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뽈삐래 Jul 22. 2022

호바트의 백수들

 상상해보아라. 

작은 수영장과 바비큐 시설이 있는 뒷마당에 영화를 볼 수 있는 큰 스크린이 설치된 다락방에 요리사를 꿈꾸게 하는 주방이 있는 집에 애교 많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을. 


 우리의 일과는 대체로 이러하였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울리던 알람은 이제 필요 없다. 우리가 정한 아침에 일어나서 뚝딱뚝딱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히터 아래에서 담요를 덮고 티타임을 갖는다. 끊이지 않는 수다가 계속된다. 


 오후에는 왈라비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깡충깡충 하고 뛰어다니는 뒷동산에 가서 산책 겸 운동을 하러 간다. 왈라비 동산이 지루해지면 오른쪽에는 바다 왼쪽에는 유채꽃이 펼쳐진 해안 산책 길로 향한다. 

호주 호바트_왈라비 동산
호주 호바트_유채꽃이 만발한 산책로

 저녁 식사는 항상 성대한 최후의 만찬처럼.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이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한식으로 차려진 집밥을 먹는다. 뜨듯한 전기장판 위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다가 심심해지면 휴대폰을 가지고 즐거움에는 끝이 없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꿈나라’를 여행한다.


 바쁜 집주인은 자주 집을 비우거나 밤늦게 귀가했다. 그 넓은 공간은 우리들이 만드는 음식 냄새로, 우리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공용 공간은 우리가 더 청소를 자주 했고 고양이 밥을 챙겨 주는 일도 하곤 했다. 덕분에 내 집이 아닌 곳이 내 집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더 남의 집이지만 포근하고 안락했다. 

호주 호바트_어쩌다보니 고양이 집사

 일주일 중에 하루는 장보기 원정대가 되어야 했다. 시티와 조금 떨어진 이 집은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해 있고 차가 없는 우리는 걸어서 마트에 갔다. 가는 길은 남의 집 정원도 구경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산책길이지만 오는 길은 주변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으며 대화가 사라지는 체력 단련의 수행 길이었다. 특히 10kg의 쌀을 사는 날은 죽음의 레이스였다. 장을 볼 때는 필히 배낭을 메야하고 물통을 챙겨 가야 했다. 이 길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걸을 수는 없으니 일주일 치 음식을 다 사야 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언덕을 오르다 숨소리의 데시벨이 높아지면 바닥에 앉아서 오늘 산 주스를 나눠 마실 수 있고 언덕 위에 올라서서 장관이고 절경인 풍경을 같이 감상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각자가 엄홍길 대장의 빙의된 듯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괜찮은지 컨디션을 체크하고 마침내 등정에 성공하고 뿌듯해했다. 누가 보면 에베레스트 올라가는 줄. 


 

이뽈)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호바트에서 살았던 3개월’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때 나는 행복한 백수였으니깐. 


 누군가는 호주까지 가서 왜 저러냐 하겠지만 나에겐 호주여서 가능했던 라이프였다. 열심히 살다가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머니 이즈 파워를 외치던 멜버른의 외국인 노동자에서 영혼의 부자를 꿈꾸는 호바트의 외국인 백수가 되었다. 마음 편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걱정이나 근심 하나 없는 무직자의 삶은 실로 쏘 스윗했다.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나는 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마인드로 스케줄 없는 삶을 즐겼다. 이런 생활도 길어봐야 3개월일 것이고 아무리 행복한 백수라 해도 세계 여행자가 더 멋있기에 다시 홀리데이보다 워킹에 비중을 두는 워홀러가 될 것이므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귀하게 여겼다. 

호주 호바트_우리 동네

 ‘일 하지 않는 자’의 느긋함에 취해 친구의 불안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길 바랬는데 나만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서 미안했다. 같이 행복하자고 왔는데 내가 너의 행복까지 다 가져간 것 같았다.




삐래)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연차 하루도 내 맘대로 쓰지 못할 때가 많았고, 주말에도 거래처 전화가 오기 일 수 여서 마음 한 칸의 여유도 가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놈의 월요일! 월요일 출근 스트레스는 일요일 눈뜰 때부터 시작했었다. 여유란 단어를 꿈꾸듯 읊조리곤 했다. 


 호바트 한 달 반 동안 아무 걱정 없이 오로지 ‘쉼’의 목적을 두고 사는 시간이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사랑하는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새벽까지 얘기하고 늦잠도 늘어지게 자고 시간 남으면 산책도 하고 영화도 봤다. 정말 살면서 그렇게 여유 있게 생활해 본 적이 있는가? 퍼스에서 취업 실패로 전전긍긍하며 무겁고 외로워 몸부림치던 마음이 다 잘될 거라는 희망으로 바뀌어 긍정의 이삐래로 거듭나고 있었다.


 2개월에 접어들 때쯤 한국에서 가져온 생활비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살고 있는 동네에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의 착각이었던 것은 퍼스에서도 못했던 취업이 여기라고 될 거라는 보장은 없었던 것이다. 역시나 여전히 일을 구하기 쉽지 않았고 호주에 남은 시간은 고작 8개월이 남았다. 이런 초조함은 나 자신을 더 의심하게 만들었다. 


 ‘해외에서 일을 해 본 경험도 없고 영어도 못 하는 내가 1개월 안에 구직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이기복씨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뽈 앞에서는 티를 안 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가도 마음 한구석이 늘 불안했다. 정말 내가 계획했던 대로 돈을 벌어서 장기 여행을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이뽈은 세컨비자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 1년 연장을 의미)에 대한 생각을 넌지시 물어보았다. 타즈매니아를 가기로 결정할 때,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세컨비자였다. 단지 막연한 생각으로 호주에서 좀 더 일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계획했던 여행 자금을 모을 수 있을 텐데라고. 이뽈은 늘 나의 머리를 번쩍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이뽈 말대로 그래, 1년 더 벌어서 여행을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남은 여유 자금은 단 1개월, 1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해 볼 수 있는 구직 활동을 다해보자 하고 다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세컨 비자를 취득할 수 있는 공장에 지원을 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