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들과 딸은 무엇이 다른가

딸들은 이러지 않았다 분명

by 별밤



귀여운 고양이 사진은 늘 옳다.


안동의 작은 카페에서

고양이와 함께 글을 쓰는 지금도

아들은 자꾸 신이 나서 큰소리를 낸다.


- 냥이야 이리와

- 냥이 맘마 주까?

- 뉴나 냥이 여깃써!!!


이 글은 무사히 오전에 발행할 수 있을까?


2018년 딸쌍둥이를 낳았다.


2kg의 가냘픈 아이들은

‘젖 먹던 힘까지’가 무색하게

약하고 또 작았다.


그녀들을 동시에 안으면

양 가슴에 포옥 안긴다.

말 그대로 내 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지하듯 안긴다.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고

잘 싸지 못한 아이들은


일상이 뾰족해서 칭얼칭얼 울었다.


괜찮았다.



2021년 아들을 낳았다

딸 둘을 합친 무게보다도 더 나가는 우량아였다.


4.03kg


이 아들은 젖 먹는 힘부터 달랐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다.


생리적인 어려움이 없는 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생글생글 웃었다.


이처럼 성별의 차이 외에도

꽤 많은 것이 서로 달랐다.


딸들을 키우면서

종종 오늘 빡쎈데?하는 날도 있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버거움은 느낀 적이 없었다.


칭얼거림은 견딜 만했고 오히려 안쓰러웠다.

다투는 아이들의 소리도 작아서 귀엽게 바라볼 수 있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해도 괜찮았고

쌀 알레르기로 밥을 먹지 못해도 괜찮았다.


돌아가며 자주 아파도 괜찮았고

큰 수술도 괜찮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모든 게.


그런 내가

지금은 버겁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감각이 예민하다.

딸들 또한 그런 나를 닮았다.

내가 생각한 아이 양육은 그 정도 범위였다.


이번에도 내 세계가 좁았다.


아들은 예민한 감각을 자주 건드린다.


특히 청각을.



큰 소리로 부르고

크게 울고

크게 노래하고

크게 말하는 모든 것이


버겁다.


이처럼 순하고 잘 먹고 엄마를 좋아하는 녀석이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엄마를 괴롭힌다.



목소리의 크기.


그게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 줄 몰랐다.


사람마다 힘든 포인트가 이렇게나 다른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이 힘겨워하는 게

내겐 힘겹지 않았다.


그래서 자만했다.


난 괜찮던데?



잠도 이겨내고

안 먹는 것도 이겨내고

아픈 것도 이겨냈는데

애들 키우며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다 했는데


고작 잘 먹고 잘 자는 순둥이의


큰 소리에 무너졌다.


잠을 자지 못해 버거워 우는 당신도

아이가 잘 먹지 않아 힘겨운 당신도

아이의 과한 장난에 짜증스러운 당신도

아이가 활발하지 않아 걱정하는 당신도


우린, 같았던 것이다.


이제 육아에 힘든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내 일상의 작은 틈을 그들을 위해 써보려 한다.


작은 것이라도 힘들다면 그건

그들이 약한 탓이 아니라는 걸.

정말 힘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양육자들, 파이팅이다!






에필로그,


고양이 셋, 아이 셋


“자리에 앉아야 여기 있을 수 있어!”에

땅바닥에 냅다 앉아버리는 아이들


그래 우리 같이 살아가보자.




keyword
이전 02화다정함은 요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