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서-

by 이랑

아빠의 죽음을 처음 들은 날, 나는 그게 실제 일이라기보다는 어떤 사실 하나가 나에게 전달된 느낌이었다. 슬픔도, 충격도 당장에는 오지 않았다. 그저 '아빠가 돌아가셨대'라는 한 줄의 말이 그날의 모든 공기를 밀어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 정확히 말하면, 그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채로 그 말을 받았던 것 같다.


그 후 한동안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러가 아니라, 그냥 그랬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은 매일 떠올랐지만, '죽음'이라는 단어는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슬픔을 통과할 준비도, 그 부재를 말로 꺼낼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잃은 사람은 맞는데,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아닌 것처럼 지냈다.


그런데 요즘, 조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빠의 죽음이라는 게 '그날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면서부터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사라진 자리를 매일 새로 마주하게 되는 일이었다. 밥을 먹을 때, TV를 볼 때, 엄마와 얘기하다 말고. 삶의 틈새마다 아빠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자꾸 생겼다. 죽음이란 건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없는 상태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죽음을 어떤 '마지막 순간' 같은 걸로 생각했다. 이야기의 끝, 숨이 멎는 장면, 그렇게 모든 게 정리되는 일. 하지만 지금 보니, 죽음은 오히려 그 사람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만드는 처음의 순간이기도 하다. 아빠는 사라졌지만, 나는 아빠와 계속 관계를 맺고 있다. 말을 걸고, 생각하고, 가끔은 마음속에서 다투기도 한다.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게 너무 이상하고, 가끔은 슬프고, 또 어떤 날은 다행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 사람을 잊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것을 견디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루에 몇 번씩 새로 배우는 일이다.


죽음은 생각보다 갑작스럽지도, 완전하지도 않았다. 그건 아주 느리게, 아주 오래 걸려서 사람을 비워나가는 일 같았다. 남은 사람의 시간 속에서 계속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아빠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살아있던 날의 기억들을 붙잡고, 그 기억 속 문장들을 되뇌며, 죽음을 내 삶의 일부로 천천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죽음은,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 그건 끝이라기보다는,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쪽으로 계속 말을 건네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요즘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말. "그곳에선 평안하길." 그 말이 이제는 나에게도 꼭 필요한 말처럼 느껴진다. 예전엔 그게 너무 멀게만 들렸다. '그곳'이라는 게 도대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그런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아프지 않고, 하고 싶었던 거 다 해보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그런 곳.


그곳이 정말로 있다면, 아빠가 거기서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편안하게, 하고 싶던 거 실컷 하면서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 거기선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나중에 만나면 내가 꼭 물어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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