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밤

by 이랑

재하는 장례식 이후 단 한 번도 나와 납골당에 간 적이 없었다. 가끔 내 부모님과 다녀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혹은, 안다고 믿었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말하지 못한 날들이,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우리 사이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다시 또 그날, 재하의 가족과 나의 언니의 기일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의 여덟번째 기일인 그날, 처음으로 그가 내게 물었다.


"저기, 우리야.

오늘 같이 갈래?"





2월의 공기는 유난히 맑았다. 투명한 햇빛이 있었지만, 따뜻하진 않았다. 나무 가지마다 묵은 눈이 조금씩 부서졌다. 길가의 얼음은 반쯤 녹아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고, 그 위로 바람이 조용히 스쳐갔다. 우리는 그 길을 나란히 걸었다. 8년 전, 두 대의 차가 나란히 길을 나섰던 것처럼.


납골당의 문을 열자, 안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빛이 스미고 있었지만, 공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벽에 붙은 사진들과 꽃들이 그대로 멈춰 있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도 없었다. 그도, 나도. 그런데도 나는 그의 눈에서 오래 전의 장면이 여전히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건 슬픔이라기보다, 무언가를 버티고 있는 눈빛이었다. 말이 닿지 않는 침묵. 아주 오래 눌려 있던 절망 같은 것. 나는 그 눈빛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납골당을 나설 때, 겨울바람이 우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의 팔에 바짝 붙어 팔짱을 꼈다. 슬픔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서툰 행동 하나뿐이었다.


그가 말했다.


"이제야, 드디어 했다."

"뭘?"

"같이 이곳에 오는 것."


말을 마치고 그는, 내가 끼고 있던 팔의 반대편 팔을 들어 천천히,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의 넓은 손바닥이 아주 잠깐,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언젠가 함께 와야지 했었는데, 용기가 없었어. 네가 우는 걸 보는 것도 싫었고, 내가 네 앞에서 울까 봐-그게 더 무섭기도했고."

"울고 싶으면 울면 되잖아."


그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눈동자는 달랐다. 그 안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왜, 그때 너희 집에 살지 않았는지 알아?"

"왜?"

"너희 부모님이 나한테 미안해하셔서, 그랬어."


그는 고개를 돌렸다. 짧게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하나도 잘못한 게 없는 분들인데. 오히려 나한테는, 너무 고마운 사람들인데. 그런 분들이 날 보며 계속 미안해하시니까... 그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


그의 말이 끝나자 정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옆을 걸었다. "그리고..." 그가 아주 조용히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네 앞에서 그날 때문에 울어버리면- 너마저도 나를 볼 때마다 또 미안해할까 봐. 그럼 나는, 그런 너도 볼 수 없을까 봐. 그래서 기다렸어. 너랑 이곳에 와도 괜찮아질 때까지."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마치 깎여 나가는 돌처럼, 단단하면서도 어디선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 끝에 매달려 있는 묵직한 시간들을 느낄 수 있었다. 눈물이 고이는 것을 몇 번이고 삼켰다. 그가 말했다. 자신이 우는 걸 보는 게 싫다고. 그 말 하나에, 그동안 그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나를 생각해 왔는지 알 것 같아 목이 점점 조여 왔다. 숨이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았다. 나는 어금니를 다물고,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울컥하는 감정을 꾹 눌러가며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나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끝까지 울지 않으려 애썼다. 그도 아마, 내가 애쓰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차에 올라타자 그는 다시 평소처럼 웃었다.

"한 잔 할까?" 내가 물었다.

"너랑 술 마시기 무서운데." 그가 싱겁게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은 반쯤 감겼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웃음 속에 묘하게 다른 기색이 스며 있었다. 진심인지, 버릇처럼 나온 건지 헷갈릴 만큼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깊이 전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낮은 건물들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김 서린 창문에 손등이 닿자, 서늘한 습기가 피부에 옮겨왔다. 그제야 숨이 조금 놓였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게 있는 날이었다. 멀리 돌아서 겨우 도착한 어떤 마음이, 지금 우리 사이에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그는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차가 멈췄을 때 나는 아직 시동이 꺼지지 않은 정적 속에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는 여전히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나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딸깍, 아주 작은 소리가 안쪽에서 조용히 울렸다.


"들어가서 쉬어." 그가 말했다.


입꼬리는 여전히, 버릇처럼 올라가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아무 데도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그런 재하를 안아주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몰랐지만 지금 이 순간에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게 그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그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재하야… 같이 있을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고개를 저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말은 이미 입술 끝에 머물고 있었다. 입 안으로 다시 삼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말.


"괜찮아."

예상했던 대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말은 예상한 만큼의 거리감을 남겼다. 나는 그 거리 앞에서 쉽게 물러서지 못하고 잠시, 그를 바라봤다. 운전석에 앉은 그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창문 틈 사이로 밤바람이 조용히 스며들었고, 차 안의 공기는 작게 떨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천천히,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내가 같이 있고 싶어."


그는 말이 없었다. 대답이 없는 건 거절이라기보다는- 그냥, 말이 되지 않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침묵은 되려 더 깊은 울림처럼 천천히 가슴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 틈을 꿰매듯, 작게, 그러나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좋아해."


그것이, 나의 세 번째 고백이었다. 그날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후로 한참을-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불 꺼진 가로등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차 안에는 시동이 꺼지지 않은 채 작은 진동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지도, 꺼내고 싶지도 않은 공기였다.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그날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대화 같았다.


결국 그에게서 어떤 말을 듣기를 포기한 내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안쪽에서 짧게 울렸다. 그는 차에서 내가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는 걸 확인한 뒤에야 서서히 차를 돌려 돌아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밤. 그것이, 그날의 결말이었다.






“그리고 또 나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했더라?”


나는 식탁 위의 캔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이 나쁜 놈, 앞으로 1년만 좋아하고 그만둘 거라고.”


석호 선배가 웃었다. 그 웃음이 재하의 웃음과 닮아 있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려 했다.


“위로해 주려는 내 마음도 거절한 나쁜 놈이었어요. 자기 슬픔만 중요한, 이기적인 놈.”


말하면서도 감정이 다시 되살아났다.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고, 나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선배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관계가, 재미있죠?”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솔직해서 고마워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흘겨봤다. 그러곤 소파에서 일어나 식탁 의자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 다 식어버린 맥주 캔을 들어 입에 물었다. 알코올보다 금속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그도 따라 일어나, 맞은편 의자에 잠시 섰다.


“차갑게 해서 마시지.”


그가 남은 맥주와 소주병을 챙겨 냉동실에 넣고 돌아왔다. 나는 새우깡 봉지를 뜯었다. 짧은 순간, 그게 재하의 머리채였으면 좋겠다는 어이없는 상상이 스쳤다. 그런 생각조차 지금은 괜찮게 느껴졌다. 새우깡 하나를 집어 들고, 입에 넣기도 전에 피식, 입꼬리가 먼저 반응했다.


“왜 웃어?”

“그냥요. 아니다, 이재하가 너무 재수 없어서요.”


그는 목젖이 드러나도록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어쩐지 웃음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그러다 그가 말했다.

“참, 근데 재하도 너 좋아한다고 한 적 있었다고 했잖아.”


그 말에, 웃음이 뚝 그쳤다. 입안에서 바삭거리던 새우깡도 씹히다 만 채 멈췄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무언가가 안쪽에서 벌컥 튀어나오는 기분. 재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맑고 얄미운, 뻔뻔하고도 미련한 그 표정. 맞다. 그 나쁜 놈도, 분명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던 것 같다. 너무 오래된 말이라, 기억의 구석 어디쯤에 돌돌 말아 둔 문장 하나였다. 꺼내지 않으면 없는 말이고, 꺼내면 좀 기분 나쁜. 말하자면 그런 종류의 진심.


그리고 그 여름.

열여섯의 재하는 마음을 꺼낸 것도 아니고, 감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애매한 문장 하나를 남긴 채 사라졌다.


그 여름은, 그래서 내게 시작도 끝도 없이 맴도는 계절이었다. 그 애의 마음처럼.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