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bulddae Apr 15. 2024

아이를 보면, 내가 위선자가 된 듯한 죄책감이 든다.

아이 덕분에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어진다. 하지만 그 바람때문에 괴롭다.

내가 입바른 소리'만' 해대는 건 아닐까.

입으로만. 말로만. 혼자 정의로운 척. 그렇게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면서, 일기에만 좋은 사람인 척, 바른 사람인 척. '척'만 해대는 건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하는 건 아이를 볼 때다. 정확히는 '달마다 돌아오는 PMS 기간에 아이와 (격하게) 부딪힐 때마다' 이다.


인간은 그저 호르몬의 노예인가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심하게 호르몬에 좌지우지된다. 몸은 물론, 마음과 기분, 참지못하고 폭발하는 감정을 보며 '내가 왜이러니 오늘' 이런 생각이 들면 십중팔구.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남들은 출산하고 나서 생리통이 싹 사라졌다던데, 나는 되려 더욱 심해졌다. PMS 기간이 되면 진통제도 어쩌지 못하는 편두통에 시달리다 시달리다 머리통을 열어 아픈 부위에 식염수를 부어 깨끗하게 씻어내는 상상을 한다. 몸은 무겁고, 잠은 많아지고, 평소보다 많이 자도 피곤이 떨쳐지지 않고. 무엇보다 날,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건 감정기복이다. 평소에는 잘 참고 넘어갈 상황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분노가 폭발해 소리를 지르고 가족들을 놀라게 한다. 특히 우리집에서 가장 '귀한 약자'인 아이의 돌발행동이 나를 특히 분노하게 한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봄날씨가 좋다며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세가족이 공원에 가는 길이었다. 평소에도 히어로 역할극을 끊임없이 해대는 아이는 어제도, 여느 때처럼 나에게 악당 역할을 하라 했다. 당연히 영웅은 본인이다. 어제는 나에게 나잘란, 더잘란을 하라며 본인이 번개맨일 되어 처치하는 상황을 정해주었다. 길을 걸어가며, 그렇지 않아도 분산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나는 여러번 아이의 요구를 놓쳤나보다. 악당이 등장하고,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나쁜 짓을 제대로 해야 번개맨이 '촤아~'하고 나타날 때 돋보이는 법. 내가 본인의 연출의도와 다르다며 아이는 나의 연기에 계속 어깃장을 놨다. 엄마, 그게 아니고~ 엄마. 그게 아니고~ 엄마. 다시다시. 엄마. 엄마~~~! 엄마! 나잘란더잘란 놀이 하자고오오!


아이가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나의 감정이 뇌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튀어나왔다. "하고 있잖아!!!"


별안간 큰 소리에 아이는 얼음처럼 굳어졌다. 남편도 놀라 아무말 하지 않고 아이 자전거만 밀었다. 순식간에 싸늘해진 분위기. '나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소릴 지르고 있지' 나는 속으로 이제 막 터져나오기 시작한 분노를 관망하며 아이에게 비수를 계속 날렸다. "앞으로 엄마 시키지 마. 하고싶으면 ㅇㅇ이 혼자해, 아빠랑 하던가. 왜 맨날 엄마한테만 해달라 하면서 계속 화내는 거야. 엄마 안 할 거니까 아빠랑 해. 알았어?"


사실, 약 2년 넘게 이어지는 역할극에 나는 진정 지쳐있던 참이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배트맨, 플래시... 번개맨, 미니특공대 같은 히어로물이 이제는 생활의 모든 상황을 역할극으로 만들어 노는 아이다. 대본의 90%는 나의 목소리로 채워지고, 그렇게 두개, 세개, 네개 이야기를 거칠 때쯤 나는 목이 잠긴다. 기력이 딸리고 이젠 더이상 말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파김치가 된다. 그러나 아이의 에너지는 고갈되는 법이 없다. 어제는 그날이 오기 바로 전, 분노조절 호르몬이 최저치를 찍던 날이었다. 나는 단단히 화가 났다.


평소같으면 똑같이 화를 내며 대들었을 아이가, 어쩐 일인지 조용히 자전거 페달만 밟고 있다. 선그라스를 끼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참새 새부리같은 작은 입이 뾰족한 걸 보니 시무룩한 얼굴을 거다. 아이가 조용하니,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공원에 다다랐을 때, 아이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나지막히 말했다.


"엄마, 들어가서. 나잘란더잘란 놀이 하자~?"


이 작은 아이에게, 놀고싶은 게 무슨 죄라고, 나는 무슨 짓을 한 건가. 나는 그대로 쪼그려 앉아 아이 얼굴을 보았다. 분명 마음 속으로 울고 있었을 아이에게 미안함을 한참 넘어서는 큰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가. 이런 인간인 주제에 왜 죄없는 아이를 이 세상에 불러와 이런 고통을 주고 있나. 자책감이 미친듯이 몰려왔다.


미안해. 들어가서 계속 하자, 놀이. 엄마가 미안해 화내서.

응. 엄마. 들어가자.


누가 마흔한살이고, 누가 세살인가. 내가 터뜨린 분노가 칼이 되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다. 자판으로는 항상 좋은 인간인 척, 노력하는 인간입네 하면서. 실상, 나의 맨얼굴은 이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입으로만 바른 소리, 입으로만 그럴듯한 말을 쏟아내며, 정작 내 행실은 어떠한가. 내가. 이 아이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 인간인가.


자괴감에 종일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나는 호르몬을 억누를 만한 이성의 힘으로 저녁에 다시한번 큰 소리가 날 만한 상황을 화내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화를 참으며 아이에게 다시한번 사과를 했다. 낮에 엄마가 소리질러서 미안해. 엄마 열심히 하는데도 ㅇㅇ이가 계속 다시해 다시해 해서 엄마가 너무 화가 났어. 그래도 소리지르고 화내서 미안해. ㅇㅇ이도 이젠 놀이할 때 엄마한테 너무 닦달하지 말아줘.


"알았어 엄마. 이제 우리 마샤랑 스파이더맨 놀이 할까?"


도대체...... 유아기 역할극 놀이는 언제까지 지속되는 걸까. 서천석 박사님께 묻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