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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소리 Sep 13. 2024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축제' 를 위해


아침에 눈뜨자마자 습관적으로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열어본다.

이른 아침부터 톡이 와 있었는데

시력이 안 좋은 나는 안경을 끼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고소식이다.


절친인 친구 언니가 운명하셨단 소식

 년간 암투병으로 친구가 그동안 언니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는데 100세 시대에   이르다면  참이나 이른 나이에 결국 병마를  이겨 내지 못하떠나시게 된 것이다.

.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모두 다 알고 지낸 터라 서로  집안의 숟가락이 몇 개 인지도 아는 막역사이다. 친구의 슬픔을 위로해 주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가족들과 친인척들 많은 분들이 계셨는데 친구도. 돌아가신 언니의 자식들도 의외로 얼굴 표정들이 밝았다.


생각컨데 몇 년간병간호로 삶과 죽음에 대한 마음의 굵은 살이 박혔을 테고, 떠나보내야 함을  준비하고 또 준비한 듯 보였다. 

.



만약,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젊음을 보장받은 상태에서 영원한 삶을 산다면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 시간에 구애받아하지 못했거나 망설였던 일들을 시작하겠지! 그리고 많은 지식을 쌓을 테니 돈과 명예도 얻을 것이고 늘 젊기 때문에 의욕적이고 활동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관계에 의해 존재하는 사회적 동물인데, 주변의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들은 하나씩 늙거나 병들어, 혹은 전쟁으로 죽어가는데, 혼자 남아 살아간다면 과연 존재의 의미에서 본다면 영원히 사는 사람은 과연 살아있는 것일까?


물론 관계는 다시 시작하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를 기억하던 사람들이 죽으면 그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닐까?


 역사 이래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삶을 원했고 지금도 갈망하고 있다. 그런 욕망은 고스란히 소설이나 영화에 투영되어 오고 있다.


영원한 삶을 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소설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흔히 사르트르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진 시몬느 드 보봐르의 1946년 작품이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중세 이탈리아의 작은 성의 영주인 휘스카 백작의 이야기다.


중세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전쟁으로 자신의 영지가 함락되고 성이 포위된 상황에서 '레이몽 휘스카' 는 남루한 거지행색의 노인으로부터 우연히 불사의 약을 얻게 된다.

그리고 영원히 죽지 않는 인간이 되자, 그는 자신의 성을 부유하고 막강하게 발전시키고 자신의 아들을 완벽하게 성장시키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의 인간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다. 

하여 자신의 성을 떠나 역사를 이루겠다는 의욕으로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성립에 기여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지만 이내 회의를 느끼고 떠나거나,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 주변상황에 떠밀려 자신의 후손을 돕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저버리고 스스로를 혼자만의 세상에 가두려 한다.


죽음을 숙명으로 짊어진 인간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영원이 죽지 않는 자신에게 있어 한 세대도 못 넘기는 인간사는 그에게는 무의미 그 자체였던 것! 그리고 끝없는 밀려오는 고독감...




소설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시간 속에 묻혀 버리는 인간의 유한성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지 노인의 명언!

“나는 죽는 게 무섭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누려야 하는 것은 더 무섭다.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고역인가”

.



한해, 한 해가 다르게 마음도 약해지고, 흐르는 세월 앞에 몸도 하나둘 고장이 나기 시작하는 나와, 가족,  그리고 인들을 보며 마치 오늘만 살 것처럼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친구 언니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후

삶과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앞에, 앞으로 언젠간 맞이하게 될 죽음을 위해 그리 슬프지만은 않은

"기쁜 축제"의  죽음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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