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105살 할배와의 동거
잊지 못할 추억
그는 1919년에 태어났다.
출생지는 오스트리아. 조국이 세계 1차 대전 직후 생제르맹 조약을 맺은 해이다. 난 그 당시 20대 중후반이었다.
그와 마주하게 된 것은 하늘이 파랗고 커다란 구름조각들이 떠다니던 여름, 바르샤바 근교에서의 일이었다.
그와 만난 후 함께 살자고 동거를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우리는 만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같이 살기로 결심했다. 이끌림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냥 그렇게 확 끌리는 것. 아마 그게 여름이어서 더 그랬나 보다.
그를 묘사하자면, 이는 누렇고 중간중간 옴폭 눌려있다. 몸은 또 어떠한가. 길게 금이 간 곳도 있었으며 가까이 가면 쿰쿰한 냄새와 함께 좀먹은 부분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의 발은 삐걱거렸고 몸은 텅 빈듯한 느낌을 종종 주었다.
내뱉는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그는 정정했다. 움직임이 거침이 없었고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잘 해내었다. 항상 하던 대로 당연하게, 100년 넘게 해 오던 것처럼.
그와 대화할 땐 뱉는 숨이 카랑카랑한 그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편안함을 주었다. 그렇다. 눈치채었는가? 그는 악기이다. 지금은 내 친구집에서 새로운 삶을 맞이한 나의 ex-그랜드 피아노이다.
이가 누런 연유는 그의 이는 상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고, 좀 먹은 부분이 있는 이유는 오래되어 부품 중에 좀 먹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건 사실 갈면 되는 문제인데 치는데 큰 문제가 없었고 또 부품을 갈기엔 금전적인 부분이 부담이 갔다. 아마 그전에도 그래서 그랬는지 오래갈지 않은 상태인 듯 보였다. 그렇기에 뚜껑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면 쿰쿰한 냄새가 났던 것.
발은 페달이다. 할배는 워낙 오래되었고 나무가 살짝 틀어졌는지 페달을 밟으면 삐걱거렸다. 사람을 불러 고쳐도 또 삐걱거렸다. 몸이 텅 비었다는 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부분들이 오래되었기에 연주를 하면 내게 그런 인상을 주었다. 피아노 줄도 100년 넘게 그대로 인 것인지 아님 아주 예전에 간 것인지 잘 모르는 오래된 소리가 났다. 그렇기에 카랑카랑한 소리가 났던 것.
하지만 연습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고, 연식이 있다는 걸 알고 입양했기 때문에 별 불만은 없었다. 또, 할배는 할배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이 악기는 왜인지 모르게 앞에 앉아있으면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또 위에 썼던 것처럼 할 일은 전부 잘 해냈다.
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기능에는 이상이 없었고, 나는 이 악기로 학교 시험들도 준비하고, 실내악 콩쿨도 준비했었는데 연습시간도 늘어났고, 마음도 편한 상태라 집중하기 좋았는 점도 분명 있었겠지만, 나는 할배와 함께했어서 시험과 콩쿨 때 행운들이 따랐던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이 한편에 있다. 뭔가 든든했다.
(내 방에 거주하던 시절의 할배 모습.)
그가 나와 살기 전, 그는 레스토랑에 8년 정도 있었다고 하였다. 약 16m2 정도 되는 내 방에 놓여있는 때와는 비교치 못할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북적북적 사람들이 대화하고 식기를 부딪히는 소리, 들뜬 분위기, 화려한 조명. 밤이 되면 고독에 잠겨 그는 힘들었을까? 혹은 쉼에 기뻐했을까? 레스토랑에 있기 전,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이 나라에 오기 전 그는 어디에 있었을까? 폴란드에 오기까지 분명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다. 105년 중 나와 약 4년 반, 레스토랑에서 8년, 이번 겨울부터는 할배는 내 방보다 훨씬 넓은 친구 집 전원주택에 있는데, 행복할까 지금?
105년의 세월 동안 그는 어디에 있었을 때 가장 행복했을까. 물어도 나는 답을 얻을 수가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의 몸에는 LAUBER & GLOSS 가 새겨져 있다는 것 정도. 사람으로 치면 가문인 셈. 이 정보를 통해 인터넷에서 그의 가문 정도나 조금 알 수 있었다.
(너무 길어져 2편에서 더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