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서 Aug 27. 2024

바다 풍경

죽음과 같은 시간

    


2018년은 그 어느 해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해였다. 우리 가족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1년의 시간은 세 식구가 새롭게 생활에 적응을 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작은 집으로의 이사를 했다. 아이는 우울한 고등학생이 되었고, 나는 퇴사 후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사건은 8월의 한여름밤에 일어났다. 이사 후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집은 그야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낮 동안 에너지를 다 쏟아 일을 하고 들어와서 손도 까닥할 수 없을 만큼 기운도 없었다. 남편은 거실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나는 멍한 채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찌르르 찌르르 귓가를 자극하는 벌레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밖에서 들리는 소리려니 생각하고 그냥 앉아있었다. 잠을 청하던 아이는 방에서 나와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며 벌레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베란다와 거실을 왔다 갔다 하던 아이는 베란다 우수관 근처에서 소리가 난다며 나한테 벌레를 잡으라 했다. 나는 아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반응을 하지 않다가 너무 덥고 짜증이 난 나머지 “벌레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잡아, 그리고 벌레는 아빠한테 잡으라고 하지 왜 나한테 잡으라고 해?”라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이는 “엄마는 항상 내 말을 듣지 않아.”라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더운 여름에 창문도 열지 않는데 선풍기 한 대로 어떻게 밤을 보낼지 걱정됐다. 아이가 신경 쓰여 나는 결국 하수관에서 벌레를 찾아 밖으로 날리고, 아이에게 벌레를 잡았다고 말했으나 아이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3일이 지나도 아이는 나를 본체만체하고 말을 안 했다.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그렇게 사소한 일로 말도 하지 않냐?”라고 말했다. 그 후 아이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풀릴 줄 알았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공부에 집중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서 아이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 눈치만 봤다. 나는 밥을 차려주고 ‘밥 먹어라’는 말만 했고, 아이는 나를 그림자 취급했다.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고 야간자습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며 공부도 하지 않는 거 같았다. 어쩌다 말을 걸어도 아이는 “역겹다”는 말로 내 속을 뒤집었다. 나야말로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상황을 수없이 반복해서 뒤돌려 봐도 별일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어떤 방법도 취하지 못하고 애를 태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속수무책으로 그저 기다리는 거밖에 없었다.     


2학년이 되어 어느 날 학부모회장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가 학급 회장이라서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라는 거였다.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고, 시험감독을 하면서 담임선생님과 상담했다. 아이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고 성적이 조금 하락하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고. 내가 학교에 왔다 갔다 하면서 학부모회 활동을 해도, 아이는 관심이 없었고, 수학여행을 가서도 연락 한번 없었다. 궁금하고 걱정되고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됐다.      


내가 너무 한심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아이와의 관계를 위해 상담 공부를 시작하고, 청소년들 학습 상담, 진로상담을 하면서 정작 내 아이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나는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허공에서 걷는 사람처럼 현실감이 없었고, 살아있다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막막했다.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미안하다고 말해도 아이는 “엄마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는 말로 일축했다. 나는 아이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화와 거부감을 고스란히 받으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죽음의 시간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그렇게 1년 6개월을 아이는 나와 말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1월, 아이는 안방으로 건너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인터넷 강의를 신청해야 하니 수강료를 달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가 말을 걸어오다니. 드디어 화해의 순간이 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말이 아니라 필요를 채우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했다. 아이의 고3 일 년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돈가스를 튀기고, 고기를 굽고, 떡볶이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고 3만 지나가기를 고대하며. 하지만 상황은 내 편이 아니었다. 아이는 수능 2주 전,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며 의자에 앉지도 못했다. 허리 통증으로 눈물을 흘리며 수능을 치른 아이는 대학 입학 원서를 내지 않고 재수 생활에 들어갔다.      


재수생활 초반에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가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책은 펼치지도 않고 휴대폰을 손에 쥐고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아이가 또 입을 닫을까 두려워 눈치만 봤고, 밥만 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기력한 아이에게 상담을 권했으나 거절이라는 당연한 통보를 받았다. 어떤 말도 귀에 들리지 않을 때, 특히 부모의 말은 더구나 들을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지켜보기로 했다. 수능 전날 수험표도 받으러 가지 않은 아이, 수능 날에는 불안해서 거실을 서성이는 아이를 보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화를 달랬다.      


다음 날, 식탁에서 아이는 자기에게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고 요청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건축학과를 접었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아이가 가고 싶은 학교는 충남 부여에 있었고, 한 과에 20명을 우선 선발과 학생부종합, 학생부교과, 특기자, 정시모집 등으로 아주 세부적으로 나누어 모집을 했다. 그동안 한 번도 나의 관심 영역에 들지 않았던 학교와 학과였다. 일 년 동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을 보아왔던 터라 나는 마지막 기회임을 분명히 하고 아이는 삼수생이 되었다.      


우선선발 고사 1차에 합격하여 면접을 보러 부여에 다녀오던 날, 우리는 또 한 차례 부딪치는 일이 있었다. 세종에 사는 언니가 챙겨준 채소가 한가득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때문이었다. 집으로 가는 아이와 출근하는 나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헤어졌고, 결국 아이는 무거운 가방을 두 개나 들고 대중교통이 매우 혼잡한 시간대에 집으로 갔다. 그 일로 이틀을 서먹하게 보내다가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이번엔는 아이가 먼저 대화를 하자고 했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말들이 오고 갔다. 서로 눈물과 콧물이 범벅되면서 장시간 대화를 했다. 나는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내 주장만 했던 것을 사과했고, 아이는 자신의 불안한 미래와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의 화를 나에게 덮어 씌워 감정쓰레기통을 삼았다며 사과했다. 서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참으로 지난했던 시간이 한순간에 녹아들었다. 아이의 질풍노도가 고요하게 가라앉으며 잔잔한 바다가 되는 순간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점수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서 삼수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나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죽음의 시간처럼 느껴졌던 그 시간도 종지부를 찍었다. 인생은 기쁨의 시간도, 고통의 시간도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는다.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에 과정이 있을 뿐이다. 아이와 관계가 편해졌다고 사소한 갈등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다. 크고 작은 갈등과 순간순간의 기쁨과 경이 속에서 그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오늘을 살고자 걷고 또 걸을 뿐이다.     


이전 23화 바다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