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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Dec 06. 2021

인생에 한 번은 빌런을 만나라

내돈내산 개고생

귀인은 빌런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막내작가 시절, 개편 철이 다가오면

내 인생도 통째로 개편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런데 먹고살기 바빠서 늘 흐지부지,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내 의지보다 더 큰 피곤함이 날 막았다.

내겐 미친 실행력과 미친놈 같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딴 거 다 필요 없이 그걸 한방에 해결해준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빌런이라는 존재다.


그럭저럭 해 나가고 있던 3년 차였다.

그런 내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돌연 일본으로 도망친다.

그 결정적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실은 그 당시엔 나조차도 몰랐다.

비가 많이 오던 날 mc가 녹화에 늦었다.

그 이유를 막내작가인 내 탓으로 돌렸다.

일기예보를 체크하고 30분 일찍 출발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잘못이란다.


그 순간 내 인생의 아주 중요한 점이 찍혔다.

분노점.

내 분노가 먹고사는 것의 피곤함을 뛰어넘었다.

물론 이런 어이없는 일은 지금까지 천지 빼까리로 많았다.

화장실 가서 한바탕 울고

죄송합니다 하며 연기하고 대충 넘어갔으면 될 일들.

그런데 그 순간은 아니었다.

내가 무엇에 분노하는지 명확하게 직면한 순간이었다.

어떤 게 좋고 싫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보다

내가 어떤 지점에서 분노하는지가 중요해지던 지점이었다.

나의 어는점 녹는점 끓는점만 알았다면 생애 처음으로 분노점이라는 걸 인식하게 됐다.

그 분노점이 날 여기까지 오게 했다.


저런 인간이랑 함께 일하기에 내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대고 감정을 소비하고 시간을 쓰는 것보다

끊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이건 나 혼자만의 명분이고 주변인들에게 설명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있잖아 내게 분노점이라는 게 생겼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구차했다.

그냥 어학연수라는 네 글자가 젤 만만했다.


지금은 그 빌런에게 90도로 인사하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일본이라는 세계로 날아갈 수 있었다고

그때 이방인이 되는 경험이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귀중한 체험이 되었다고

결국 그 당시 빌런이 지금은 내 인생의 귀인이 되었다.

인생에서 벌어진 사건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이 빌런이었다가 귀인이 되는 반전이 일어난다.


인생은 내가 거쳐간 도시의 총 합!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은 ‘이방인이 되어 본 일’이다.

내 이방인의 첫 역사는 부산에서 서울로 온 일이다.

그 당시엔 그저 서울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다.

서울 사투리?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엔 ‘단디 해라’ 같은 사투리가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부산과 서울, 두 개의 우주가 믹스 매치되면서

오리지널 서울 출신과는 다른 나만의 로컬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그 이후로 도쿄, 북경, 상해, 포틀랜드 까지.

결국 이 동선 안에 내 인생의 굵직한 터닝포인트가 스며들게 되었다.


이방인이 되면서부터

먹는 거 입는 거 보는 거 생각하는 거 말하는 거 행동하는 거 다 바뀌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개편이다.

과거의 나자신과 헤어지는 연습 따위 필요없다.

자동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도시마다 자아내는 고유의 스피릿이 있다.

뉴요커, 파리지앙, 베를리너처럼

인간은 도시의 에너지에 둘러싸여

그 도시의 정신에 흠뻑 젖어 살아가게 된다.

에코백으로 자기만의 멋을 추구하고

나이키 표정(just do it)을 짓고

커피에 진심인 곳이 이곳 포틀랜드다.

도시마다 내게 던진 질문은 제각각이었다.

결국, 인생은 내가 거쳐 간 도시의 총합이 아닐까 한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쳤는가?

이방인이란 어쩌면 도망자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어떤 세계를 스스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떠날 수밖에 없다.

내 앞으로 난 길 위에 빌런이 나타났고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빌런이 있었기에 먹고살기 바쁜 내가 쳇바퀴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있어 빌런들의 공통점이 있다.

 ‘너무 잘해보고는 싶은데 무시무시하게 무능력한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밉다기보다는 가슴 한편이 짠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을 테지!

그 누군가들도 나처럼 도망쳤을까?

그렇다면 빌런이란 정말 최고의 이방인 메이커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경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최고의 가성비, 내돈내산 개고생


내가 도망쳐봤기에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로지 두려움과 설렘이 범벅되는 순간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황홀함 말이다.

그러니까 딱 팝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선 딱딱하고 작은 옥수수 씨앗일 뿐인데

전자레인지에 들어가는 순간!

내 안에 잠재된 포텐이 터지면서

가볍게 날아오르는 팝콘이 되는 거 말이다.


꼭 거창한 도망이 아니어도 좋다.

가벼운 이방인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이런 것처럼

새로운 환경에 나를 집어던져 놓으면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 쇼핑,

내돈내산 개고생이다.

이방인의 고단함보다 이방인만이 얻는 상쾌함이 더 크다.

그중 단연 최고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거다.

나의 순발력, 똥고집, 단단함, 연약함, 나약함, 재수 없음, 엉뚱한 사치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귀여운 스케일의 광기.

새로운 자극이 생기니 전혀 새로운 통찰력이 생긴다.



마지막은, 화성이다.

내 이방인 역사의 클라이맥스는 <화성>이다.

이게 무슨 엉뚱깽뚱한 소리이겠냐 하겠지만

10년 후엔 진짜 조금씩 지구에서 화성으로 이주를 할 것 같다.

그럼 이방인이 아니라 외계인이 되는 건가?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2026년 안에 보내겠다고 한 일론 머스크를

‘인간을 죽음으로 내모는 위험한 도전’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목숨을 걸기 때문에 더 가치 있는 도전이라 생각한다.

일론 머스크, 무라카미 하루키, 김향안...

내 롤모델의 정체는 모두 이방인이었다.

길을 잃더라도 꼭 뭔가는 손에 쥐고 돌아오는

요상한 강인함이 있다.

 이방인 계보를 이어 나가고 싶다.

애초에 영원히 채워질리 없는 밑빠진 독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렇기에 순수한 고독과 마주하는 귀중한 찰나가 있다.


하지만 역시나 그러고 싶다는 나약한 의지보다

먹고 사느라 너무 피곤한 나 같은 인간에겐 빌런이 필요하다.

빌런이여 기꺼이 내 앞에 나타나 주세요!



왜 사람들은 이동할까?

무엇 때문에 뿌리를 내리고 모르는 게 없던 곳을 떠나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로 향할까?

왜 스스로를 거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겉치레 투성이인 곳에 오르려 할까?

왜 이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고 힘겨운 이국의 정글로 들어갈까?

어디서나 대답은 하나겠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소망하며 이주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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