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bulddae Sep 06. 2023

자살을 '나약한 사람의 선택'이라 하지 말자.

이 나약한 자동차들! 그러니 (공공놀이방에 있는) 자동차는 다 부서져있지

예전에, 한참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가 막 돌이 지났을 때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말 못하는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집에서만 1년 넘게 보낸 결과는 육아우울증이었다. 그때는 친정도 멀고 낯선 동네에 신혼집을 잡아 동네에 누구 하나 아는사람이 없었다. 이따금 친언니와 동생이 와서 아기를 봐주었지만 간헐적인 방문으로 내 답답함이 해소되진 않았다. 피로와 짜증, 분노가 언제부터인가 쌓이기 시작했고 풀 데도 없으니 어쩌다 한번 터지면 울고불고 생지x을 해야 감정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던 때였다. 남편이 당직근무를 하는 날 엄마 찬스를 써서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었다. 기저귀에 이유식에 뭐에뭐에. 애는 하나인데, 짐은 왜그리 많은지 엄마 차 뒷좌석에 애와 나보다 짐 부피가 컸다. 그렇게 친정에 와서 좀 쉴까 싶었지만 나에게만 매달리는 아이를 보느라 쉬지도 못했던 것 같다. 뭔가 감정이 상해 힘들고 고됨에도 불구하고 당장 집에 돌아가고 싶어져 짐을 쌌다. 이제는 생각도 안 나는 이유인데 뭐 그리 화가 났는지, 짐을 싸다 식구들이 다 있는 앞에서 나는 눈물을 터뜨렸다.


결국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부득불 엄마가 또 태워주신다며 차를 몰고 나오셨다. 아이를 들쳐매고 이 코로나시국에 지하철을 탈 순 없는 일. 뒷좌석에 짐과 아이 사이에 낑겨 잔뜩 작아진 채 가고 있는데, 엄마가 말씀하셨다. "니가 나약해서 그래."


나는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40년을 그런 엄마가 싸우며 살았다. 엄마가 얼마나 자신만만한 자수성가형 인물인지, 그런 자수성가 형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괴롭게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엄마 밑에서 '나'를 지키며 살려고, 엄마 말씀 아닌 내 마음대로 살려고 진짜 많이 노력했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그런 엄마한테 또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도움을 받던 중 엄마가 던진 저 말에 또 상처를 입었다. 엄마는 자식을 넷이나, 그것도 가난하고 없던 시절 아빠의 작은 벌이로 키워낸 사람이다. 그런 과거에서 오는 자기연민과 한탄, 또 자부심이 엄청나 그렇지 못한 자식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은 "하나 가지고 뭘 그리 찔찔매냐. 나는 넷을 그렇게 키웠는데" 였다. 그런데 그날의 나약하다는 지적은 새삼 뼈아프게 들렸다. 내가 나약해서 자식 하나 쉬이 키우지 못하고 부모집에 와서까지 찔찔 울기나 했구나. 엄마는 "너 뿐만 아니라 요즘 애들이 다 나약해. 너무 귀하게 커서 그렇지"라고 덧붙이며 뒤늦게 자신의 말이 너무했음을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나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라 그런지 그 자리에선 눈물도 나지 않고 멍해졌다. 그러다 집에 와서 애를 눕혀놓고 엉엉 울었다.


'으른'들이 요즘 자살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쉽게 내뱉는 말이 그 '나약하다'는 거다. 나약해서 그래. 죽을 용기로 악착같이 살아야지. 너무 곱게 자라서 세상 풍파 하나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거야.


요즘 애들 중엔 실제 나약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약하다는 한마디 말로 요즘을 사는 사람들을 싸잡아 말할 수 있을까. 서이초 교사가 자살한 건 나약해서만이었을까. 나는 의문이 든다. 자살한 교사도 요즘 사람이고, 그 교사가 자살하게끔 다그치고 궁지로 몰아넣은 이도 으른들이 말하는 '요즘 사람'이다. 학폭을 못견뎌 자살한 학생이 나약해서라면, 그 아이를 때리고 모욕하고 짓밟은 교우는 강인한 '예전 사람'이라 그랬던걸까. 다른 사람,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한 사람은 피해자가 되고 한 사람은 가해자가 됐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그저 하나의 '같은 시대' 사람으로 묶을 수 있느냔 말이다. 최근에 보도된, '요즘 사람'이 아닌 60대 교사의 자살은 그럼 '나약한 요즘 사람'의 자살일까 아닐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는 것도, 조언 받는 것도 싫어하는 건 감히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쉽게 입에 올려선 안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상당한 인덕을 가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다른 사람의 무심한 조언과 지적에 쉽게 상처받고 좌절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나약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약한 나도, 자살한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나약해서 그래'라고 쉽게 말하긴 싫다. 그래선 안된다는 것 쯤은 나약한 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 부디, 다른 사람의 선택에 대해 (충분히 알지도 못하면서) 왈가왈부하지 말자. 그 선택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