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은 이러지 않았다 분명
귀여운 고양이 사진은 늘 옳다.
안동의 작은 카페에서
고양이와 함께 글을 쓰는 지금도
아들은 자꾸 신이 나서 큰소리를 낸다.
- 냥이야 이리와
- 냥이 맘마 주까?
- 뉴나 냥이 여깃써!!!
이 글은 무사히 오전에 발행할 수 있을까?
2018년 딸쌍둥이를 낳았다.
2kg의 가냘픈 아이들은
‘젖 먹던 힘까지’가 무색하게
약하고 또 작았다.
그녀들을 동시에 안으면
양 가슴에 포옥 안긴다.
말 그대로 내 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지하듯 안긴다.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고
잘 싸지 못한 아이들은
일상이 뾰족해서 칭얼칭얼 울었다.
괜찮았다.
2021년 아들을 낳았다
딸 둘을 합친 무게보다도 더 나가는 우량아였다.
4.03kg
이 아들은 젖 먹는 힘부터 달랐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다.
생리적인 어려움이 없는 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생글생글 웃었다.
이처럼 성별의 차이 외에도
꽤 많은 것이 서로 달랐다.
딸들을 키우면서
종종 오늘 빡쎈데?하는 날도 있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버거움은 느낀 적이 없었다.
칭얼거림은 견딜 만했고 오히려 안쓰러웠다.
다투는 아이들의 소리도 작아서 귀엽게 바라볼 수 있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해도 괜찮았고
쌀 알레르기로 밥을 먹지 못해도 괜찮았다.
돌아가며 자주 아파도 괜찮았고
큰 수술도 괜찮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모든 게.
그런 내가
지금은 버겁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감각이 예민하다.
딸들 또한 그런 나를 닮았다.
내가 생각한 아이 양육은 그 정도 범위였다.
이번에도 내 세계가 좁았다.
아들은 예민한 감각을 자주 건드린다.
특히 청각을.
큰 소리로 부르고
크게 울고
크게 노래하고
크게 말하는 모든 것이
버겁다.
이처럼 순하고 잘 먹고 엄마를 좋아하는 녀석이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엄마를 괴롭힌다.
목소리의 크기.
그게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 줄 몰랐다.
사람마다 힘든 포인트가 이렇게나 다른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이 힘겨워하는 게
내겐 힘겹지 않았다.
그래서 자만했다.
난 괜찮던데?
잠도 이겨내고
안 먹는 것도 이겨내고
아픈 것도 이겨냈는데
애들 키우며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다 했는데
고작 잘 먹고 잘 자는 순둥이의
큰 소리에 무너졌다.
잠을 자지 못해 버거워 우는 당신도
아이가 잘 먹지 않아 힘겨운 당신도
아이의 과한 장난에 짜증스러운 당신도
아이가 활발하지 않아 걱정하는 당신도
우린, 같았던 것이다.
이제 육아에 힘든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내 일상의 작은 틈을 그들을 위해 써보려 한다.
작은 것이라도 힘들다면 그건
그들이 약한 탓이 아니라는 걸.
정말 힘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양육자들, 파이팅이다!
에필로그,
고양이 셋, 아이 셋
“자리에 앉아야 여기 있을 수 있어!”에
땅바닥에 냅다 앉아버리는 아이들
그래 우리 같이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