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빠토그래퍼 Jun 05. 2024

"똥 백과사전 만들까?"

골목길의 개똥을 피하면서 걷던 아이가 말했다.

나와 아이와 하굣길에 구립 어린이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도서관에 들러 책을 보고 빌려온다. 도서관에 가는 길은 이상하게 개똥이 많다. 그래서 그곳을 지날 때면 바닥을 유심히 봐야 한다. 아직 누가 밟지 않은 원상태의 개똥은 그나마 잘 피할 수 있지만 누가 밟고 간 개똥은 그 사람의 다음 걸음을 예측해서 바닥의 무늬를 유심히 봐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나는 이 길을 지날 때면 바닥에 집중하고 똥 피하기 놀이를 하며 지나간다.      


그날은 이른 봄 더위가 찾아와 그 길에는 꾸리꾸리한 똥 냄새도 나기 시작했다. 바닥에 똥도 신경 써야 하는데 냄새까지 나니 짜증이 확 났다. 

"개를 산책시키면 자기 개가 싼 똥을 제대로 치워야 할 거 아니야~ 이렇게 똥을 안 치우면 어떻게 해!"

"근데 똥 모양이 다양해 다 동물들이 쌌나 봐~”

“에이 설마... 여기 있는 건 다 개똥일걸?”

“개들은 이런 데에 똥을 싸는구나”

“똥 모양이 다양하긴 하네”

”우리 그럼 누구 똥인지 알 수 있게 똥 백과사전 만들까? “

이 말을 듣고 나니 길에 있는 똥들이 달라 보였다.


장래 희망이 수의사인 아이는 특히 동물들의 똥에 관심이 많다. 이 나이대 아이들이 똥, 오줌, 방귀에 관심이 많을 시기이긴 하지만 아직도 1년 전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봤던 육지거북의 똥을 기억하고 그 사진을 다시 찾아보고 재미있어한다.     


한 번은 아이와 같이 고양이 카페에 갔는데 아이가 카페 직원에게 

”고양이 화장실을 보고 싶어요." 

”고양이 화장실을 왜 보고 싶어요?"

"고양이 화장실하고 고양이 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서요"

”지금 고양이 화장실이 있는 방을 열면 냄새가 너무 나서 보여줄 수 없어요"라고 거절했다.      

아이는 아쉬워했다. 


이렇다 보니 가끔은 동물보다 동물 똥에 더 관심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기도 한다. 


이런 아이가 그 길을 봤을 땐 각기 다른 똥 모양들은 탐구할 것이 넘쳐나는 길인 것이다. 어른인 나는 길을 쾌적하고 편하게 걷는 게 좋아 똥이 많은 그 길은 냄새나고 불편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에겐 이 똥들을 밟지만 않으면 아빠랑 다니는 등하굣길 중에 가장 재미있는 길인가 보다. 앞으로도 하굣길에 도서관으로 가게 되면 아이가 좋아하는 똥이 많은 길로 지나갈 것이다. 


나는 그저 아이가 도서관에 가는 목적이 책을 보기 위한 것이길 바란다. 도서관을 갈 때 피할 수 없는 똥이 많은 그 길을 지나가는 과정은 그냥 즐겨줬으면 한다. 그리고 아이가 만들고 싶어 하는 똥 백과사전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길 바란다.

이전 10화 옆문으로 갈까? 정문으로 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