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수능이 끝난 작년부터 친정에 와서 김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친정이 멀기도 하고 아이들 입시와 막내 육아로 나만 빠졌었다. 작년 이만 때였다. 혼자서 김장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김치를 소비하는 양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김장을할까? 말까?'고민하고 있었다.
"힘들게 혼자 하지 말고 시간 되면 집에 와서 가져가."
엄마의 말 한마디에 나는 김치통 4개를 들고 냉큼 친정으로 내려왔다.
남양주에강의를 갔던 남편까지 일을 마치고 토요일 늦게 우리를 따라서 내려왔었다. 오랜만에 온 가족들이 만나서 막걸리에 수육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1년이 지나고 김장하는 날이 다시 다가왔다.
"김장일에 울 집에서 소고기랑 바닷장어 준비했어. 공동경비로 제철굴, 수육거리, 술 준비해서 먹자. 근데 구워 먹을 곳이 있나?"
둘째의 총사령관 같은 문자가 도착했다.
"밖에서 구우면 되지~ 추워서 그렇지. 굴은 석화 말하는가? 석화는 해 먹기 불편하니까 깐굴 사 먹는 게 낫겠다~"
막내가 이러쿵저러쿵문자를 날리자
"석화 쪄서 먹으면 돼."
더 이상 떠들지 말고 시키는 대로 준비하라는 명령어를 입력했다.
"내가 초벌 한 장어 사갈까?"
변호사 사무실을 나와서 코가 빠질 대로 빠진 내가 늦게 톡을 보고 글을 올렸다.
"아니. 남편씨가 샀대."
동생의 생일파티 겸 김장하는 날이 된 것이다.
"불판도 다시 사야겠네. 오늘 주문하면 낼 도착 하겄지?"
"걍 전 굽는 판에 구워 먹으면 맛이 없을라나?"
"주문했어. 숯불에 구워야 제맛이지."
"알써."
동생들이 알아서 척척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김치통 2개와 조합원에게 나눠준 천일염만 들고 친정으로 떠났다.
배추를 절여 놓고 밭에서 뽑은 쪽파와 갓을 다듬던 엄마가 나와 딸을 맞이해 주었다.
"엄마, 오늘 진짜 길이 많이 밀렸어. 아~피곤해."
나는 그대로 엄마 옆에 쓸어져서 잠이 들었다. 한 밤중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새벽 5시부터 엄마는 배추 씻기를 시작했다. 동네 아주머니 두 분도 함께 해주셨다. 80이 넘은 아주머니 들끼리 아직도 품앗이 김장을 하고 있다.
새벽부터 시작한 김장은 오전에 다 끝이 났다. 뜨끈한 갈비탕과 막버무린 김치에 수육을 싸서 아점을 먹었다. 잠깐의 휴식을 보내고 저녁이 되었다. 출근했던 셋째까지 4남매가 모두 모이자 준비한 고기를 굽고 막내의 친구가 직접 잡은 우럭회까지 여동생의 생일파티 상이 준비 되었다.
막걸리와 맥주, 소주 각자의 취향대로 마셨다. 나는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촛불 켜야지. 치즈케이크 어디 갔어?"
조카들의 예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우리들의 진심 가득한 생일축하 노래가 집안 가득 울렸다.
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치즈케이크도 있었고 막걸리도 있던 이 자리에 형부만 없다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