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자리, 나의 자리

by 이랑

아빠가 앉던 자리에 내가 앉게 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그 자리는 어린 나에게 늘 커 보였다. 식탁에서, 운전석에서, 동네 어귀에서- 아빠는 언제나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 있었지만, 마음은 늘 한 걸음쯤 떨어져 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릴 땐 아빠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다.

무거운 짐도, 어려운 일도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세월이 지나 그 자리를 잃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아빠도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었으며,

그 무게 속에서 조용히 버티던 사람이었다는 걸.


아빠가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처음엔 그 빈자리가 너무 커서 그 자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몰랐다. 가끔은 억지로 잊으려 했고, 가끔은 억지로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지만 괜찮아진다는 게 ‘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아파하는 방법이 조금 달라질 뿐이었다.


부재는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존재였다.

아빠는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며, 내가 조용히 숨을 고를 때, 주방 불빛 아래 컵을 닦을 때, 문득 손에 힘이 빠지는 저녁마다- 그의 말투와 습관이 내 안에서 되살아난다.


아빠는 왜 말이 없냐며, 싫어했던 침묵의 길이가 이제는 위로가 된다. 누군가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 화가 나도 먼저 웃어버리는 버릇, 힘든 일은 억지로 잊어버리는 습관. 그 모든 것이 아빠의 방식이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게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그저 그가 묵묵히 그 자리를 버텨왔던 방법이었다는 걸 조금은 안다.


거창한 말보다,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법.

말없이도 누군가를 믿어주는 법.

그런 것들을 아빠는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말보다 행동으로 배운 그 온도를,

지금 내 삶 곳곳에서 조금씩 꺼내 쓰고 있다.


가끔은 그런 질문도 던져보았다. 아빠가 그때 내 나이였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때의 아빠도 두려웠을까. 가족을 지키면서도, 어쩌면 외로웠을까.


그 생각을 하면 또 괜히 목이 멘다.

이제는 그 나이를 살아보니, 그가 얼마나 조용히 버텼는지가 느껴져서 일까. 어쩌면 그건 존경보다 더 깊은 이해였다.


나는 여전히 아빠가 남겨놓은 방식대로 산다.


가끔은 조용히 물러서고,

가끔은 이유 없이 참으며,

가끔은 아무 말 없이 웃는다.


그럴 때마다 문득 깨닫는다.

‘아, 지금의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구나.’

아빠의 자리와 나의 자리가 겹쳐지는 순간. 그건 슬픔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이제는 그 자리가 두렵지 않다. 아빠의 빈자리를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아도, 그 존재는 여전히 나를 움직인다. 그의 말투로 말하고, 그의 습관으로 하루를 견디며, 그의 방식으로 사람을 사랑한다. 그건 부채감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이다.


아빠의 자리는 결국 나의 자리가 되었다. 그 자리는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그저 누군가를 위해 오늘도 웃음을 짓고, 누군가를 떠올리며 하루를 살아내는 자리. 삶이란 건, 아마 그런 자리의 연속일 것이다. 누군가 떠난 뒤에도, 또 누군가가 그 자리를 이어 앉으며, 세상은 그렇게 이어져 가겠지.


언젠가 누군가가 떠난 내 자리를 떠올릴 때,

그들도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 자리는, 참 따뜻한 사람이 앉아 있었지.”

내가 아빠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누군가도 나를 기억하기를 그렇게 한다면,

나는 아마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예전엔 그리움이 나를 멈춰 세웠지만,

이제는 그리움이 나를 다시 걷게 만든다.

아빠가 살아온 방식이 내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건 단지 기억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세였다.

그리고 나는, 그 자세로 오늘을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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