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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정 May 23. 2024

모노노케 히메 MBTI분석: 아시타카는 유미주의자

지브리 캐릭터 MBTI분석_아시타카 편

영화/드라마 캐릭터의 MBTI 성격유형 분석

오늘 분석할 캐릭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 아시타카.


아시타카


아시타카의 성격 유형 - 갈리는 평가들

아시타카의 mbti 유형과 관련해서는 INFJ 아니면 INFP 라는 설이 주를 이룬다. 드물지만 ISFP와 INTP, ENTP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꽤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아시타카 INFP설>부터 검토해 보자. 그를 infp라고 주장하는 블로그가 있어 가져왔다.


https://blog.naver.com/85design/222047034950


이 블로그에 따르면, 아시타카는 “생판 남인 타타라 마을과 숲의 분쟁에도 적극 뛰어들어 … 돕고자”하며, “끼어들었다가 오히려 양측 미움을 사고도 남을 일임에도 아랑곳 않는" 인물이다.


이 블로그 포함, 대부분의 <아시타카 INFP설>의 옹호자들이 드는 주요 근거는 바로 아시타카의 ‘평화 중재 행위’다. 확실히, 아시타카는 영화 내내 두 세력의 충돌을 막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닌다.


숲과 인간,  양측을 중재하느라 바쁜 아시타카 사마



아시타카는 과연 INFP일까?

하지만, 단순히 중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시타카를 INFP로 결론내리기에 충분할까? 위 블로그에서 말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고, 생판 남들 간의 분쟁에 적극 뛰어드는” 모습은 사실 INFP답지 않다. 오히려 외향적 감정형들(Fe)의 오지랖에 가깝게 느껴지는 행동이다.


어쩌다가 인프피가 중재자의 대명사처럼 통하기에 이르렀는지 의문이다. ‘중재 및 분쟁조정행위’는 infp의 전유물이 아니며, 여타 유형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장점과 특기를 활용해 분쟁 조정에 탁월함을 보일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유사mbti사이트의 INFP유형 설명:  ‘중재자(mediator)’라는 부제가 떡하니 붙어있다


아시타카가 파국을 막기 위해 열심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단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그리 열심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아시타카가 필사적이었던 건 그가 대립하는 양쪽의 관점 모두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양쪽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기 때문에, 공멸의 길만은 막고자 한 것이다. 양측 모두가 정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서로 충돌해 죽고 죽이게 되는 결과는 너무나 부조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아시타카는 '전체'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증오와 적개심이 오가는 갈등 국면에서도 아시타카는 infp유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이하다. 오히려 T로 오인할 만큼 이성적인 모습을 견지한다. 심정적으로 저항감을 느끼면서도 에보시의 ‘부국강병론’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아시타카다(오히려 그가 평정을 잃고 흔들리는 건 에보시와의 접견 이후, 산이 혈혈단신 마을에 쳐들어 오면서부터다).


나는 아시타카가 INFJ라고 생각하는데, <아시타카 INFJ설>은 인터넷 세상의 다수설이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엔 다수설과 겹치는 것도 있고 나만의 고유한 이유도 있다. 함께 살펴 보자.


귀찮아서 인터넷의 다수설에 묻어가는 게 아니다. 나만의 철저한 검증을 거쳤다.



INFJ 색채가 강한 중재행위: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


타타라 마을에 머무는 동안 아시타카는 그곳의 수장 에보시를 따라 마을 투어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생각을 듣게 된다. 아시타카는 에보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그녀의 비전이 숲에 가하는 잠재적 위해 때문에 화가 난다. 그 사상의 인간 중심성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급하게 판을 엎지 않고(오른팔에 붙은 원혼이 파르르 떨지만 그가 왼팔로 진정시킨다) 인내하며 그녀의 말을 경청하는 아시타카. 설명을 끝까지 들으며 에보시의 지향점을 파악하려고 한다.




INFJ유형은 서로 다른 여러 관점의 본질을 냉정하게 고려할 줄 아는 유형이다. 불안감이나 개인적 위협에 눈 멀지 않고 전체를 조망해 낼 수 있는 유형. INFJ인 아시타카는 숲의 사정을 이해하지만, 에보시의 로직도 이해한다. 마을 사람들과 섞여 그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관점 또한 흡수한다. 제철소에서 고로에 바람을 불어넣는 여자들의 노동을 돕기도 한다.


어떤 순간에도 ‘전체’에 대한 감을 잃지 않는 INFJ유형. 모든 이의 동기와 모든 이의 관점을 이해하는 아시타카가 자연과 인간 양쪽을 중재하는 건 자연스럽다. 물론, INFP 유형도 ‘중재’라는 걸 충분히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자기자신의 신념이 걸린 싸움에서라면 영화에서보다 훨씬 격정적으로 반응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INFP는 자신이 깊은 믿음이 위협당하면 진심을 감추기 어려워하는 유형이다. 한편으로 더 확 쏠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갈등 중에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INFJ의 인류애


<아시타카 infp설> 중에는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어중간한 타협을 하는 법이 없는‘ INFP의 이상주의적 측면이 아시타카의 성격과 부합한다는 주장이 많다. 아래 스크린샷도 그런 글 중 하나다.


(링크: https://screenrant.com/myers-briggs-studio-ghibli-personality-testing/ )


하지만, 대의에 대한 신념이 강하기로는 INFJ 유형도 어디가서 꿀리는 스타일이 아닌데다, J타입이라서 궤도에서 이탈하는 느슨함도 여간해선 없다. 게다가 INFJ 또한 INFP와 더불어 커시(Keirsey)시스템에선 이상주의자(Idealist) 그룹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신념이 강한 이상주의자라서 INFP"라는 주장은 불충분하다.  





죽음에 초연한




저주에 걸려 마을을 떠나 먼 서쪽의 숲까지 흘러와 거대한 전쟁에 휘말리게 된 아시타카. 그러나 그는 불평 한번 내뱉지 않는다. 흔한 자기연민도 없다. 시련이 닥칠 때마다 자기 선택의 후과를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운명을 마주하는 담대함. 그 의지의 위대함. Se적 현실에 초연한 INFJ라서 그런 의연함을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아시타카는 기꺼이 대의를 위해 희생하며 그 과정에서 한톨의 망설임도 내비치지 않는다.


극 초반, 재앙신을 쓰러뜨린 후 열렸던 부족 회의에서 샤먼인 히이님이 묻는다.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냐고. 아시타카는 “재앙신에게 활을 쏘는 순간에 이미 (운명을) 각오했다”고 대답한다. 이는 아시타카 성격 속의 J-코드를 보여준다. 위기 속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댓값을 냉정하게 직시하며, 치러야 하는 개인적 대가를 성숙하면서도 명징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공동체를 지키다가 치명상을 입었고 그때문에 어쩌면 다시는 마을로 돌아올 수 없을 수 있다는 사실마저 (공동체를 위해) 묵묵히 수용한다. 가혹한 댓가이지만 회한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타인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면서도 별 망설임이 없다. 소속 집단을 위해 살아가고 집단 안에서 자신의 역할 수행에 편안함을 느끼는 외향적 감정(Fe) 기능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행동의 결과와 그 의미를 직시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아시타카 (“J”타입)


재앙신에게 입은 오른팔의 상처에는 원혼의 저주가 걸려 살과 뼈를 파고 들어간다. 히이님은 상처 때문에 결국 그가 죽게 될 거라고 예언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아시카타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속에서도 그에게는 묘한 차분함이 있다. 이건 Ni돔들에게서 보이는 특징. 신체의 고통, 혹은 죽음의 공포 같은 것이 여간해선 요란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감추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용감한 성격도 아닌데 마치 유리 판을 한겹 덧씌운 듯 충격이 완충되어 전해진다. Si가 8번 섀도우 기능이어서일까? 오히려 그 담담함을 바라보는 쪽이 훨씬 동요가 크다. 나는 이 ‘죽음 앞 초연함’을 아시타카 INFJ설의 근거로 삼겠다. 만약 일부 의견대로 아시타카가 INFP였다면 이 죽을 병 앞에서 훨씬 더 낙담했을 것으로 본다. 실의에 빠져 축 늘어진 모습 같은 것이 보였어야 한다. Si를 3번 기능으로 갖는 INFP라면.



슬프고 무섭지만 겉으로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여간해선) 뜨겁지 않은 INFJ

증오의 표현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아도 아시타카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고 침착하게 의사 표현을 한다. 높은 압력 속에서도 머리를 냉철하게 유지한다. INFJ 유형은 감정형 중 가장 이성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INFJ인 아시타카 또한 속으로는 온갖 감정을 생생히 느낀다. 영화는 머리털이 곤두서거나 요동치는 오른팔의 원혼 등으로 그의 감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냉정한 T유형처럼 행동하는 아시타카다.



사람들이 듣고 싶을, 들어야만 하는 말을 할 줄 아는 게 Fe적 화술이다.



사슴신이 총상을 치료해준 이후 아시타카가 맷돼지 신과 조우하는 장면이 있다. 나고신보다 더 거대한 몸집의 옷코토누시가 위압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자 산은 긴장한다. 혹여 아시타카를 죽일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아시타카는 차분하게 말한다.



“걱정마, 나고 신(재앙신)의 최후를 전하고 싶어.”
-아시타카, 모노노케 히메 중



자신의 신체적 쇠약함, 그리고 그 자리에 모여있는 자들의 격한 감정 속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주제에)  맷돼지 신의 감정적, 정서적 니즈를 정확히 읽고 그것을 준다. 바로 옆에 있는 산(IXFP)은 타인의 감정을 아시타카만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자네는 지금 분명, 나고 신의 마지막이 알고 싶을 게야




*삶의 궁극의 목적: 미(美)에 대한 헌신

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시타카는 일관되게 그녀를 구원하려 든다. 뭔가에 씌인 사람처럼. 급기야는 자신의 목숨을 걸기까지 한다. 그녀를 살리려다 총에 맞았고 끝끝내 의식을 잃고 말에서 굴러 떨어진다. 산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 쓰러진 아시타카를 물어뜯으려는 들개들을 물리치고 그녀는 왜 자신을 구했는지 묻는다. 이때, 아시타카는 본 영화 최고의 명대사를 내뱉는다. 그리고 기절한다.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모노노케 히메의 펀치라인



산은 이 말에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결국엔 아시타카를 죽이지 못한다.


아름답기에 살아라 — 그런 말을 하는 건 바로 INFJ가 미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형제 유형인 INTJ도 마찬가지. 내향적 직관형에게 현생의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은 대체로 간과된다고 말할 수 있다. 감각 경험의 에센스만 취하고 나머지는 여과해 버리기 때문이다. 속의 전분만 빨아먹고 쌀겨는 버린다고 해야할까? 이런 이들에게 감각 세계와의 강렬한 접촉은 주로 미(美)적 경험에 편중되어 일어난다. INFJ인 아시타카 역시 유미주의자였고, 출혈로 의식이 혼미해지는 순간 정체가 드러난다.


산을 살려야 하는 이유는 그녀에게 품은 특별한 감정 때문이 아니다. 숲의 후예인 그녀가 살아남아 가족을 지키도록 해주고 싶어서도 아니다. 산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건 그녀가 자체로서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그녀를 살려 환심을 사거나 배우자로 삼으려는 속물적 의도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존재가 이 세상에 계속하여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서라도 살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탐미주의자의 빅픽쳐다. 이것은 중대한 스테이트먼트다.

           

자네는… 아름답네.




추가 포인트 1

그가 ISFP 라는 주장도 있다. 조용하고(I) 신체 건강하며(S) 따사롭고(F) 물렁물렁하게 느껴지기 때문(P)이라는 셈법일 것이다.

그를 S로 보는 게 도드라지는 그의 신체적 격투 능력 때문이라면, 그건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왕위 계승자의 기본적 소양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자. 세레나 윌리엄스와 노박 조코비치가 INFJ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Se를 열등기능으로 갖는다고 하여 운동 능력이 낮은 것이 아니다. Mbti는 체력장이 아니다.




추가 포인트 2

그렇다면 ISFJ 유형은 어떤가? 아시타카가 INFJ라고는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히 미래지향적 면모도, Ni특유의 비전도 잘 눈에 띠지 않는걸? 진중하고 신중하며 타인을 서포트하는 ISFJ유형이 아닐까?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는 극중에서 기회 닿는대로 주변 사람들을 돕곤 한다.


아시타카가 점잖게 행동하고 관습과 규범에 충실힌 듯 보이는 건 중세의 시대적 특성, 특히 에미시 마을의 낙후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과거엔 공동체 생활이 지금보다 중요했고, 예의범절도 중요했다. 하물며 아시타카는 부족장이 될 젊은이였다. 그는 도시 출신이 아니다. 그의 마을은 500년 전 전쟁에서 패한 후 동쪽 변방으로 숨어든 이들이 세운 공동체다. 철기를 생산하고 화승총을 쓰며 자연 정복을 꿈꾸고 있는 당대(일본 중세)보다 훨씬 뒤쳐진 문화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가 좀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건 세상의 트렌드로부터 고립된 환경에서 옛스러운 교육을 받아와서라고 생각하자. 고유의 성격보다는 환경의 탓으로.




기능 스택으로 볼 때, ISFJ(Si-Fe)와 INFJ(Ni-Fe)는 구조적으로 닮은꼴이다. 팔의 상처에 대해 덤덤하게 반응하는 점을 INFJ 특유의 열등Se라고 보았지만, Si 특유의 고통 감내력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아시타카가 ISFJ 꼬리표를 얻지 못한 것은 역시 그의 미감 때문이다. “너는 아름다워”란 대사 한 줄로 아시타카는 하늘로 날아올라 INFJ가 되었다. 멋진 대사를 앞세워 결론을 뭉뚱그리려는 게 아니다. 실제로 두 유형의 결정적 차이는 그 점에 있다.  

아시타카는 유미주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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