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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서 Aug 31. 2024

바다 풍경

한 순간에 모든 걸 잃다

   


직장 생활에서 보직 변경은 자의든, 타의든 조직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다. 조직의 업무를 세분화하여 각 구성원에게 분담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각 직책의 담당 업무와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조직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또한 각 직무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배치함으로써 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직무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조직 구성원의 역량 개발을 지원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다만 보직 변경에 대처해야 하는 개인은 원치 않는 보직의 경우 정신적으로 꽤나 힘든 시기를 보낼 수 있다. 

     

나는 20년 동안 한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번의 보직 변경을 경험했다. 사업부에서 일할 때는 직무는 같았으나 근무지를 이동해야 했고, 내근 부서에서는 직무가 변경됐다. 직무 변경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직무가 변경될 때마다 업무를 새롭게 익혀야 하는 부담감이 크다.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일정 기간의 시간을 투자해야 업무 안정화에 이를 수 있기에 익숙하지 않은 업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불안,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지면 온몸은 긴장 상태에 돌입하고 머리는 항상 가동 상태가 되어 스트레스가 된다.      


업무 정착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조직에서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거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면 바로 무능력한 직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때 느끼는 무능감은 업무적으로, 정신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거 같은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운 좋게 나는 15년 동안 같은 팀에서 일했고, 사보 제작에서 사사 제작으로, 다음은 기업철학과 기업문화 관련 책자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업무로 이어졌다. 업무 성과 측면에서 매출과 연결되는 정량적인 성과지표를 내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어 새로운 대표이사가 선임될 때마다 부침이 심했다. 그렇지만 업무의 정성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며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기업문화가 조직과 조직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하는 일에 나름대로 보람이 컸다.    

  

15년 동안 조직 개편에 따라 두 번의 사업 부서 발령이 있었고, 두 번 다 6개월 만에 홍보팀으로 복귀했다. 하는 업무는 같았다. 사보, 창업자 자서전, 사업 부서의 성공 사례를 인터뷰해서 책으로 발간하는 업무를 했다. 창업자 자서전 업무는 창업자의 창업 목적과 업의 가치를 알 수 있어 개인의 성장과 회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보 제작이나 성공 사례 모음집 제작 업무 또한 나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기회였다. 인터뷰이의 삶의 태도, 업을 대하는 자세 등을 들으며 탁월한 업무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특장점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지극히 오프라인 성격을 띤 업무를 하고 있었다. 온라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여 줄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급격하게 인터넷 환경으로 바뀌면서 업무도 웹진이나 홈페이지 기획 업무 등으로 변해갔다. 그 사이 빈번한 임원 교체가 있었고, 팀장의 사직도 목도했다. 업무가 한창 온라인화 되어가는 중에 비서실장이 우리 실의 실장 겸 팀장이 되었다. 실세 중의 실세로 이름을 떨친 그가 홍보실 실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팀장 겸직이라 팀은 파트 체제로 업무분장이 되고, 팀원들은 야근의 연속인 날을 보내야 했다.     

나는 새롭게 지어진 연수원 홍보 책자 제작 업무에 바쁜 나날을 보냈고, 중단됐던 창업자 자서전 제작 업무도 다시 시작했다. 또한 대표이사의 주도하에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는 업무에 투입되었다. 외부업체를 선정해서 홈페이지 제작을 시도했으나 대표이사를 만족시킬 수 없던 터라 내부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 홈페이지와 상품 홈페이지를 분리하여 리뉴얼하는 업무는 만만한 업무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기획 의도에 따라 세세하게 스토리보드를 구성해야 하는 작업은 나에게 무척이나 힘든 과제였다. 그동안 내가 했던 업무는 PPT로 문서를 작성하는 업무가 아니고, 줄글을 써서 디자이너에게 넘겨주면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했다. 홈페이지 업무는 기획과 스토리보드를 모두 PPT로 작성하여 계열사에서 제작하는 업무로 나는 문서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야근을 일삼아 작업을 하고 진행 상황을 대표이사에게 보고하는 날에는 기진맥진했다. 수정 내용이 쏟아지고 방향성이 바뀔 때마다 나는 점점 작아져 갔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무능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자신감이 떨어지니 매사에 허둥지둥하며 놓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무렵 실장이 “얘기 좀 하자”며 카페로 갔다. 실장은 업무가 변경될 것이라고 했다. 실장이 말하는 업무는 회사에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오랫동안 진행해 온 업무였다. 그 업무는 계열사로 편입되어 그동안 해당 업무를 맡아온 이벤트 파트장이 내정되어 있었다. 이동이 결정되어 있었던 파트장도 나와 함께 홈페이지 업무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나와 그 파트장이 교체된 거다.      


업무 변경은 대표이사의 의사라고 했다. 그랬다. 대표이사에게 홈페이지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발표할 때마다 대표이사의 의중을 빗나가는 느낌, 뭔가 부족한 느낌이 업무변경을 불러왔다. 자존심이 상하고 당혹감이 밀려와 나는 퇴사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말했다. 실장은 “주말 동안 잘 생각해 보라”라고 말했다. 


주말 동안 전전긍긍하며 퇴사냐 이동이냐를 놓고 고민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퇴사가 능사가 아닌 것 같아서 이동하는 쪽으로 마음을 다잡고 실장에게 계열사로 이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며칠 뒤 실장은 계열사로 이동하면 연봉이 10퍼센트 삭감된다는 말을 했다. 많은 직원들이 계열사로 이동과 복귀를 반복했으나 연봉이 삭감된다는 말을 듣지 못한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은 실장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고, 그런 대우를 감수하기에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결국 나는 진짜 퇴사를 결심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실장은 당장 그만두라고, 퇴사 날짜를 잡으라고 종용했다. 말도 없이 진행 중이던 창업자 자서전 업무 회의에 후임을 소개하고, 나는 협업하던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업무에서 배제됐다. 이동하겠다고 했다가 번복한 상황이 난감했던 것일까. 그는 그동안 내가 보아온 그가 아니었다. 거침없이 심한 말을 내뱉었고, 결국 나는 인사 담당 본부장과 면담하고 한 달의 업무 마무리 시간을 확보한 채 퇴사 날짜를 확정했다.      


실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마음속에서 들끓었다.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거, 거침없는 막말에 나의 불안이 더해져 분기탱천했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나에 대한 자괴감과 후배들 보기에 창피해서 수치심 또한 말할 수 없이 몰려왔다. 한 달 동안 회사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쌓아온 내 경력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버린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어찌어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나는 사내 메일로 그간 업무를 협업하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표이사와의 한 시간여 면담을 마지막으로 퇴사했다.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를 수없이 되새김질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벌여놓은 일 같이 현실감이 없었다. 안정의 욕구와 소속의 욕구가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 ‘그동안 수고했어!, 괜찮아, 잘될 거야.’라고 자위를 해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나온 직장은 나를 열패감에 시달리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여러 가지 일을 벌여 나를 힘들게 했다. 나의 퇴사로 인해 불안했던 탓이었을까. 그는 부동산, 네트워크 마케팅, 주식 등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는 분야는 모두 기웃거렸다. 서서히 뻘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온 마음과 몸이 빠져 들어갔다. 나는 나대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느라 남편 일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지 못했다. 매일 다투기 일쑤였으나 현명하게 대처할 힘이 나에게는 없었다. 결국 나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쉰 살에 그동안 내가 일궈 온 모든 것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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