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차 Dec 08. 2022

결혼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하는 것

요즘 친구들에게서 이런 연락이 왕왕 온다.

결혼이 하고 싶은데 맘에 드는 사람이 없단다.

학벌이 어떻고 키가 어떻고 벌이가 어떻고

그런 걸 따지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나 역시 한때 그렇게 계산기 두드리고 있었지만 결혼을 해보니 깨달았다.

그딴 게 다 소용이 없었다는 거다.

상대는 '고르는' 게 아니라 '발견되어지는' 거다.


내가 경험한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하지만)

자유로워지기 위해 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틀도 내가 커스터마이징 해 나가야 한다.



   

결혼은 서로에게 구조되는 것



나도 그랬다.

그때는 내가 원하는 사람을 고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상대를 고르는 게 아니다.

외모는 어떻고 취미는 어떻고 나도 그렇게 고를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까 알겠다.

직감적으로 서로의 구멍이 읽혀버린다.

서로의 결핍을, ‘왠지 내가 저걸 채워줄 수 도 있겠다’는 무의식적 착각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의 이상형을 쫒기보다는

상대의 구멍에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이 인간에겐 그런 상처가 있구나

그걸 안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갔는지에 울컥하고 격한 감정이 일렁였다.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

환경이나 상황이 변하면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거대한 변화, 결혼을 하겠다는 건

그걸 뛰어넘는 이유가 반드시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충격적인 사건이나 인생 내내 짓누르고 있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남편의 경우 교포도 아닌 유학생도 아닌 어느 무리에도 낄 수 없는

요상한 미국 생활에서 내가 구조해줬다.

처음엔 그 정도인 줄 알았는데 파다 보니 더 큰 구멍이 있었다.

남편에겐 세명의 양육자가 있었다.

부모님과 동생이다.

영어를 못하는 부모님의 손발이 되어야 하고 동생은... 할말하않이다.

나는 겉으론 멀쩡했으나 그 안을 들춰보니 썩어가고 있었다.

드라마 계약을 잘못해 가스 라이팅 당하고 있었고

썩어가던 나를 그가 구조해 준 것이다.

어떤 지옥으로부터 구조해주는 것

그걸 서로가 알아보는 순간, 결혼은 시작되는 거다.

거기다 찌질함의 크기가 같을 땐 동질감의 가속도가 붙는다.

그래서일까? 친구의 결혼하고 싶다는 말이 내겐 sos신호처럼 들린다.


   

결혼은 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유학 같은 것


결혼이 하고 싶은데 남자를 못 믿겠단다.

맞다. 남자는 못 믿는다.

믿을 건 나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공부를 한다.

유학 가는 마음이면 어떨까? (조수미의 유학일기를 벽에 붙여놓고 마음이 꺾일때마다 봤다.)

큰 바다를 건널 때 ‘망해도 영어는 지금보다 잘하겠지?’ 이런 가벼운 마음이었다.

지금 이 결혼이 중단된다 해도 이것 하나만은 사실이다.

그 전보다는 영어가 늘었다.

뭐 하나라도 배웠다는 거다.

그런데 결혼이야 말로 인문학에 대해 깊게 공부하는 기회다.


자기 전에 어떻게 이를 안 닦을 수가 있지?

샤워하고 어떻게 팬티를 안 갈아입을 수가 있지?

결혼하고 알았다. 인간은 굉장히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걸!

시스타는 제부가 화장지를 삼각으로 접어둬서 충격이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나를 보고 적잖이 놀란 건 사실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치우지 않고 어질고 살 수가 있지?’

내가 여태껏 경험한 인간과 전혀 다른 차원의 굉장한 세계가 펼쳐진다.

한 인간을 가까이서 관찰하며 놀라게 된다.

아니 흠뻑 빠져서 연구하게 되는데 재밌는 사실은

남편을 통해 진짜 나의 모습을 본다는 거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 꿈도 없었고

평생 작은 마트 하나 경영하며 살 생각이었다.

세상 남자는 나쁜 남자, 좋은 남자, 겁쟁이 이 세 가지로 나눠진다는데

마지막 겁쟁이 과였다. 겁쟁이는 최악이다.

그가 썩은 동태눈으로 그 말을 할 때 내 꿈은 너무 커서 문제였다.

열심히 하든 열심히 안 하든 그냥저냥 먹고 사니까

그게 그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 더하기 10은 20이 아니었다.

10 곱하기 10 그러니까 100이 되는 게 결혼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알아서 주식투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밤에 유튜브로 각자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아침에 만난다.

우리가 각방을 쓰는 이유다.

도저히 밤새 오디오가 겹쳐서 잘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주식투자 대학 동아리 같다.

서로 경쟁하며 시너지를 낸다.

결혼생활은 유학생활이라 생각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걸 공부하게 된다.

그래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일 수 밖에 없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하는 것



역사를 왜 배울까?

내겐 시험문제 맞히기 위한 암기과목이었던 역사가 재밌어졌다.

 바로 남편의 스토리 텔링 때문이다.

내게 역사를 전달해주는 메신저는 바로 남편이다.

아무리 인종차별을 당했지만 학교가 재밌었다고 하는 그에게 질투가 난다.

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인종차별은 없었지만 지옥 같았다.

그의 역사 강의는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가장 큰 충격은 '플라자 합의'였고 더욱더 일본에 매료되었다.

달러가 왜 기축통화가 되었는지도 난 모르고 살았고 그건 마치

우물 안 개구리에겐 바다의 일이었다.

사우디가 석유를 달러로 받겠다고 한 것인데

그건 군사력 빵빵한 미국이 사우디를 돌봐주기 때문이다.


사피언스 책에서는 역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배운다고 했다.

과거에 얽매였던 것들, 억압받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과거엔 당연했던 것이 역사를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된다.


마찬가지로 결혼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하는 거다.

결혼은 어떤 측면의 불안을 줄여준다.

결혼이라는 울타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건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커리어를 쌓을 때  안전망 역할을 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싱글이기 때문에 낭비하는 감정소비가 없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해결되는 편리함이 분명히 있다.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리감이 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안에서 더 독립적으로 진짜 온전한 내 인생에 집중할 수 있다.


서로에게 구조되어 자유로워지는 것, 그게 결혼이다.

집으로 가는 길,  신호에 걸려 멈췄다.

앞차에선 운전자랑 옆에 탄 강아지가 뽀뽀를 한다.

바로 저 순간이다.

인간이란 터치로 온기를 느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게 아닐까?

(그 장면을 보고 남편을 누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

언제든 뽀뽀할 수 있는 생명체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 그것도 무제한으로... !

이게 결혼이 주는 가장 큰 위안이다.

작가의 이전글 <유퀴즈>말고 <알쓸인잡>에 나가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