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차 Nov 20. 2021

포틀랜드 갱식이국 전도사

포인트는 거만한 표정

원치 않게 일시적으로 주부생활을 하고 있다.

워킹 퍼밋만 나오면 바로 은퇴할 기간제다.

k1비자로 입국한 사람은 미국의 놀랍도록 느린 일처리로

언제 일할 수 있을지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

어차피 그럴 거 즐기면 되지 않냐고?

주부라는 건 참 위대한 직업이지만 나와는 드릅게 맞지 않다.

일단 티가 나지 않는 일이 싫다.

내가 노력한 결과물에 내 이름이 박혀 나와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주부가 체질에 맞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미 인정 욕구를 해소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어중간한 둘째, 있어도 없어도 모르는 애매한 애.

이 캐릭터를 담당하고 살아와서 그런지 내 존재의 증명에 쾌감을 느낀다.


남편은 정리 사관학교라도 나온 사람처럼 정리를 잘한다.

옷을 개는 것도 그냥 개는 것이 아니라

매장에 가서 마음에 들었던 샘플을 보고 개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런 인간이랑 살면서 정리에 기쁨이나 성취를 느끼기는 힘들다.


청소와 정리정돈에 취약한 것은 아마도 엄마가 물려준 DNA 같다.

그 당시엔 냄새나는 수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뚜껑 같은 건 닫혀 있을 리 없는 자유분방한 냉장고가 디폴트였다.

어쩌면 노다메 캐릭터의 원조가 우리 엄마가 아니었을까 한다.

엄마가 그 분야의 최하위권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우리 집에 청소 이모님이 오고부터였다.

프로페셔널이라는 게 이런 거 구나

어릴 때부터 최하위권의 퍼포먼스만 보고 자랐고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우리 집에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니 180도로 달라졌다.

빨래를 너는 것부터 냉장고 정리까지

아주 작은 미세한 것에 쾌적함이 감돌았다.

프로의 방식이라는 게 따로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이 그 일을 대하는 태도였다.

즐겁게 한다는 거다.

신바람 나게 그 일을 한다는 것이다.

왜 나는 신바람이 나지 않는 걸까?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는 집이라는 공간에 있으면 자꾸 눕고 싶어 진다.

돌아다녀야 하는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한 본능 같다.

밖에서 생기를 충전해야지만 집으로 돌아와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래 난 그런 유형의 인간이었어. 이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생활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나만의 절충안을 생각해 냈다.

혼자 밖에서 콧바람을 쐬고 먹고 싶은걸 사 먹고 오자!

그래서 나는 혼밥 외식을 즐긴다.

주부의 일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나만의 워라벨이다.


남편은 편식쟁이에 입이 짧다.

고작 맛있다 라는 말 하나 듣기 위해 백종원 레시피로

온갖 노력을 했지만 신바람은 나지 않았다.

반찬 돌려막기에 지칠 때가 있다.

집안일은 티가 나지 않는 게 포인트지만

하기 싫은 음식을 할 때는 그대로 티가 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자비란 없다. 굉장히 정직하다.

내 마음이 고스란히 음식에 담겨 차려진다.

그 어떤 걸 차려내도 깨작거렸고 남겼다.

손도 대지 않는 반찬도 많았다.

와 도저히 못해먹겠다.

열 받아서 파업 선언을 한 적도 있다.

어차피 이럴 거면 내 몸과 마음이라도 편하자 싶어

한인마트에 파는 반찬을 그냥 사다 날랐다. 그래도 시큰둥

그런 주제에 한식을 고집하는 인간이다.

음식쓰레기를 많이 버려야 하는 게 죄스러웠다.

이 편식쟁이를 그냥 방치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분노의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손이 큰 시엄마는 오실 때마다 국을 한솥 끓여 놓으신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편식쟁이는 연속되는 반찬은 물론 쳐다도 보지 않는다.

이 부조리함이란! 결국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새로운 것처럼 둔갑시키자!

그때 번뜩하고 무언가가 떠올랐다.

시엄마가 끓여 놓은 콩나물국에 김치와 고춧가루 멸치액젓을 넣었다.

그리고 찬밥을 넣고 바글바글 끓였다.

내게 필요했던 건 요리실력이 아니라 음식 솜씨였다.

몸이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맛을 더듬어 흉내 내 봤다.

그야말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감각이었다.

갱시기 국

엄마가 일요일 아침에 대충 끓여주던 그 국밥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시엄마와 우리 엄마의 콜라보가 되었다.


첨엔 난 이 국의 창시자가 우리 엄마인 줄 알았다.

굉장히 거만한 표정으로 너무 무심하게 끓여서였다.

요리를 할 때 그 요리를 진심으로 장악해야지만 나올 수 있는 그 거만함 말이다.


평생 맑은 콩나물국만 먹어온 사람을 칼칼하고 알싸한 맛이 때려눕혔다.

지독한 편식쟁이는 고요한 땀방울을 뿜으며 남기지 않고 원샷을 했다.

무언가 남기지 않고 다 먹는걸 처음 봤다.

내겐 놀랍도록 기이한 광경이었다.

요상한 우월감이 차올랐다.

나 자신아 드디어 해낸 건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되지 않던 게 어째서 엄마처럼 하니까 되는 거지?

우리들은 앞으로 이걸 먹고 힘을 내게 될 것을 예감했다.

오늘부터 이게 우리들의 소울푸드다.

이미 밥이 말아져 있어 후루룩 넘기기만 하면 된다.

먹고 나면 요상하게 힘이 솟아 다시 일어날 기운이 나버린다.


나의 구원자 갱시기 국을 만나고 내 주부생활은 달라졌다.

여전히 신바람은 나지 않지만

거만한 표정으로 갱시기 국을 끓인다.

장모사랑이 뭔지 모르는 인간에게 이런 방식으로 장모의 흔적이 스치는 건가?

늘 억울했었다. 우리 엄마가 이 편식쟁이를 봤음 엄청 귀여워했을 텐데...

이 생에선 만나지 못한 것이.

이것저것 귀하고 맛있는걸 다 해주고 싶어서 난리를 부렸을 텐데...


다음엔 남편 사촌들에게도 이걸 선보여야겠다고 기대에 부풀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어떤 맛일까?

포틀랜드에 갱시기 국을 유행시킬 생각에 그제야 내게도 신바람이 났다.


항생제 먹어서 입맛 없다고 편식쟁이가 징징거리길래

라면 대신 갱시기 국을 끓였다.

갱시기 국은 양아치 주부의 원샷원킬 최종병기다.

이걸 끓이는 날은 별다른 이유 없이 하루 종일 거만하게 된다.

국을 내놓고 난 바쁜 척을 하며 2층 서재로 서둘러 사라진다.

남편이 내게 오더니 다급하게

“1층으로 빨리 와봐.”

맛있게 먹었다는 리액션은 얼마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최근엔 이 말로 날 웃겼다.

“위대하십니다.”

너무 웃겨서 배 잡고 웃으며 난 김일성 수령님 급은 아니니 넣어두라고 손사래를 친다.

이 말은 다양한 형태로 응용되어 우리들의 유행어가 되었다.

남편이 쿠폰의 노예가 되어 쓸데없는 걸 잔뜩 살 때

“위대하십니다.”

저 말 하나로 모든 잔소리를 압축시켰다.


설레는 마음으로 위풍당당하게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그는 정말 위대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또 가스 불 안 껐어.”


역시 난 주부 체질이 아니다.

거만하게 까불다가 결국 내 위대한 변명으로 얼룩진 저녁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