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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부모가 된다는 의미를 되묻다.

#02.부모로 성장하는 하와이 태교여행

by 해삐닝

하와이 태교여행의 마지막 밤, 우리는 힐튼 호텔 앞 해변에 나란히 앉아 불꽃놀이를 기다렸다.

바닷바람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무는 해를 향해 소란스러운 시선을 모았다.

태평양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은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고, 야자수 위로는 한 대의 비행기가 느리게 날아올랐다.


처음엔 단순한 태교여행이라 여겼지만, 이것은 어느새 우리에게 부모가 된다는 의미를 천천히 되묻는 여정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을수록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대화는 점점 커져갔고, 그 속에서 남편은 말없이 앉아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래 붙잡고 싶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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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선셋 보면서 무슨 생각해?”


“난 어떤 아빠가 될까?”



남편의 대답에 나는 잠시 말이 막혔다.

아이를 생각하며 처음 떠난 태교 여행, 와이키키의 석양 앞에서 오빠는 중요한 고민에 휩쌓인 듯 했다.


임신 소식을 알린 순간부터 우리는 늘 뭔가를 찾아 헤맸다.
육아용품을 비교하고, 출산 준비물을 하나하나 채워가며, SNS 속 완벽한 부모들의 모습을 흉내 내려 애썼다.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가 될 준비를 하는 서툰 두 명의 애어른만 있었다.


‘출산준비’라는 단어 속에 갇힌 채, 정작 부모로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끊임없이 접하는 정보의 바다를 열심히 헤엄치며 무엇을 구매할지 하나씩 결정했던 과정이 출산준비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와이에서 본 풍경은 달랐다.
사람들은 짐 하나 없이 바닷가에 앉아 파도를 즐겼고, 어른도 아이도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이 붉게 물드는 순간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조급함 없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은 말 없는 가르침처럼 다가왔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완벽함보다는 여유를 갖고, 흔들리는 아이에게 중심이 되어주는 아빠가 될래"


햇볕에 피부가 탈까,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불편할까, 괜한 걱정에 이것저것 짐을 챙겨 나서는 아빠가 아닌, 가벼운 차림으로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는 법을 알려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말했다.


"완벽하려 애쓰기보다, 조금 더 가볍게, 단순하게,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그 말에 문득 남편의 일상생활 모습이 떠올랐다.
가족과 회사, 나를 위해 늘 최선을 다했고, 쉼조차 계획해야만 얻을 수 있던 사람.


긴장으로 목이 딱딱해질 만큼 열심히 사는 것이 당연했던 남편이었다. 쉼 마저도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 몸을 강하게 흔들어 물을 털어내는 강아지처럼 온 힘을 다해 억지로 여행을 떠나야만 겨우 진정한 쉼이 허락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파도와 모래,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진정으로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을 느낀 것 같았다.


좋은 부모가 되는 준비는 비싼 유모차나 빽빽한 육아서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숨 쉬며 지금에 머무는 여유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북쪽 해변에서 해가 저문 뒤에도 지평선 넘어 하늘은 한참 동안 붉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여운처럼, 남편의 다짐이 오래도록 나에게도 남아 함께 부모로의 길을 나아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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