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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서 Jun 04. 2024

추억 풍경

외모 콤플렉스를 갖게 된 사춘기

외모 콤플렉스를 갖게 된 사춘기

내가 다닌 중학교는 인근의 두 개 면에 위치한 5개의 초등학교 졸업생이 모이는 곳이었다.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빼곡하게 책상을 잇대어 앉고, 남녀가 분리된 6개 반으로 구성되었다.  


검정색에 하얀 카라를 매번 갈아 끼우며 입던 시절, 나는 중학교 입학에서 가장 큰 행사인 교복을 사는 일을 경험하지 못했다. 언니의 교복을 물려받아 입었기 때문이다. 내가 입은 교복은 빛에 바래 약간 붉은색을 띠기도 했고, 회색을 띠기도 하는 오묘한 빛깔의 교복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교복은 그야말로 새까만 검정에 눈이 부시게 하얀 카라가 달려 있었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아이들의 교복은 매우 커서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거 같았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힘이 없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3년 동안 한창 성장기인 아이들의 신체 변화를 고려하여 부모님들은 품도 최대한 넉넉하게, 소매도 길고, 허리는 접어서 옷핀으로 고정해야 하는 상태였다. 내가 입은 교복은 빛이 바랬지만 몸에 꼭 맞았고 조금은 맵시도 났다.    

  

입학한 지 서너 달이 되어 반이 한 번 바뀌는 일이 있었다. 남학생들이 너무 많아 여학생반과 통합해서 남녀 합반으로 조정된 것이다. 국민학교 때 남자애들은 얼굴도 알고 같이 놀았던 아이들이지만 다른 국민학교에서 온 4개 학교의 남자아이들과 한 반이 되는 건 매우 큰 이슈 거리였다. 다른 학교에서 온 여자아이들도 잘 몰랐지만 한창 사춘기로 접어드는 아이들은 남녀 합반에 술렁거렸고, 다시 한번 학교에 적응해야 했다.   

   

국민학교 때부터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아이들은 다른 학교 출신의 이성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나는 남자애들보다는 다른 학교 출신의 여자친구를 사귀는 즐거움에 빠졌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날짜를 고르고 골라 읍내로 진출해서 문구점 투어와 서점에 들러 책을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책 구경이었고, 책을 읽는 것은 학교에서 도서를 대출해서 읽었다. 서점에서는 매월 <소녀시대> 잡지 책을 한 권 구매하는 일이 나에게는 아주 큰 사건이었다. 시골에서 잡지를 사서 보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양서도 사지 못하는 형편이건만 잡지라니. 하지만 나는 <소녀시대> 잡지를 통해 소녀 감성을 키우고, 연재되는 만화, 소설 등을 읽는 즐거움에 빠졌다. 소장한 잡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치이자 자랑이었다.  

    

여자친구들을 사귀며 즐겁게 학교생활에 적응했고, 2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다시 여자, 남자 반으로 나뉘어 진급했다. 남녀 합반을 통해 아이들은 이성에게 관심이 한층 고조된 상태에서 반이 갈라진 것이다. 버스 통학을 하는 아이들은 빽빽한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하기 바빴고, 소풍이나 어버이날 행사가 있는 날에는 좋아하는 이성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분주했다.      


나는 남자애들만 있는 동네에서 자란 덕분에 그다지 남자애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만 국민학교 6년 동안 같은 반을 한 번도 하지 않은 한 남학생이 눈길을 끌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공부를 제법 잘했던 남자애였는데 말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체육 시간, 그 애에게 첫 마디를 듣게 되었다. 여름 체육복은 반팔, 반바지였는데 나를 본 그 애의 한마디는 “우와! 너 다리 엄청 굵다. 무다리야.”였다. 집에서도 가끔 엄마한테 ‘다리통이 기둥 나무 굵기만 하다. 오빠랑 바꾸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부끄러워서 얼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괘씸했고, 화도 치밀어 올랐다. 내가 화가 났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관심을 가진 애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과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는 사실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도 너무 모욕적이고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 애를 마음속으로만 욕했고, 손상당한 마음의 상처는 ‘나는 다리가 굵다, 못생겼다’로 내면화되었다.      


3학년이 되면서 우리 반 교실은 2층이었다. 1층에는 3학년 남학생 교실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애들은 쪽지를 매달아 아래층으로 내려보내기도 했다. 특히 내 짝꿍은 얼굴이 하얀, 남학생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는 애였다. 그 애는 특히 남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아 ‘누구누구를 좋아한다.’고 거리낌 없이 얘기했다. 나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이라 피부색이 하얀 애들을 내심 부러워했다.   

   

이미 다리가 굵다는 모욕적인 언사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나는 짝꿍과 피부색이며 외모를 비교하곤 했다. ‘나는 예쁘지 않다. 나를 좋아하는 남학생이 없어’라며 남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 척 했다. 사춘기는 외모에 관심이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이다. 여드름 한 개, 머리 모양 등 교복이라는 개성 없는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 시기, 특히 남녀공학인 터라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매우 큰 시기이다.      


외모가 모든 걸 대변한다고 믿는 예민한 시기에 관심 있는 남학생에게 들은 한마디 말과 남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짝꿍과의 비교를 통해 나는 외모 콤플렉스로 한동안 위축됐다. 까무잡잡한 피부, 뻗치는 굵은 머리카락, 굵은 다리로 외모 콤플렉스를 장착하게 된 나는 더 씩씩하고 악바리처럼 행동하게 됐다.    

  

성인이 되어 만난 그 남학생은 ‘관심의 표현’이었다고 말했고, 다른 남자 동창에게 남학생들 사이의 인기투표에서 내가 항상 3등 안에 들었다는 믿지 못할 말을 들었다. 그들에게 “진작에 말해 주지 그랬냐?”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내 사춘기는 남모르게 외모 콤플렉스를 겪었던 시기였다. 외모에 다소 무신경하고 패션에 감각이 별로 없는 나. 성인이 되어서는 ‘타고난 외모를 어쩔 것인가’라고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지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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