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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은 빌런을 만나라

내돈내산 개고생

by 보리차
귀인은 빌런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막내작가 시절, 개편 철이 다가오면

내 인생도 통째로 개편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런데 먹고살기 바빠서 늘 흐지부지,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내 의지보다 더 큰 피곤함이 날 막았다.

내겐 미친 실행력과 미친놈 같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딴 거 다 필요 없이 그걸 한방에 해결해준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빌런이라는 존재다.


그럭저럭 해 나가고 있던 3년 차였다.

그런 내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돌연 일본으로 도망친다.

그 결정적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실은 그 당시엔 나조차도 몰랐다.

비가 많이 오던 날 mc가 녹화에 늦었다.

그 이유를 막내작가인 내 탓으로 돌렸다.

일기예보를 체크하고 30분 일찍 출발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잘못이란다.


그 순간 내 인생의 아주 중요한 점이 찍혔다.

분노점.

내 분노가 먹고사는 것의 피곤함을 뛰어넘었다.

물론 이런 어이없는 일은 지금까지 천지 빼까리로 많았다.

화장실 가서 한바탕 울고

죄송합니다 하며 연기하고 대충 넘어갔으면 될 일들.

그런데 그 순간은 아니었다.

내가 무엇에 분노하는지 명확하게 직면한 순간이었다.

어떤 게 좋고 싫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보다

내가 어떤 지점에서 분노하는지가 중요해지던 지점이었다.

나의 어는점 녹는점 끓는점만 알았다면 생애 처음으로 분노점이라는 걸 인식하게 됐다.

그 분노점이 날 여기까지 오게 했다.


저런 인간이랑 함께 일하기에 내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대고 감정을 소비하고 시간을 쓰는 것보다

끊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이건 나 혼자만의 명분이고 주변인들에게 설명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있잖아 내게 분노점이라는 게 생겼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구차했다.

그냥 어학연수라는 네 글자가 젤 만만했다.


지금은 그 빌런에게 90도로 인사하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일본이라는 세계로 날아갈 수 있었다고

그때 이방인이 되는 경험이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귀중한 체험이 되었다고

결국 그 당시 빌런이 지금은 내 인생의 귀인이 되었다.

인생에서 벌어진 사건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이 빌런이었다가 귀인이 되는 반전이 일어난다.


인생은 내가 거쳐간 도시의 총 합!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은 ‘이방인이 되어 본 일’이다.

내 이방인의 첫 역사는 부산에서 서울로 온 일이다.

그 당시엔 그저 서울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다.

서울 사투리?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엔 ‘단디 해라’ 같은 사투리가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부산과 서울, 두 개의 우주가 믹스 매치되면서

오리지널 서울 출신과는 다른 나만의 로컬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그 이후로 도쿄, 북경, 상해, 포틀랜드 까지.

결국 이 동선 안에 내 인생의 굵직한 터닝포인트가 스며들게 되었다.


이방인이 되면서부터

먹는 거 입는 거 보는 거 생각하는 거 말하는 거 행동하는 거 다 바뀌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개편이다.

과거의 나자신과 헤어지는 연습 따위 필요없다.

자동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도시마다 자아내는 고유의 스피릿이 있다.

뉴요커, 파리지앙, 베를리너처럼

인간은 도시의 에너지에 둘러싸여

그 도시의 정신에 흠뻑 젖어 살아가게 된다.

에코백으로 자기만의 멋을 추구하고

나이키 표정(just do it)을 짓고

커피에 진심인 곳이 이곳 포틀랜드다.

도시마다 내게 던진 질문은 제각각이었다.

결국, 인생은 내가 거쳐 간 도시의 총합이 아닐까 한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쳤는가?

이방인이란 어쩌면 도망자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어떤 세계를 스스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떠날 수밖에 없다.

내 앞으로 난 길 위에 빌런이 나타났고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빌런이 있었기에 먹고살기 바쁜 내가 쳇바퀴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있어 빌런들의 공통점이 있다.

‘너무 잘해보고는 싶은데 무시무시하게 무능력한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밉다기보다는 가슴 한편이 짠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을 테지!

그 누군가들도 나처럼 도망쳤을까?

그렇다면 빌런이란 정말 최고의 이방인 메이커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경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최고의 가성비, 내돈내산 개고생


내가 도망쳐봤기에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로지 두려움과 설렘이 범벅되는 순간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황홀함 말이다.

그러니까 딱 팝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선 딱딱하고 작은 옥수수 씨앗일 뿐인데

전자레인지에 들어가는 순간!

내 안에 잠재된 포텐이 터지면서

가볍게 날아오르는 팝콘이 되는 거 말이다.


꼭 거창한 도망이 아니어도 좋다.

가벼운 이방인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이런 것처럼

새로운 환경에 나를 집어던져 놓으면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 쇼핑,

내돈내산 개고생이다.

이방인의 고단함보다 이방인만이 얻는 상쾌함이 더 크다.

그중 단연 최고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거다.

나의 순발력, 똥고집, 단단함, 연약함, 나약함, 재수 없음, 엉뚱한 사치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귀여운 스케일의 광기.

새로운 자극이 생기니 전혀 새로운 통찰력이 생긴다.



마지막은, 화성이다.

내 이방인 역사의 클라이맥스는 <화성>이다.

이게 무슨 엉뚱깽뚱한 소리이겠냐 하겠지만

10년 후엔 진짜 조금씩 지구에서 화성으로 이주를 할 것 같다.

그럼 이방인이 아니라 외계인이 되는 건가?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2026년 안에 보내겠다고 한 일론 머스크를

‘인간을 죽음으로 내모는 위험한 도전’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목숨을 걸기 때문에 더 가치 있는 도전이라 생각한다.

일론 머스크, 무라카미 하루키, 김향안...

내 롤모델의 정체는 모두 이방인이었다.

길을 잃더라도 꼭 뭔가는 손에 쥐고 돌아오는

요상한 강인함이 있다.

그 이방인 계보를 이어 나가고 싶다.

애초에 영원히 채워질리 없는 밑빠진 독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렇기에 순수한 고독과 마주하는 귀중한 찰나가 있다.


하지만 역시나 그러고 싶다는 나약한 의지보다

먹고 사느라 너무 피곤한 나 같은 인간에겐 빌런이 필요하다.

빌런이여 기꺼이 내 앞에 나타나 주세요!



왜 사람들은 이동할까?

무엇 때문에 뿌리를 내리고 모르는 게 없던 곳을 떠나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로 향할까?

왜 스스로를 거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겉치레 투성이인 곳에 오르려 할까?

왜 이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고 힘겨운 이국의 정글로 들어갈까?

어디서나 대답은 하나겠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소망하며 이주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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