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부끄러운 일을 적어내는 것은 담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2023년 7월 23일 일요일
흐리고 비는 부슬부슬
-이 시기의 나는 조급해서 시야가 매우 좁아졌다. 마감이 임박한 현장에 들어왔고 그만큼 여유는 없었으며 눈치 없는 나는 계속 실수를 했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다.
일기는 대부분 푸념으로 채워졌으며 주변 환경을 둘러본다기보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한 진짜 '일기'를 적어내고 있었다. 다시 읽어보는 내내 한 방향으로 매몰되어 있는 그 감정이 느껴져서 불편하고 짜증 났다. 민낯에 맨몸뚱이로 거리 한복판에 떨어진 기분이다.
-여행하며 다시 잘해보자고 다잡았던 마음이 여전히 잘 습득되지 않는 기술과 주눅 들고 있는 마음에 지쳐가는 시기였다.
어떤 날은 '어떻게 하면 저 일을 잘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 조금은, '포기'를 흘낏거리던 나날들이었다.
하루 종일 날이 흐리고 비가 왔다. 나는 이틀째 잠만 자고 있다. 이틀 전, 술을 먹고 자빠졌다. 턱이 조금 찢어졌다
-이 짧은 문장을 쓰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부끄러운 일을 적어내는 것은 담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족들이 내 방 근처에서 혀를 한 번씩 차고는 돌아섰다. 누군가 근처에 오면 가만히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복잡한 마음을 들키기 싫었다.
호기롭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잘할 수 있다고 나를 다독였다. 나는 단단한 의지로 끝까지 노력해서 해내겠노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느 날 속마음을 털어놓는 술자리에서 나는 속절없이 무너졌고 과음을 했고 넘어졌고 턱을 깨 먹었다. 찢어진 턱이 현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힘들어하고 있다.
어머니가 친구분들과 찜질방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동생도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빈 집을 천천히 거닐었다. 아무도 없는 익숙한 집에 안도감이 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아무도 없어야 안도감을 느끼다니.
-심지어 가족들이 집을 비운 건데! 일을 그만둘 때 응원해 주던 내편을 보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어쩌면 가족들은 이런 내 상태를 짐작하고 자리를 비워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얼마나 쪼그라들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베란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비가 내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진다고 한다. 마음이 약해지면 몸이 다치기도 하는 것 같다. 따끔거리는 턱을 느끼면서 살짝 썰렁하게 느껴지는 베란다에 앉아 가만히 마음을 달랬다.
고삐 없이 튀어나와 버린 마음과 그 감정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던 것은 내게도 아프고 쓰린, 나 자신도 놀란 경험이었으니까. 이젠 괜찮다고 그러지 말자고 스스로를 달래고 경계했다.
비는 하루 종일 그치지 않았고 덕분에 빗소리에 가려 내 중얼거림이 내게만 들릴 수 있었다.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혼자 앉아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황지우,『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문학과지성사, 2007,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중에서
술 퍼먹고 턱 깨 먹고 집에 쪼그라져 숨어있는 주제에 생각나는 시라고는 또 이런 거다. 그저 주점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생각이 난 시지만 일맥, 나도 지금의 어설프게 나이 든 내가 어색하고 숨고 싶으니 억지로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도 넘게 베란다에 퍼질러 앉아있었다. 밖과 나를 가르는 창문이 명확하게 인지되는 공간. 숨어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이기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기까지 조금만 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속이 살짝 울렁거렸다. 과음으로 인한 것인지 지금의 내가 답답해서 그런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한 것인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를 믿고 밀어붙이는 것은 좋으나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르고 있나 보다. 어디까지가 한계선인지 어느 지점에서 한 번 풀어줬어야 하는 건지. 사고를 친 지금에도 잘 모르겠다. 나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제야 턱에 흉터가 남을 수 있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가만히 커다란 반창고를 만져보았다. 돌아서서 빈 집을 바라보았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매일 이야기를 하는 내 편들. 그럼에도 지금은 혼자 있는 것이 마음 편했다. 아마도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하던 이가 어느 날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술을 먹고 병원에 실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턱이 간지러웠다. 반창고 위를 긁어본다.
텅 빈 집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걱정할까 봐 건넨 선의의 거짓말은 그저 허무하게 허공에 흩어졌다. 내가 뱉어낸 그 허무한 거짓말들 위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을 단단한 흉터 하나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이나 베란다에서 집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반창고를 긁었다.
간지럽던 턱에서 비릿한 아픔이 올라온다. 그제야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실수는 실수이니 조심하면 된다. 실수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저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조심해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 그게 배우는 것이니까. 이번에 배우는 것은 좀 큰 것이니 꼭 잊지 않도록 하자. 나는 조금 더 나를, 가족을, 나를 믿어주는 이들을 돌아봐야 한다.
여전히 나는 턱을 긁으며 집 안으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허공에 단단히 박힌 흉터가 슬쩍 내 가슴 위에도 옮겨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