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가운의 그림자

30년, 두 아이가 만든 서로 다른 내일...

by 토사님

2055년(40살)


장면 1: 같은 반, 다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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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 저녁

유리벽 너머로 도심의 수직정원이 보였다. 식탁 위엔 와인과 작은 샐러드 접시,벽 한쪽에는 살아 있는 이끼 장식이 걸려 있었다. “오랜만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웃음이 터졌다. 사람들이 차례로 포옹하며 반가움을 나눴다.


근황 이야기

친구 A: “나 요즘 로컬 푸드 유통해. 진짜 괜찮아졌어.”

친구 B: “난 기후복원 설비 회사 들어갔지. 여긴 윤서, 진짜 스타 아니야?” 모두가 윤서를 바라봤다. 윤서는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냐, 그냥 일할 뿐이야.”


준호를 향한 시선

친구 C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호는… 병원 접었다며? 지금 뭐 해?” 순간 공기가 살짝 묘해졌다. 준호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잠깐 쉬고 있어… 새로운 일 찾아보는 중이야.” 누군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의 침묵이준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내면 독백 – 준호

‘같은 반에서 시작했는데…어쩌다 이렇게 다른 길이 됐을까. ’잔 속 와인빛이 살짝 흔들렸다.


결말 이미지

모두가 윤서의 근황에 집중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준호는 고개를 들었지만, 어쩐지 그 자리의 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그의 속삭임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장면 2: 도시를 살린 사람


동창회 자리 – 잠깐의 소란

동창회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한 기자가 다가왔다. 기자는 윤서에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박윤서 박사님, 인터뷰 잠깐 가능할까요? 오늘 동창회에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윤서는 동창들을 한번 둘러봤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 윤서야. 우린 기다릴게.”


인터뷰 – 레스토랑 구석 자리

기자가 녹음기를 켰다.“지금 도시생태 전문가가 존경 직업 1위인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요?” 윤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도시는 사람만 사는 공간이 아니에요. 도시가 아프면, 사람도 아픕니다. 우리가 한 일은, 도시의 숨통을 다시 트이게 한 것뿐입니다.”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했다. “많은 시민이 박사님을 ‘도시를 살린 사람’이라고 부르던데, 그 말이 부담스럽진 않으신가요?” 윤서: “부담스럽죠. 하지만 도시가 살아났다는 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났다는 뜻이니까…그걸 생각하면 이 길을 멈출 수가 없어요.”


준호의 시선

멀리서 인터뷰를 바라보던 준호가 잔을 내려놓았다. 카메라 플래시가 윤서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같은 반 친구였는데…지금은 도시를 살린 사람이구나.’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저릿했다.


결말 이미지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며 말했다.“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윤서: “우리는 도시를 살렸지만, 이제 그 도시가 우리를 살리고 있어요.” 그 말은 동창회장의 소란보다 더 깊게, 준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


장면 3: 새로운 길, 낯선 씨앗


동창회가 끝난 뒤 – 레스토랑 앞

모두가 택시를 잡거나 지하철역으로 흩어지고, 윤서와 준호만 남았다. 거리는 늦은 봄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물 위에서 흔들렸다.


대화 시작

윤서가 조용히 물었다. “준호, 요즘… 괜찮아?” 준호는 잠시 고개를 떨군 채 웃었다. “솔직히 아니야. 병원도 접었고, 뭐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평생 몸만 치료해왔는데…이제 그 몸이 오지도 않아.”

윤서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도시를 치료하는 건 생각해봤어?” 준호: “도시? 난 의사였어. 그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 윤서가 미소를 지었다. “몸이 아프면 치료하잖아. 도시도 마찬가지야. 도시는 살아 있는 몸이야, 준호.”


결심의 싹

준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도시를 치료한다고?’ 윤서가 명함을 내밀었다.“내일 교육 프로그램 시작해.한번 와볼래? 그냥 보고만 있어도 돼.” 준호는 명함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해볼게.”


결말 이미지

늦은 봄비가 더욱 굵어졌다. 윤서는 우산을 펴고, 준호는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손에 쥔 명함이 비에 젖어들었지만, 눈빛은 오랜만에 조금 반짝였다.


장면 4: 환자 대신 도시


도시 생태 복원 현장 – 낮

하늘은 연초록빛으로 환하게 열려 있었다. 빌딩 사이 좁은 공간에 작은 도시 숲이 조성되고 있었다. 드론이 흙을 실어 나르고, 청년들이 모종을 심으며 웃고 있었다. 윤서가 준호를 데리고 들어섰다.

“여기가 내가 말한 현장이야. 오늘은 교육생들이 직접 식재를 해.”


준호의 첫 손길

준호는 장갑을 끼고 작은 모종을 집었다. 손끝에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환자 몸을 만질 때랑 비슷하네.” 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도시도 몸이야. 너는 그걸 알 손을 가졌어.”

준호는 모종을 조심스럽게 흙 속에 심었다. 뿌리를 덮는 순간, 마치 맥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는 게… 사람을 살리는 거랑 다른가?” 윤서가 웃었다. “결국은 같은 일이야. 아픈 시대에, 도시를 살리는 게 곧 사람을 살리는 거니까.”


결말 이미지

준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는 오랜만에 무언가 반짝였다.

‘내 손이… 아직 살아 있구나.’옆에서 윤서가 말했다.“잘했어. 이게 첫걸음이야.” 작은 바람이 불어 새로 심은 나무잎이 흔들렸다. 그 모습이 마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것 같았다.


화면 이미지

준호: 도시 생태 복원 현장에서 모종을 심고 있는 모습.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지만 표정은 편안했다.

윤서: 국제 회의장에서 세계 도시 지도 앞에 서서 발표하는 모습. 그 뒤 스크린에는 푸르게 되살아난 지구의 위성 사진이 떠 있었다.

아이들: 새로 조성된 도시 숲 속에서 뛰어노는 장면.그 숲 위로 무인 드론이 부드럽게 떠다니며 대기 질을 측정했다.

내레이션

“한 명은 몸을 치료했고, 한 명은 도시를 치료했다. 결국 지구가 아팠던 시대, 도시를 살린 사람이 더 많은 사람을 살렸다.”


마지막 이미지

준호가 심은 작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 옆에서 어린아이 하나가 물을 주며 웃고 있었다. 윤서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 준호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웃었다. 도시는, 마침내 숨 쉬고 있었다.


우리가 만든 시대

2055년의 한 뉴스 다큐멘터리. 기자가 화면 속 두 사람—도시 생태 복원 현장에서 일하는 준호와, 국제 회의장에서 연설하는 윤서—를 교차 편집해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도시 숲에서 뛰어놀고,공기가 맑게 빛나는 풍경이 배경으로 깔렸다.


기자의 마지막 내레이션

“성공은 시대가 만든다. 그리고 시대는, 결국 우리가 선택한 길에서 시작된다. 어떤 길은 한 몸을 살리고, 어떤 길은 도시와 지구를 살린다. 그러나 모두는 하나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매 순간 다음 시대를 선택하고 있다.”


마지막 이미지

준호가 심은 나무 옆에서 아이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윤서가 회의장에서 세계 각국 대표들과 악수한다.

화면이 점점 멀어지며,푸르게 되살아난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그 도시 위에, 작게 떠오르는 자막:〈흰 가운의 그림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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