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괜찮다고 믿었던 이유

by 이랑

생각해보니, 가족들은 늘 내게 무언가를 숨겼다.


아빠가 암에 걸렸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병원에 간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고, 수술 때문에 연락이 닿지 않던 날에는 아빠가 치질 수술을 했다고 둘러댔다. 나는 그 말을 믿었고,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정작 내가 진실을 들은 건 모든 게 다 지나간 후였다. 수술은 이미 끝났고, 항암 치료 1차도 마친 뒤였다. 의사가 좋은 경과라고 말해주자, 그제야 엄마는 조심스럽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날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시간. 한국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엄마는 담담하게 아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아빠가 괜찮다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하지만 스무 살 즈음의 나는 그 말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아직 여렸다. 결국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따졌다. 왜 나만 몰랐냐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전화를 끊고 나서도 책상 앞에 앉은 채 한참을 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걱정된 남자친구가(스무살 당시 만나고있던) 집 앞으로 찾아왔다. 문 앞에 서 있던 그는 울고 있는 나를 마주했고, 나는 그 앞에서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오히려 누군가 앞에 있으니 눈물이 더 쏟아졌다. 한참을 식탁에 엎드려 울다가, 이제 됐다고 생각해 고개를 들었다.


"이제 끝."

그 순간, 옆에 있던 그는 나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너 정말 웃긴다. 넌 참 신기한 애야.”


돌이켜보면 그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아주 정확하게 내 모습을 말해주는 문장이기도 했다. 나는 그랬다. 한 번 울고 나면 다 털어버리는 사람. 힘든 걸 오래 붙잡아두지 않는, 아빠를 닮은 성격. 그 덕분인지, 그렇게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아빠가 괜찮다고 했으니,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또, 가족이 무얼 숨기든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그게 나름의 이해이자 배려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묻지 않았던 건 정말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회피였을까. 멀리 떨어져 있던 내가 그들의 아픔을 함께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 어떤 방식으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 그것이 더 두려웠던 건 아닐까. 그래서 애써 묻지 않고, 애써 모른 척하며 그저 나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를 괜찮다고 설득하며 그 모든 감정을 외면해버린, 그냥 회피형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keyword
이전 10화죽음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