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알라_자기감을 배우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남편의 재정 상태를 알고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보인 눈물 말고 처음으로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며칠 뒤부터는 남편에 대한 분노로 이글거렸다. 눈앞에 있는 남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들끓었다. 며칠을 캄캄한 굴 속에 매몰돼 있는 느낌이었다.
마침 친구들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친구의 빗발치는 전화를 받아 내 상황을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당장 내려오라고 했다. 친구들이 모여 이런저런 상황 타개에 대한 안들을 내놓았다. 그때 나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었고, 개인 회생이라도 하려면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마침 아는 선생님께서 연구소 확장을 위해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연구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남편은 이것저것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순간순간 숨 막히는 시간들이 나를 지배했다. 내 상황을 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빈껍데기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때때로 몸은 가라앉아 바닥에 붙어 있는 느낌이고 오락가락하는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무심하게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내 인생을,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나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른 채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착한 사람, 책임감이 강한 사람, 너그러운 사람,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그건 착각이 아니라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에 대한 무지에서 생긴 가짜 이미지였다.
가짜 이미지의 탈을 쓰고 나는 터널시야를 장착한 채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 달리는 목적도 몰랐고 방향도 없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자기감이 취약한 사람이었다. 심리학 공부를 다시 하고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씩 알게 됐다.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삶의 방향성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나의 내면을 보면서 건강한 자기감을 다시 세워야 했다. 자기감은 세상 살면서 잘 배우고, 잘 알아야 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절절하게 느꼈다.
자기감이 취약한 사람들은 나처럼 과대한 자아상을 가질 수 있다. 결핍된 부분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을 과대 포장한다. 자신이 상상하는 이미지가 마치 자기 자신인 듯 살아간다.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해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된다. 마치 자기가 이 세상 모든 것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거처럼 착각한다.
반대로 자기감이 취약해서 너무 작아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이다.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식으로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한다. 자신을 실망스럽다고 여기며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자기에 대한 비하와 비난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강하다. 당연한 결과지만 자기효능감이 낮아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성공할 능력이 없다고 느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
외부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도 강하다.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인정과 승인이 없이는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식사 메뉴를 선택하는 것조차 “아무거나” “너와 같은 걸로”식으로 타인을 배려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을 믿지 못해서 따라 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외부의 평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보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타인의 인정과 승인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잘못된 신념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의존의 이면에는 남들로부터 평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한다. 타인의 평가가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해서 평가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걱정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빨리 알아채려 노력하게 되고, 평가와 비난이 두려운 만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참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늘 긴장된 모습을 하고 사람 눈치를 살피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갈등이나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는 경향도 강하다. 자신이 실패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도전적인 상황을 피하고 문제에 직면하지 않으려고 한다. 친구나 이성과의 갈등도 피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입고 불편한 감정이 생겨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비출 수 있으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결국 대인관계에서 불안정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불러온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 인식으로 인해 적절한 경계를 설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문제 상황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이 명확하지 않으니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취하지 못해 주변 상황에 휘둘리는 일도 많다. 줏대 없이 흔들리는 마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당연한 결과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루기 어렵다.
너무 과대하거나 너무 작아지거나에 관계없이 자기감이 취약한 사람들은 무기력과 자기희생에 시달리게 된다. 내 앞에 닥친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느끼면서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려고 한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모두에게 환영받고 부정적인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착한 사람콤플렉스를 불러온다. 눈치만 살피며 주도적으로 열정을 갖고 임하는 일이 적으니 점점 의욕은 떨어지고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 만다. 활력도 없고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며 주체적인 삶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자기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자기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쉽게 선택한다는 것,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오해하지 않고 굳이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낼 줄 안다는 사실을 알아갔다. 내 삶의 경험에서 어떤 요소와 사건들이 큰 영향을 주었는지 깨닫고 인지하여 의미 있는 자기감의 재료들을 제대로 선별할 줄 아는 안목을 키워갔다.
이제 나는 말과 행동에 자연스러움이 배어 나기 시작했고,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함과 편안함을 준다는 말을 듣는다. 앞으로도 상대방의 장점을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의 현재 모습을 봐주는 사람, 함께 있으면 기분을 좋게 하는 사람으로 남기를 소망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