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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서 Sep 10. 2024

하늘 풍경

내 가슴에 별 하나 품고

    


10여 년 전 처음으로 나는 내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추도사를 직접 써 보았다. 내 추도사에는 내가 살지 못한 삶에 대한 회한들로 가득 찼다. 나 자신을 비롯해 가족과 나를 아는 지인들을 한껏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들로 빼곡했다. 특히 자식을 앞세운 엄마에 대한 걱정이 현재 내 가족들에 대한 걱정보다 앞섰다. 또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지 못하고 현실로부터, 문제로부터 도망치던 순간들로 후회 막급한 내용들이었다.      

 

추도사를 쓰면서 나는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추도사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로 추도사 내용을 바꾸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로 ‘나를 잘 알고 돌보며 나를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가 되었다. 살면서 누구보다 나와의 관계가 건강해야 타인과의 관계 또한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평범하고도 어려운 진리를 깨닫고 세우게 된 가치였다. 내 추도사의 첫 줄을 ‘나를 사랑하고 여기 계신 모든 분을 사랑하는 삶이 행복했습니다.’로 바꾸었다.      

 

가족들에 대한 걱정은 축복으로, 남은 날들을 더없이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동생의 자살과 엄마의 죽음에서 영원한 이별의 슬픔을 몰랐다면 과연 내가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가 기억하고 추억하는 한 늘 그들이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고, 남겨지는 내 가족들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걱정보다 축복을 담아낼 수 있었다.     


살면서 나처럼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이 있을까 싶은 한탄의 순간들을 더는 피하지 않고 맞서 살아낸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순간들로 교체했다. 사회적 소속감을 잃었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주저앉고 말았다면 내 삶의 후반전은 계속될 수 있었을까.      


두려움의 순간에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에는 나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도 알게 됐다. 그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내게 닥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보이는 손길부터 보이지 않는 손길까지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나와 함께 있었음을 감사하게 됐다. 그 무한한 감사를 추도사에 녹였다. 내 추도사는 계속 진화한다. 내가 살면서 느끼고 깨달아 가는 내용들이 더해져 더 풍성해진다. 죽음이 나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한다.      


삶의 의미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선택할 때는 모멘트 모리(Momento Mori, 죽음의 경고)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모멘트 모리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이 일생을 통해 어떻게 죽는 것이 최선인지를 기억하라’라고 번역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돈도 성공도 아닌 가까운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내가 처음 썼던 추도사처럼.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한보다는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잘 살아낸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리 쓰는 추도사는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가치가 들어있다. 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해 준다. 현재를 견지하는 삶을 살게 한다. 흔들리면서도 나만의 꽃을 피우는 존재로 살아가게 한다. 내 삶의 가치를 갖는다는 건 마음속에 별을 품고 사는 것과 같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며 길을 찾도록 안내해 주는 나만의 방향성이니 말이다. 내 삶의 가치를 찾는 방법으로 내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추도사를 써보자.   

   

내가 원하는 삶은 내가 가치 있다고 선택하는 내용과 관련이 있다. 가치란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바람직한 것, 또는 인간의 지적·감정적·의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나 그 대상의 성질’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가치는 나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 행동할 수 있도록 이끄는 강력한 방향성이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인 가치는 우리에게 매일의 삶에서 추구하는 규칙을 정하게 하고 인생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것을 정의해 준다.      


가치는 순간순간의 삶이 무엇을 향해 있는가와 관련된다. 스티븐. C. 헤이즈와 스펜서 스미스는 추도사를 바탕으로 가치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삶에서 중요한 열 가지 영역을 제시한다. 부부/커플/친밀한 관계, 자녀 양육, 가족 관계(부부 및 자녀 이외의 가족 관계), 우정/사회적 관계, 직업/경력, 교육/훈련/개인적 성장 및 발달, 레크리에이션/여가, 영성이라는 영역에서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생각해 보고 명백하게 드러날 수 있는 방향을 기록할 것을 제안한다.      


가치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는 자신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 중에는 부모님이나 중요한 타인, 또는 책에서 가져온 것들도 있을 수 있다. 내 삶의 가치를 찾는 일이 막연하게 느껴지면 어려서 부모님이 해주신 말들도 생각해 보자. 그것은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주신 유산이자 가치가 될 수도 있다.  

   

가치는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은 나를 고스란히 드러나게 한다. 일은 내 능력의 보증수표가 되어준 사회적 명함이자,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산이다. 나아가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내적 원동력이다. 물론 일로 인해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생존과 관련해서든 삶의 가치를 위해서든 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보라. 하루는 지루하고 의미 없는 행위들의 연속일 것이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말한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왜 일하는가?’, ‘그 일을 통해 당신은 무엇이 되기를 꿈꾸는가?’에 대해 질문을 해야 한다고.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내가 꿈을 실현시키기는 길, 즉 내 삶의 가치가 일속에 있다는 말로 읽힌다. 내가 하는 일에는 내가 선택한 가치를 기반으로 내가 ‘꿈’ 꾸는 세상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한다.     

  

미리 쓰는 추도사, 내가 하는 일,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 선인들의 삶과 말씀, 그리고 삶의 중요한 영역 열 가지 등을 기초로 나만의 가치를 찾고,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내 삶의 가치로 ‘나만의 빛나는 존재로 살기, 만나는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하기,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살기, 어려움에 봉착해도 용기 있게 현실을 살아가기, 성실하고 정직한 신앙인으로 살기’라는 다섯 가지의 가치를 갖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긍정과 타인과의 관계성에 주목하며 수없이 만나는 어려움에도 용기를 발휘하며 신앙인으로 사는 가치는 오늘의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기 쉬운 마음이나 꺾이지 않고 유연하게 나부끼는 잎을 달고 굳건하게 서 있는 한 그루 나무로 나를 살게 한다.       


가치는 한 가지 영역에서 끝이 나는 종착점이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삶을 펼쳐 나가는 과정이다. 내가 선택한 각각의 가치는 내 인생행로를 그릴 수 있는 나침반의 방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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