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소설 <버터>
전남친 토스트라는 게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다.
레시피를 알아내려 찌질하게 전남친한데 다시 연락할 만큼
악마의 레시피라 했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쪽팔림을 무릅쓰고라도
손에 넣고 싶어 안달 나는 레시피가 있다.
어제 나는 그 리스트가 완벽히 새로 업데이트되었다.
이건 전남친 보다 더 레시피를 물어보기가 곤란하다.
그냥 버터를 바른 빵이기 때문이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지독한 구내염 때문에
나는 지금 면도칼을 입에 물고 있는 기분이다.
가만히 있어도 천벌을 받는 느낌이다.
그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나는 겉이 바삭한 빵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누가 보면 며칠 굶은 사람 혹은
태어나서 빵이란 걸 처음 먹어보는 사람처럼
“빵 그만 먹어! 우리 스테이크 먹어야 해”
하면서 남편을 말렸지만 사실 나자신을 말리고 싶었다.
지금 우리는 이 빵을 더 먹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내어줄 기세였다.
남편은 나이키 표정(Just do it)을 내게 보냈고
난 이런짓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우리는 그 빵에 완벽히 지배당했다.
그곳의 온도와 공기, 조명, 사람들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때문에 맛있기도 했다.
이민 온 첫날 미국의 맛 이라며 남편이 데려간 스테이크 전문 체인점인데
그때는 분명 골판지 씹는 맛 처럼 맛이 없었다.
분명 같은 음식인데 오늘은 전혀 달랐다.
그때는 내가 그 책을 읽기 전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온전히 빼앗겨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본 게 얼마만인가?
이 책은 정말로 내일상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였다.
최근에 읽은 <버터>라는 소설인데,
읽는 내내 코끝에 달콤하고 촉촉한 버터 내음이 감돌았다.
친구는 필요 없고 숭배자만이 필요하다는 주인공!
그 소설에 나오는 단어 중에 숭배자라는 말이 마음에 새겨졌다.
예전엔 버터는 그냥 버터였다.
왠지 많이 먹으면 살찔 거 같아 조금의 경계심이 있는 정도랄까.
하지만 버터는 이제 친구를 넘어 나의 숭배자가 되었다.
빵에 버터가 녹아드는 순간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
이제 이게 나의 중요한 세계관이 되었다.
모든 일은 '빵에 버터가 녹아드는 것처럼' 처리하고
하루는 '빵에 버터가 녹아드는 것처럼' 살 거다.
좋은 버터는 좋은 인생을 만든다.
소설 <버터>의 주인공은 좋은 버터를 알아볼 줄 안다.
버터의 위대한 존재감을 알아채냐 아니냐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알아버렸다.
우리는 호구처럼 빵을 두 번 리필하고
진짜 주인공인 스테이크가 나오자 기력을 잃고 먹다가 남겨버렸다.
스테이크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버터 바른 빵에 우리 에너지 전부를 쏟은 것에 후회가 없었다.
우리 같은 애들이 뷔페 가서 김밥으로 배 채우고
엄마한테 등짝 맞는 애들이라며 깔깔거렸다.
식사가 끝나고 지배인 같은 사람이 우리 테이블로 와서
오늘 식사는 어땠냐고 물어봤다.
나는 랍스터 수프를 지적하려고 했는데
자동응답기처럼 남편이 다 좋았다고 해버렸다.
식당에서 코멘트를 할 때는 확실이 다른 노선이다.
남편은 식당을 위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편이고
나는 식당을 위해선 어떤 말이라도 해주는 편이다.
식당의 잠재력을 깨우기 위해서다.
나는 그런 코멘트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작은 관심으로 내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 쾌감이 있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자기 커플도 그렇단다.
남친은 식당에 코멘트를 하는 편인데 자기는 곧 죽어도 싫단다.
그래서 닭볶음탕 먹으러 갔는데 닭이 약간 상한 거 같아서 그냥 나왔다고 했다.
남친은 그 말을 해줘야 한다고 끝까지 친구를 설득했지만
친구는 그 말을 하는 건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그 식당의 수프는 별로였지만 나는 버터 바른 빵을 먹으러 다시 방문할 계획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주장이 강한 버터!
요상하게 그걸 먹으면 존중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 식당의 버터에 대한 깊은 신뢰감이 생겼다.
수프나 스테이크에겐 많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알게 된 순간이 있다.
그 이후로 내 인생은 조금 넓어진 느낌이었다.
오늘 버터를 알게 된 순간,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 인생이 왠지 조금 깊어질 것만 같은 요상한 기분.
맛있는 버터를 숭배하기 위해
오늘부터 나는 무조건 먼곳에 차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