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뽈)
평생의 소원 ‘세계여행’을 이뤄낸 소감은 허무하기도 하고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누가 들으면 한 분야에서 최고점을 찍은 프로인 줄. 막상 이루고 나니 이게 인생의 목표였나 싶었다. 나는 이제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구직 시장에 뛰어들어 보지 않은 사람들의 멋모르는 소리로 들렸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유행어의 가사는 와닿지 않았다. 누군가 ‘네 나이는 취업 전선에 입장조차 못하는 나이란다’라고 대답해 주는 것 같았다. 나이 많은 후배와 나이 어린 선배의 불편한 썰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게 현실이니깐.
내 인생 가장 오랫동안 정성껏 공들인 ‘세계 여행’은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경력도 스펙도 아니었다. 2019년 12월 19일에 종료된 세계여행이라는 숙원 사업을 성공리에 끝마쳤으니 앞으로 나는 ‘제2의 인생’을 공짜로 얻은 것만 같았다. 남들에게는 딱 한 번뿐인 퀘스트가 나에게는 두 번 주어진 것 같았거든.
그런데 두 번째 퀘스트의 서막이 이토록 길고 그 스타트가 긴 무기력의 시간을 버티는 것일 줄이야. 삶의 방향을 잃었다. 새로운 퀘스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설계부터 막막했다. 첫 번째 퀘스트도 10년이 넘게 걸린 대장정이었다. 지난 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몸을 웅크리고 있는 동면의 시간이었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하는데 나의 새벽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쉬지 않고 바스런히 움직이는 자에게만 해가 뜰 것 같은데 나는 가만히만 있었으니 빛이 찾아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뒤처졌고 도태되었다.
세상과 단절되는 시기가 누구나 인생에 있다고 하지만 이건 결이 달랐다. 내 세상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큰 도약 직전의 위축이 아니었다. 맨홀에 빠졌는데 벗어나려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 상태였다. 스스로가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자연스레 생기가 넘쳤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고작 4-5년 전의 이야기인데 먼 옛날 같았다. ‘그땐 그랬지’라고 입가에 미소 짓게 만드는 우리들의 행복했던 나날들. 그 순간들이 순간으로 사라지지 않고 영원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그것이 내가 삐래에게 책을 써보자고 권유한 이유였다. 어나더 무기력이 찾아오면 우리의 글을 읽어야지. 나에게도 반짝이는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지금의 나도 나중에 보면 반짝이고 있겠지. 그렇게 내 인생은 은하수가 되겠지.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무기력함이 우리의 이야기를 써보는 것으로 극복될 수 있었다. 누구 하나 읽어 보지 않더라고 해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였으니깐. 지난 2년이 어떻게 기억될까? 이마저도 미화될 수 있을까? 망각의 동물이라는 인간의 망각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어떤 모습의 나라도 사랑한다고 할 순 없어도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살아내기 위해 애썼다고 토닥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삐래)
인생의 버킷리스트였던 유럽 여행까지 모두 마무리하면서 '드디어 해냈다'는 엄청난 성취감과 '이제 정말 다 끝났네' 하는 시원섭섭함 혹은 허무함이 뒤따라왔다. 이제 앞으로 뭘 해야 하지하는 두려움도 함께. 정확하게 어떤 감정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확 몰려왔다. 그토록 원했던 것인데, 이루고 나면 뿌듯함만 가득 찰 줄 알았는데 말이다. 정말 예상치 못했다.
이 감정을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형편상 경제 활동을 하루라도 빨리 해야 했다. 여행자 모드 OFF, 취준생 모드 ON.
취업은 쉽지 않았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과 장기 여행은 인생에서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회사생활에는 쓸모 있지 않다는 면접관들의 일관적인 태도에 좌절했다. 경단녀 (경력이 단절된 여자) 꼬리표가 붙었다. 호주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는데, 세계여행을 통해 누구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는데 말이다. 처음엔 이런 취급을 받는 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 나도 너네가 날 불러줘도 안 가려고 했어’라며 우쭐댔다. 그들의 말로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결정들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낙방에 초조하고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할 준비가 되었다고 강력하게 어필해도 내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흘러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간 곳마다 일복은 늘 있다고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쏟아지는 업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의 연속. 나를 돌아볼 틈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정신없는 날들 속에서 사람들한테 치이고 지쳐나가떨어져 지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것은 분명히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들을 끄집어내며 되새김을 하면 지긋지긋했던 하루가 즐거운 하루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치고 다친 마음을 스스로 토닥이며 위로하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견고하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극복하려는 의지도 노력도 없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곤 했는데 말이다. 물론 지금도 혼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울고 지지고 볶긴 하지만 빈도나 강도가 확실히 낮아졌다는 거.
한국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기로 접어들 때쯤 여행을 마치고 막 돌아왔을 때의 감정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모든 게 막막하고 두려웠던 감정 말이다. 아마 난, 달디 단 꿈같은 현실에서 빠져나와 직시해야 하는 어두운 현실이 겁이 났던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 유리 멘털 소유자인데, 잘 버틸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를 의심했던 것 같다. 매 순간 흔들리고 다치고 상처받고 쓰러지겠지만, 결국에는 다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날 수 있는 단단한 한 인간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이제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뽈이 책을 쓰자고 제안했을 때, 망설였다. 글을 쓰는 것은 나와는 먼 이야기이지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추진력 대장 이뽈이 함께한다면 상상해본 적 없는 일도 도전해 볼 수 있지.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그리고 비로소 에필로그를 끝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망설임 대장 삐래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이뽈에게 감사.
반짝반짝 빛나는 이삐래 인생의 한 컷 제대로 완성하였다.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