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큰일러의 필수품
홍진경이 예전에 욱해서 그냥 파리 유학 간다고 말을 해버렸는데
진짜 그 말 때문에 짐 싸서 파리에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다르게 버무려버린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넌 큰일 할 사람이잖아.”라며 나를 찼는데
그 말이 나를 평생 따라다닐 것을 직감했다.
내 눈엔 정말로 큰일을 하는 사람이 나에게 그런 어이없는 말을 한다는 게
날 비웃는 것 같았다.
그 말이 내 뇌에 새겨져 그날 이후로 나는 큰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왠지 죽기 전에 “봤어? 내가 한 큰일,
이게 다 당신이 그때 한 그 말 때문이야”라고 증명해야
그의 말이 비웃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큰일이란 무엇인가?
라고 소크라테스가 물을 것이다.
큰일의 정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걸 골라야 한다면
더 두려운 일을 고르면 된다.
결국 큰일 이즈 개고생!
개고생은 사서 해야 제맛이라던가?
그날 이후로 나는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늘 더 두려운 쪽으로 왔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
커리어 좀 진득하게 쌓다가 이제 꿀맛 좀
보려 했는데 다시 개고생의 길로 들어섰다.
정작 작은 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큰일을 벌이고 싶은 보통 나부랭이다.
그렇다면 큰일을 도모하기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은?
첫째, 책상을 들인다.
미국에서 큰일을 한 사람 스티브 잡스에겐 작은 차고가 있었다.
차고는 내게 너무 사치라 전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로 롤모델을 바꾸었다.
미국 이민 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내 책상을 고르는 일이었다.
책상은 나만의 안전 기지였고
여기에 앉으면 너무 빨리 오전에서 오후가 됐다.
포틀랜드엔 좋은 카페나 갈 곳이 널렸지만 이 책상에서 하루를 오롯이 쓴 적도 많다.
나는 거기서 앉아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수상을 생생히 지켜봤다.
말 그대로 큰일을 해낸 윤여정의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연습’이었다.
그러나 내겐 아무리 연습을 해도 잘 안 되는 게 정리정돈이었다.
밤마다 남편이 내 책상을 치워주는데 거기서 요상한 희열을 느꼈다.
깨끗한 책상은 나를 서포트해주는 가장 확실한 물건이었다.
결혼 증명서를 받으러 관공서에 갔을 때 내 직업을 써야 했다.
그런데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하우스와이프라고 써서
그 찰나에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기분을 통해 나에겐 나의 성취를 이룰 직업의 존재가 가장 시급하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내 1차 목표, 언어 독립이 정해졌다.
정하긴 했으나 틈만 나면 남편에게 싸움을 걸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개수작도 펼쳤다.
아직까지는 한국방송작가 저작권료가 입금된다.
내가 쌓아 온 생활들이 아직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 준다.
가끔은 언제든 돌아가도 괜찮다는 열린 가능성이 날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일기장에 적는다. 윤여정, 연습, 영어
둘째, 손편지 액자를 만든다.
이민 오면서 알게 된 뜻밖의 진실이기도 한데
나는 너무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다.
그걸 그때는 몰랐는데
그 공간에서 빠져나와보니 더 선명하게 보였다.
일부러 구분하지 않아도
진짜 내 사람만이 자연스레 남았다.
바다 건너 무조건 나를 지지해 주는 존재 가 있다는 확실한 감촉.
친구들의 손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내 앞의 장애물을 다 치워줄 것 같은 부적처럼 느껴진다.
손 편지는 거들뿐, 너무 두둑한 현금과 함께여서 더 목이 메었다.
달러로 일일이 바꿔서 준비한 정성에, 나 생각보다 괜찮게 살았던 거야? 싶었다.
그 현금은 주식으로 극진히 모셔두었고
먼 훗날 내 주식 실력을 자랑질하며 이 친구들에게 보답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손편지는 손편지로 밖에 보답할 길이 없다.
아직 그 답장은 쓰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두려운 쪽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그 두려움은 언제나 나를 확장시켜줬고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더라고.
여기 와서 영어와 운전 그리고 막막한 밥벌이에 도전하며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되었어.
작은걸 지키려 안전한 곳에 있지 말고
두려운 곳으로 우리를 계속 내보내자고
내 소중한 친구들에게 말하게 될 것 만 같다.
그렇게 답장을 해야 하기에 나는 그렇게 살아낼 수밖에 없다.
가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 꺼내 보곤 했는데
그냥 결혼사진 넣을 액자로 사둔 것에 크게 걸어 놨다.
매일매일 이 응원을 기억하기 위해서
셋째, 모카포트로 바꾼다.
아직 사들이진 않았는데 계속 이리저리 모델을 고르는 거 보니
조만간 사들일 기세다.
커피를 즐기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나는 주로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마셔왔다.
커피 천국 포틀랜드는 로컬 커피 종류가 너무 많아서 선택의 곤란함이 있다.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한참 헤매다 정착한 것이
트레이더 조의 유기농 커피다.
포인트는 커피가 떨어지는 시점에
새로운 블렌딩이 나오는 그 타이밍이다.
산미가 있고 없고 보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커피 원두의 신선함이 좋다.
모카포트의 매력은 소리를 내면서 끌어 오른다는 거다.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는다는 간단한 원리를
커피를 만들면서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다.
그 순간 나는 커피가 된다.
매일 티가 나지도 않는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끓으려면 100도가 되어야 한다.
알고는 있는데 자주 까먹고 산다.
그 100도 정신을 내 생활 속에 두고 싶다.
그래서 커피를 준비할 때마다 혼자 다짐할 수 있을 것 같다.
커피를 마실 때만큼은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방법으로
내가 나를 극진히 대접하고 싶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