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서 May 07. 2024

추억 풍경

그 흔한 얘기, 아들이 아니라서 

그 흔한 얘기아들이 아니라서    

  

자갈이 튀는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저 건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20여 가구 남짓한 작은 시골 마을. 내가 태어나던 시기의 마을은 가난했고, 나는 마을에서도 가난한 집의 2남 3녀 중 넷째이자 셋째 딸로 태어났다. 이 흔한 형제 서열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다는 걸 말하고자 함이다.      

엄마가 안방에서 산고를 이기고 나를 낳자마자, 사랑방에서 손자를 기다리시던 할아버지는 딸이라는 말을 듣고 “당장 내다 버려라.”며 불호령을 내리셨단다. 엄마의 해산을 돕던 둘째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호령이 무서워 나를 윗목으로 밀쳐놓았다고 했다. 없는 살림에 아이가 부담되어 뱃속 아기를 지우려고 갖은 방법을 쓰는 엄마들이 있던 시절, 누구는 간장을 한 바가지 마셨다고 했고, 누구는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일부러 구르기도 했다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던 때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모든 일들이 유기 불안을 초래한다고 한다. 뱃속 아기를 엄마가 지우려고 했던 행위를 포함해서 태어나서 이불에 싸서 실제로 버리거나 버릴 마음으로 시장에서 아이의 손을 놓는 등의 모든 행위가 유기 불안을 가져온다는 거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버림받는 처지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호령이 무섭든 어쨌든 가족들의 마음속에는 아들을 바라는, 네 번째는 딸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딸을 출산한 엄마는 무슨 죄인이라도 된 거처럼 산모 대접도 받지 못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태어난 시각도 정확하지 않다. 해산하고 미역국을 먹을 때 새벽닭이 울었다는 엄마의 기억이 내가 태어난 시간을 알게 하는 표지일 뿐이다.      


그렇게 세상에 나와 내가 처음 기억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할아버지의 검지. 부엌 앞에 은색의 눈부신 대야가 놓여 있고, 입안에 짭짤하게 퍼지는 소금기와 입 안 가득 자리한 할아버지의 두툼한 검지. 내다 버리라고 호령했던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나를 세수시키고, 밥도 먹여주셨다고 한다. 오빠와 언니들은 할아버지가 메뚜기며 빠르기로 이름난 두더지도 밭에서 잡아다가 나에게만 먹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할아버지가 나를 많이 돌봐주셨던지 나의 기억에는 할아버지의 상투 튼 머리와 한복에 달려있던 노란 호박 단추가 놀잇감이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길거리를 지나다가 노란 호박 단추나 한복에 다는 노리개, 옥가락지 등에 사로잡혀 발길을 멈추곤 한다.     

 

이 기억들은 내가 세 살, 네 살 때의 기억이다. 심리학자들은 성인이 되어 기억하는 다섯 살 이전의 기억들은 자주 들어서 강화된 이야기거나 허구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유년기에는 뉴런의 발달과 더불어 확장되는 경험과 지식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3세에서 5세 이전의 기억들이 사라지는 유년기 기억상실이 있기 때문이다. 유년기 기억상실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그 사람의 풀리지 않고 반복되는 평생 주제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어쨌든 나의 첫 기억은 할아버지와 관련된 생생한 두 장면이 또렷하다. 할아버지의 검지와 호박 단추는 내 삶의 어떤 주제와 연관이 있을까. 입안을 맴도는 짭짤했던 강한 맛과 눈길을 사로잡는 노란색의 반짝이는 호박 단추를 생각해 본다.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중간에 멈추지 않고 계속 먹어야 하는 식탐을 불러왔나 하는 생각도 든다. 둘째 언니 말에 의하면 나는 어릴 때도 가족들과 식사할 때 맛있는 음식에 거침없이 젓가락을 가져갔다고 한다. 언니는 어른들 눈치를 살피며 잘 먹지 못했단다.    

  

그렇게 나는 집안에서 부모님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는, 남자가 아니라서 아쉬운 여자아이로 자랐다. 다섯 남매의 넷째, 애매한 서열에서 느낄 수 있는 거처럼 첫째인 오빠는 장손이라는 이름으로 엄마 아버지의 기대주였고, 큰 언니는 살림 밑천이라고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거드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둘째 언니는 어른들로부터 ‘까탈스럽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서 나름대로 관심을 받았다.   

   

네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동생이 태어났다. 어른들은 남동생을 보고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가족들의 모든 관심은 남동생에게 쏠렸다. 동생은 남자, 막내라는 타이틀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나는 먹이고 눕혀놓으면 혼자서 잘 노는 무던한 아이,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전 01화 프롤로그-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