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아시스 Sep 21. 2022

몸으로 쓰는 일기

마암 댄스

내가 몸을 1번으로 생각할 즈음은 언제였나 하고 돌아보니

첫 임신해서 티끌 하나라도 잘 못 될까 조심조심하던 기간,

차를 폐차시켜야 했던 교통사고 후 두달 동안의 입원 기간,

세 아이까지 출산하고 나자 몸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전신 마사지를 받아야만 했던 기간,

생각해 보니 내가 몸에게 진지한 말을 건넨건 고작 이 기억뿐이다.

그리고는 이주일에 한번씩 목욕탕에 가서 잘 지내는지 몸과 인사를 2시간 동안 나누며 지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수업을 알게 되었다.

몸을 움직이고 났더니 여러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해서 지인들끼리 같이 배우기로 한 이름도 생소한 마암댄스.

건강이 받쳐줘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으니 몸은 소중하다? 몸은 이제껏 수단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늘 주인공을 위해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몸, 자신을 위한 시스템을 살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마암댄스는 몸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를 위한 세상을 창조하는 수업이었다. 관절은 효율적인 동작을 위한 기관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몸짓으로 몸의 말을 풀어내는 기관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난생 처음이었다.

몸으로 내 이름을 표현하기, 바람 부는 날을 상상하며 몸이 느끼는 대로 표현하기, 바닥에 색깔 테이프를 붙이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느낌을 동작으로 표현하기, 레이저처럼 줄을 공중에 이리저리 걸쳐 놓고 몸이 줄에 닿지 않도록 하면서 온 몸을 움직여 공간을 통과해 가기 등, 머리가 명령하는 체제가 아니라 몸이 즉각즉각 반응하는대로 떠오르는대로, 몸이 주도해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가야 하는 수업이었다.

몸짓의 언어가 맞다. 몸으로 언어를 만들어내야 했다. 입에서는 말이 아니라 몸동작에 어울리는 소리가 저절로 흐르도록 힘을 빼야 했다.  어떤 이들은 슬픔을 몸의 언어로 표현하며 눈물을 쏟기도 했고 두려움을 몸의 언어로 풀어내며 흐느끼기도 했다.  

몸은 거대한 입이었다. 몸의 감각 촉수들은 부드럽게 탐색하며 표현의 발로를 찾고 있었다. 내 몸은 아직 옹알이 수준도 못 된다. 내가 얼마나 몸을 움직이지 않았는지 몸동작 하나를 만드는데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내 몸은 말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 난 어버버, 더듬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글로 일기를 쓰며 마음과 생각을 다듬고 정리해가듯 몸도 몸으로 쓰는 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몸으로 쓰는 일기는 어떻게 써야 할까? 스트레칭은 기본기, 탄탄한 기본기 위에 펼쳐 보이면 될까.

무엇을? 어떻게? 궁금해진다. 몸짓의 세상이.

몸으로는 어디까지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을까. 몸짓의 언어가 유창해질수록 삶이 더욱 풍성해질까?

몸으로 일기를 쓰고 싶은 아름다운 괄호의 순간이 생겨났다.



 

 

이전 02화 모닝페이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