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희로애락
올해도 어김없이 연차가 남았지만,
정말 정신없었던 21년의 한 해가 마무리 되었고, 난 잔여 연차를 써서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21년 업무를 마무리했다. 나는 매번 연말마다 잔여 연차를 소진하기 위해 허겁지겁 휴가를 써왔고, 새해마다 연차를 꼭 알차게 사용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올해도 연차를 매번 미루어 왔고, 지금도 계약준비를 위해 연차를 미루고 싶지만, 더 이상 연차사용을 미룰 수 있는 '21년의 날짜가 없어서 강제 쉼을 부여받았다.
(소속 회사는 연차소진이 원칙이다.)
현재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출근하고싶다.
신경쓰이는 일을 처리하고 싶다.
마음이 상당히 불안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여름휴가가 따로 있지 않고, 법정연차 일수 만큼만 부여받는다. 그리고 연차사용 촉진제도를 도입하고 있어서, 연차 사용계획을 새해에 일괄등록하게 되어 있다. 또한 당일에 연차사용을 해도 될 정도로, 연차 사용에 눈치를 안주는 조직에 속해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내 연차 사용을 늦추고 있을까?
나는 연차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 하다. 연차는 1년 365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에게 쉼을 주는 몇 개 안되는 특별한 것이다. 이렇다보니 연차는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상처럼 하루를 보내거나, 단순히 집에서 쉬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면 안될 것 같다.
집에서만 시간을 보낼거면, 그냥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것이 또 다른 이유다. 영업직무 특성상, 하루에도 고객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게 된다. 그 중에는 당장 해결이 필요한 이슈사항도 있으며대무자가 처리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휴가 중,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마음을 졸이게 되며, 신기하게도 연차를 쓴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고객전화가 온다. 머피의 법칙... 이렇다보니 평일 낮에 집에 누워있는게 마음이 불편해졌고, 정말 피곤해서 쉬고 싶은 날이더라도 사무실에 앉아 있는게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지난 나를 돌이켜보면, 일상처럼 목적없이 보냈던 연차는 즐거웠으며, 휴가 중 고객의 긴급한 전화는 생각처럼 많지 않았다. 결국 일과 삶의 감정분리를 하지 못한 내 마음이 근본적인 이유인 것 같다.
과거 스타트업에 근무할 때, 일에 꿈과 열정을 가지고 삶과 일에 경계선이 없는 시절을 보냈었다. 퇴근 후에도 사무실에 남아 무언가를 계속 했었고, 박봉에도 전국 출장을 다니며 밤낮없이 일했다. 당연히 휴가를 쓴 적은 없다. 이런 것이 책임감이고 멋지게 일하는 모습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난 '꿈과 열정'을 그만 두었다.
일과 삶의 분리를 못한 난 지쳐버렸고, 일에 대한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퇴사 후, 내 일에 책임감과 열정을 가지는 것과 쉬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일하는 중간에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는 내 모습, 일과 삶의 감정을 분리하지 못해 결국 지쳐버렸던 과거의 나를 되풀이 하고 있다.
연차는 내가 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능률을 올려주며, 좀 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주는굉장히 효과적인 장치이자 수단이다.
그것을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이 아닌, 내 삶을 기준으로 삼아야할 것 같다.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전에 내 삶의 분명한 계획을 갖고, 삶의 목표를 달성해가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연차를 사용해나가야겠다. 일과 삶의 감정분리를 해내고, 내 삶을 기준으로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워나간다면 연차에 좀 더 충분한 쉼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연차사용을 넘어서, 나의 22년을 더욱 충실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 남은 연차를 쓰고 집에 머물며 생각에 잠긴 21년의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