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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18. 2022

비 오는 날의 제주

제주 생활 2일 차 - 비 멍한 하루

who. 나는 아침부터 이리저리 맵을 찾아보는 중이다. 여행을 시작하는 초반인데 비가 온다고 그냥 텐트 안에만 있기는 뭔가 아쉽다. 라면과 누룽지가 다인 식재료로 캠핑장에 머물기보다는 비를 바라볼 말한 카페나 뜨끈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에 다녀와야겠다.


what. 맵을 살펴보니 내가 있는 곳에서 제주 도립 미술관이 가까이 있다. 2010년에 와봤던 제주 미술관도 비가 올 때였다. 비 올 때 더 운치가 있는 미술관이기도 하지만, 우연찮게 10여 년이 넘는 공백 속에 다시 찾을 때도 비가 오다니 괜히 묘하다. 마침 극사실주의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 눈 호강했다. 계획하지 않은 뜻밖의 선물이다.


where. 5월 13일 제주는 따뜻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저버리고 꽤나 쌀쌀한 날씨였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니 뜨끈한 음식이 절로 생각난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고사리 육개장이 늘 궁금했었는데 이참에 들러 따뜻하게 배도 채웠다. 이제 비도 보고 바다도 볼 수 있는 곳 어디로 가면 좋을까? 


when. 예정했던 대로라면 올레길 17번 길에 해당하는 이호테우 해변을 열심히 걷고 있었을 것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가 보여도 목적지를 향해 가느라 지나쳐 갔을 그 길에서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며 걸어 봤다. 비 속에도 서핑 강의를 듣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닷속에 검은 점처럼 동동 떠다닌다. 흐린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why. 비는 계속 내리고 타프를 쳐 놓기는 했는데 뒤쪽이 조금 모자랐는지 빗물이 데크 위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데크 위에 물이 고이면 텐트 밑으로 흘러들어 가고 사람 무게에 의해 아무리 방수 처리된 텐트라 해도 젖기 마련이다. 


how. 오늘도 하나 배웠다. 비 오는 날 데크 위로 물이 고이지 않도록 타프를 쳐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물길 내느라 번잡했다. 오전에 우아하게 미술작품을 둘러보던 나는 없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바다 멍을 하던 나도 없었다. 물길을 어느 정도 잡고 자리에 앉으니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참 좋다. 조금 전에 그 부산을 떨던 순간은 또 잊혔다. 아늑한 텐트 안에서 따끈한 차 한잔 마시면서 타프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즐기는 지금이 참 좋다. 


내일은 비가 그칠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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