하는 것이 큰 일이지. 그리고 그런 모습은 내게도 상처가 된다.
문득 퇴사하던 날이 생각났다. 모두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웃으며 돌아섰다. 그때는 모두 웃으며 인사를 했다. 십 년을 봐 온 이들과의 인사임에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래. 아무렇지 않게 웃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면 나도 모르게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퇴사하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길은 그대로였지만 그대로가 아니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마지막이라는 특별함이 깃들자 덤불 속 고양이도 보였고 아파트 아래의 갈림길에선 바람이 갈라지는 것도 느꼈다. 항상 보던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그저 내가 지나치는 것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막히는 강변북로 위에서 나는 햇빛이 튕겨 오르는 한강을 보았다. 어떻게든 끼어들고 싶어서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머리를 서서히 차선에 가까이 붙이는 성질 급한 차도 보았고 선팅이 덜 된 앞 차에서 신나는 노래가 나오는지 어깨춤을 들썩이는 운전자를 보았다.
나는 아직도 지나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일은 일대로 두고 지나치던 것들을 조금 더 둘러봐야겠다. 어찌 알겠는가. 내게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잘 되지 않던 일이 혹시나 잘 될지도 모르지 않나. 음. 뒤져라 해도 잘 안되던 걸 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