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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Feb 16. 2024

미안한 마음으로

너무 늦게 배워지는 것들

    

배꽃 집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과거형으로 쓰인 것은 지금은 그 존재가 여기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노란 털을 가진 고양이 이름은 가을이다. 가을이는 다른 고양이와 함께 배꽃 집으로 입양되었다. 그 날은 가을나무가 단풍으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을 때였고, 두 마리 고양이는 ‘나무’와 ‘가을’이라는 이름을 나누어 갖게 되었다. 


나무는 가을이와 남매이며 후에 부인이 되었던 흰색 고양이었다. 나무는 배꽃집에 오래 있지 못했다. 배꽃집 손님 중에서 탐내는 이가 있어 도시 유치원으로 재 입양 되어 떠났다.

가을이의 본가도 게스트하우스였다. 배꽃집에서 자동차로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하지만 운전을 하지 못하는 고양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힘껏 달리는 것뿐. 고양이 달리기로 그곳에 닿으려면 족히 반나절 이상을 걸릴 것이다. 하지만 가을이가 그곳을 가고 싶어 할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가을이 엄마는 가을이가 태어나 엄마젖을 떼기 전, 그러니까 한달이 되지 않았을 때 집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저 세상으로 가고 없기 때문이다.


배꽃집 사람들은 엄마 잃은 가을과 나무를 애틋하게 키웠다. 특히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배꽃 집 두 아이들에게 아기 고양이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들은 낯선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엄마 잃은 작은 생명이었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두 아이들의 눈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졌다.

배꽃 집에 오는 손님 중에는 고양이 집사가 많았다. 사람을 잘 따르고 애교 많은 가을이를 본 고양이 집사들도 “이런 고양이는 처음 봤다”며 가을이의 친화력에 놀라워 할 정도였다.


하지만 배꽃집에 온 지 오래지 않아 가을과 나무는 바깥으로 쫓겨 가야 했다. 인간과 동물의 거주 공간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남편의 고집 때문이었다. 밖으로 쫒겨난 나무와 가을이는 처음 얼마 동안은 열린 문으로 몰래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 이불속에서 숨어 있기도 했으나, 차츰 고양이들도 우리도 분리된 생활에 익숙해졌다. 고양이들은 우리가 바깥에 나갈 때면 어디선가 바람같이 모습을 드러내고는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특히 가을이의 애교에는 가족 모두가 홀딱 반할 지경이었다. 나무는 사춘기 아이들이 보이는 어색함, 거리두기 같은 새침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몸을 스트레칭 할 때 보이는 우아한 자태를 볼 때면  눈에서 절로 하트가 발사되었다.고양이를 싫어하던 남편도 어느새 가을과 나무에게 스며들었다.


안주인이 고양이를 알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어릴 때 읽었던  <<아서가의 몰락>>이랄지 <<검은 고양이>>를 쓴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 나오는 고양이는 음산하고 불길한 동물이었다.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책이 목적하는 주제에 따라 탄생한다. 때문에 목적에 따라 인물의 성향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포우의 책에 등장하는 검은고양이는 그가 가진 다면적인 특성이라기보다는 목적에 부합된 창조물이라는 것을 어린 아이는 알지 못했다.

    

가을이는 책에서 보았던 음산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두 마리 고양이가 일가를 이루고 난 뒤부터 배꽃집에는 뱀이 사라졌다. 알고보니 뱀의 천적이 고양이란다. 뱀이 사라진 것만 해도 고양이를 아낄 이유는 충분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가을이로 부터 받게 되는 위로였다.  


왜 사람들이 자발적 집사가 되기를 자처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을이와는 말하지 않아도 감정 상태를 알아봐 주고, 다가와 주었다. 특별한 교감과 위로가 있었다.

동물들 중에는 눈을 뜨고 처음 본 대상을 엄마로 알고 따르는 동물이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 <아름다운 비행>은 철새와 소녀의 교감을 나누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가을이는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소녀를 따르듯 나를 따랐다. 의심없이 다가와 신뢰하며 따르는 존재를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존재였던 가을이가 배꽃 집을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안주인은 가을이를 잊지 못한다.  그때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와 미안한 마음때문이다.


고양이를 처음 키운 안주인은 고양이의 생태를 잘 알지 못했다. 처음 몸에 상처를 잔뜩 입은 낯선 고양이가 배꽃집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안주인은 상처 입은 고양이를 불쌍하게 여겼다. 그래서 밥을 챙겨주며 가을이와 잘 살게 될 줄 알았다. 고양이의 세계도 사람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남자들이 대부분의 주도권을 쥐고 권력행사를 하는 사람의 세계처럼 고양이 세계에도 영역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전쟁은 처절함 그 자체였다. 가을이의 머리가 부풀어 올라 대갈장군의 모습이 되었을 때도 안주인은 가을이를 놀려먹었다. “가을아, 너 왜 대갈장군이 됐냐?”


고양이가 뺨에 바람을 한껏 넣고 제 머리를 크게 부풀렸던 것은 수컷 고양이가 생존을 건  필사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두 마리 고양이가 밤마다 싸웠고, 아침이면 가을이가 여기저기 찢겨 피가 흘리는 것을 보며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도와야 할 줄 몰랐다. 얼마 전 지인의 집에서 밤에만 집으로 고양이를 들이는 것을 보고는 그때 난 왜 가을이를 집으로 들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늦은 한탄을 쏟아냈었다.   

  

평화주의자라 불렸던 가을이가 배꽃 집을 떠난 지도 꽤 되었다. 가을이가 떠난 뒤에도 배꽃 집을 찾아오는 고양이를 여러 번 맞고 보내고를 반복한다. 나는 고양이가 찾아오면 밥그릇에 밥을 채워놓는다. 배꽃 집 가을이도 어디서 누군가의 선한 손이 베푸는 온정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가을이를 만나고 난 뒤 동물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서 달라진 것들이 있다. 

감정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독점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 동물도 감정을 지닌 생명체이며, 동물들이 하는 행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나는 동물 가을이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가을이에게 더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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