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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서 Jun 01. 2024

추억 풍경

손톱만한 잠재력을 발견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담임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까지 선생님께 편지를 썼을 정도다. 내 아버지와는 다른 내가 꿈꾸던 아버지를 나는 담임선생님을 통해 알게 됐다. 피부가 하얗고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듯 웃는 얼굴, 지적인 분위기, 부드러운 말투가 내가 꿈꾸는 아버지였다는 것을. 담임선생님은 완전 도회적인 이미지를 풍기며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6학년 0반 아이들』이라는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선생님 같았다. 상상 속에서나 만나던 모습의 담임선생님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동안 내가 경험한 담임선생님들은 작은 면 소재지에 살면서 선생이라는 직업과 농사를 병행하는, 농사를 짓는 우리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한 선생님이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중학교 정문 앞에서 문방구를 겸했고,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부농으로 매부리코에 눈이 깊어 마녀를 연상시키는 얼굴처럼 성질이 고약해서 폭력적이었다.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후문 옆, 학교 담벼락 밑에 있는 집에 살았고, 피부색은 하얀 편이었지만 안경 낀 인상이 강해서 다가서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셨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호랑이선생님으로 불렸다. 얼굴은 검고 눈은 부리부리하며 볼이 매우 퉁퉁했고, 귀에서부터 구레나룻에 털이 덥수룩한 털보 선생님이었다. 목소리도 커서 목소리만 들어도 주눅이 들었다. 면 소재지에서 나고 자라 학부모나 졸업생들 누구나 아는 동네 아저씨 같은 선생님이었다.      


도시에서 오신 담임선생님은 그냥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매일 아침 전교 1등으로 등교를 하게 할 만큼 가슴 설레게 했다. 일등으로 등교해서 열쇠를 받아 교실 문을 열고 창문을 열어젖히면 신선함으로 코끝을 뚫고 들어와 가슴을 부풀게 하던 공기는 내 몸과 마음을 동시에 붕 뜨게 만들었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는 매일 같은 숙제였다. 그날 배운 내용 중에서 문제를 50개 출제하고 풀이하는 것이었다. 전과에서 문제를 베끼는 것으로 대신하긴 했지만 분명히 벅찬 숙제였기에 숙제를 잘 해오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나는 숙제를 열심히 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하교 후에 나는 선생님용 문제집에서 칠판 가득 아침 자습 문제를 제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을 학생에게 시킨 거였지만 그때 나는 선생님께 인정받은, 특별대우를 받는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한 번은 반에서 돈이 없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돈을 가져간 아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선생님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반 아이들 모두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게 했다. 그리고 꿇어앉은 허벅지를 지휘봉처럼 생긴 단단한 나무 막대로 때렸다. 나는 신체적 고통에 민감한 아이라 아픈 것도 아픈 것이었지만 선생님께 매를 맞았다는 충격이 컸다. 2학년 때 괴팍한 담임선생님에게 억울하게 따귀를 얻어맞은 이후 어디서도 매를 맞아보지 않았던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하루 종일 눈물을 그치지 않았고 청소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손수건을 주시며 그만 울라고 할 때까지 울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때였다. 방학 숙제가 많았던 시절, <방학 생활>이라는 책을 한 권 풀어야 했고, 일기 쓰기, 식물채집, 그림 1점 그리기, 글짓기 등 양도 만만치 않고 다양한 숙제가 주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는 글짓기 숙제였다. 학교에도 글짓기 시간은 칠판에 ‘글짓기 시간’이라고만 씌어 있고 한 시간 동안 글쓰기를 해야 하는 상황,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글을 짓는 시간이 막막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방학 숙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글짓기 방학 숙제를 생각하다가 여름휴가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그 해 우리 집은 아버지와 두 살 터울인 셋째 할아버지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갔다. 휴가지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여 분이 넘게 가야 하는 계룡산 계곡이었다. 백숙, 보쌈 등 먹을거리와 여름 과일을 이고 지고 버스에서 내려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 평평한 바위가 있고 바위 아래에는 제법 웅덩이가 깊은 곳에 우리 가족은 자리를 잡았다. 복숭아와 수박은 계곡물에 띄워 놓고 하루 종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물놀이를 즐겼다. 숲이 울창하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은 뜨거운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기에 최적이었다. 나는 그날의 일을 글로 썼다. 일기 외에 처음으로 주제가 있는 글을 쓰게 되었다.     


당시에는 방학이 끝나면 숙제를 모아 복도에 책상을 놓고 그 위에는 <방학 생활> 책, 식물채집, 일기, 글짓기 등을, 유리창에는 그림을 붙여 전시하고 시상도 했다. 그 해 방학 숙제에서 나는 글짓기와 그림 두 작품이 금상을 받았다. 그림은 매미 잡는 걸 그린 그림으로 기억한다. 내가 받았던 상장 중에서 유독 그때를 기억하는 것은 그 후 선생님이 나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서 작문을 담당하던 선생님께 나를 소개하시며 방과 후에 독후감 쓰는 방법을 가르침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글짓기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거 같다. 막막하던 글짓기가 그냥 쓰는 글짓기로,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글이 되는 거라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건 글을 잘 쓰는 것과 다른 문제지만 나는 생각나는 것을 글로 옮기는 일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손톱만한 능력을 알아봐 주시고 가르쳐주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내내 글쓰기에 대한, 과제에 대한 부담을 별로 느끼지 않고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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